[글로벌 기획]스마트폰으로 진료받고 약 처방… 재진부터 병원 안가도 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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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원격진료 시행 현장



#1
오전 2시. 여섯 살 난 아들이 갑자기 눈이 아프다고 우는 상황. 아이를 밤중에 병원 응급실에 데리고 가야 할지 걱정이 가득한 주부 A 씨(36)는 스마트폰에 설치된 앱을 작동시켰다. 언제든지 의사와 상담이 가능한 24시간 원격의료 상담 서비스 앱이다. A 씨는 스마트폰에 달린 카메라로 아이의 눈 상태를 병원 당직 의사에게 보여줬다. 의사는 아이의 충혈 상태나 부기 상태를 확인하기 위해 화상을 확대해 자세히 살폈다. 의사는 가벼운 증상으로 보이니 응급상황은 아닌 것 같다고 A 씨를 안심시켰다. A 씨는 이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매달 5400원을 앱을 만든 업체에 지불하고 있다.

#2 최근 몸이 갑자기 피로하고 불면증이 심해진 회사원 B 씨(44). 집에서 스마트폰의 원격의료 전용 앱을 작동시켰다. B 씨는 본인이 평소 잘 아는 의사와 상담 예약을 해 놓은 상황이어서 바로 의사에게 화상 상담을 받을 수 있었다. 20분 정도의 상담을 마친 B 씨는 의사로부터 불면증 약을 처방받았다. B 씨는 처방 약을 약 배달 서비스를 통해 바로 집에서 받을 수 있었다. B 씨가 낸 원격의료 비용은 분당 3200원으로 총 6만4000원을 지불했다.

먼 미래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가상의 이야기도 아니다. 가까운 나라 일본에서 벌어지고 있는 원격의료 사례들이다. 일본은 지난해 8월 규제 완화의 일환으로 원격의료를 전면 허용했다. 지역이나 질환에 관계없이 원격의료가 가능하도록 했다. 우리와 달리 의료계의 반발도 거의 없었다. 의료 상황이 국내와 비슷한 일본이지만 의사가 직접 환자를 찾아가는 왕진제도(수가 25만 원 정도)와 첫 진료 뒤 환자의 상태를 확인하는 전화상담 제도(수가 7870원 정도)가 활발하게 이뤄지는 나라다. 원격의료는 이러한 제도의 보조적 수단으로 사용돼 의료계가 큰 반발 없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 그러다 보니 일본에선 원격의료 관련 업체들이 상업화를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원격의료 전용 앱 포켓닥터 상용화

“최근까지 일본 의료기관의 1%에 해당하는 1380개 의료기관이 포켓닥터 원격의료 앱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목표는 3년 내에 일본 전체 의료기관의 10%인 1만여 곳과 계약을 맺고 해외로도 진출하는 것입니다.”

일본에서 원격의료 전용 포켓닥터 앱을 개발한 벤처기업 MRT의 바바 도시마사 대표는 지난달 28일 포켓닥터를 출시한 뒤 짧은 기간 동안 많은 의료기관이 속속 가입하고 있다고 말했다. 포켓닥터는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활용해 의사와 환자 간 원격의료를 할 수 있게 만든 앱이다. 병원에서 초진을 받은 환자는 포켓닥터를 통해 집에서 본인이 원하는 병원, 원하는 의사를 선택해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다. 의사는 원격의료를 통해 추가 수입도 올릴 수 있다.

원격의료를 하는 의사는 재진비 730엔(환자 부담은 10∼30%)을 받을 수 있다. 예약 상담의 경우엔 분당 300엔(약 3200원)의 진료비도 받는다. 또 업체는 의사의 오진 위험성에 대비해 배상보험에도 가입했다. 환자는 월 500엔(약 5400원)을 내면 밤에 응급 상황이 생긴 경우 원격상담도 할 수 있다.

바바 대표는 “아플 때 전화상담을 많이 했던 나의 경험을 토대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를 활용하면 좋겠다는 생각에서 앱을 만들었다”면서 “기존에 복용하던 약만 꾸준히 처방받는 만성 환자라면 굳이 병원에서 2시간 이상 기다릴 필요가 없고 또 아이가 갑자기 아플 때 엄마들이 전문의로부터 상담받기도 용이하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포켓닥터엔 소아과 의사들이 가장 많이 가입했다.

일본에는 포켓닥터 말고도 포트메디컬이라는 앱도 있다. 이 앱은 원격진료에 약 배달 서비스까지 가능하다. 이 업체들은 방문진료, 노인을 대상으로 하는 왕진, 아이들을 위한 소아 상담, 수술 뒤 퇴원 환자 관리 등의 서비스를 만들어 활용하고 있다.

