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가 좋아 한 모금? 여성-청소년 유인하는 ‘흡연의 덫’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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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배 이제는 OUT!]<2> 규제 사각 ‘가향 담배’

대학생이 된 후 담배를 배웠다는 원미정 씨(21·여)는 주로 멘톨 담배를 피운다. 멘톨은 박하 향과 비슷하게 상쾌한 느낌을 주는 화학물질. 원 씨는 “멘톨을 포함해 과일이나 코코아, 바닐라 향 등을 포함한 담배는 향이 좋은 것은 물론이고 포장도 예쁘다”며 “일반 담배는 ‘아저씨’가 떠오르는데, 이 같은 담배는 날씬하고 세련된 ‘아가씨’가 연상된다”고 말했다.

가향 담배는 멘톨 등 첨가물을 통해 달콤하고 상쾌한 향과 맛을 더해줌으로써 담배 특유의 떫고 텁텁한 맛을 줄인 담배를 뜻한다. 문제는 이 같은 가향 담배가 멀쩡했던 여성이나 청소년 등을 흡연으로 유인한다는 점이다.

2013∼2014년 미국 청소년(12∼17세) 1만3651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흡연 청소년의 81%는 “가향 제품으로 처음 담배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흡연을 하게 된 이유 역시 상당수가 “좋아하는 향이 들어있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국내 상황도 비슷하다. 한국건강증진개발원에 따르면 가향 담배의 일종으로 캡슐을 터뜨려 특정한 맛과 향이 나도록 한 ‘캡슐 담배’의 시장 점유율이 2012년 0.1%에서 2015년 8.3%로 급증했다. KT&G 내부 자료에 따르면 캡슐 담배의 판매가 20, 30대는 물론이고 장년층에서도 점차 