일본 의사회, 보조적 수단으로 활용

원격의료 전용 앱인 포켓닥터를 개발한 벤처기업 MRT의 바바 도시마사 대표.
원격의료 전용 앱인 포켓닥터를 개발한 벤처기업 MRT의 바바 도시마사 대표.
경쟁이 조금씩 뜨거워지는 일본의 원격의료 관련 업체들에 비해 일본 의사단체들은 원격의료 활용에 그렇게 적극적이지는 않다.

이사카와 히로미 일본의사회 상임이사는 “의사회 입장은 환자 진료에서 대면진료가 원칙이다”라며 “의사는 초진 환자와 대면진료를 한 뒤 재진하거나 왕진 시 원격진료를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정도”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원격의료를 이끌고 있는 일본원격의료학회도 마찬가지다. 도후쿠지 이쿠오 원격의료학회 사무국장은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는 낙후 지역이나 의사가 부족한 지역에서 많이 이뤄진다”면서 “그러나 아직은 대부분 의사가 원격진료의 필요성을 못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현재 일본에서 원격의료가 가장 활발한 분야는 원격화상진단과 원격병리진단이다. 원격화상진단은 지역 병원에서 찍은 컴퓨터단층촬영(CT) 사진과 자기공명영상(MRI)을 대학병원이나 종합병원에 전송해 전문의가 대신 판독을 해주는 것을 말한다. 또 원격병리진단은 외과의사가 수술실에서 환자의 병리조직을 원격화상으로 병리학 전문의에게 보내 진단을 받는 것이다. 이를 통해 의사는 환자의 수술 범위를 결정한다. 이러한 방식의 원격의료 건수는 연간 250만 건에 이른다. 물론 환자가 외딴섬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경우 멀리 있는 의사가 환자의 상태를 체크하는 경우엔 재택원격의료가 활용되고 있다.

하세가와 다카시 일본원격의료학회 상임이사는 “집에 있는 환자와 의사 간 원격의료인 재택원격의료는 연간 100만∼200만 건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택원격의료의 경우 2014년 기준으로 병원은 18곳, 진료소는 544곳에서 시행하고 있다.

국내 원격진료, 여전히 논란 중

국내 최초 원격의료 시범사업은 28년 전인 1988년에 있었다. 서울대병원과 연천보건소 간 원격영상진단 시범사업이었다. 이후 2002년 의료법 개정으로 의사-의료인 간 원격의료 제도가 도입됐다. 2010년에는 원격진료의 핵심인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18대 국회에 제출했지만 야당과 의료계, 시민단체 등이 ‘의료 영리화’와 대형병원 쏠림 우려 등의 문제를 제기해 논의가 되지 못했다.

19대 국회에 들어와서도 의사-환자 간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을 2014년 4월 제출했다. 동네의원 중심의 원격의료로만 한정해 대형병원 쏠림 가능성을 막았다. 현재 도서벽지 주민, 군 장병, 거동이 불편한 노인 및 장애인 등 의료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원격의료의 유효성과 안전성 검증을 위해 시범사업을 하고 있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2014년 3월 제1차 규제개혁장관회의 후속조치 계획으로 원격의료 도입을 추진했지만 의료법인 영리자법인 설립 허용, 병원 내 부대사업 범위 확장과 함께 발표되면서 의료 영리화를 위한 정책으로 오인돼 법안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대한의사협회는 대면진료를 대체하는 원격진료를 반대하는 입장이다. 의협 관계자는 “안전성 유효성에 대한 공개적인 검증이 없이 일방적인 정부 추진에 반대하며 완전 공개를 전제로 시범사업을 통한 검증이 우선”이라고 주장했다.

반면 복지부는 원격의료 활성화 방안의 하나로 의료기관 방문이 어려운 재택 환자에게 방문간호사와 협력해 원격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검토 중이다. 일본에선 활발하게 진행되는 방식이다. 현재는 방문간호사가 환자의 집을 방문할 때 의사가 발급한 방문간호지시서대로 간호행위만 하게 돼 있다. 환자 상태 변화에 따른 다른 조치가 불가능하다. 원격의료가 적용되면 의사와의 원격의료를 통해 환자 상태에 따른 방문간호지시서 변경이 가능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외에도 복지부는 일본처럼 고혈압 당뇨병 등 만성질환자들을 대상으로 전화 상담을 통해서도 수가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상담수가 제도 도입도 검토 중이다. 이것이 현실화되면 스마트폰을 이용한 상담이 활발하게 이뤄져 일본처럼 화상 상담이 보조적인 수단으로 사용될 것으로 전망된다.

도쿄=이진한 기자·의사 likeday@donga.com
#원격의료 진료#앱 포켓닥터#일본 원격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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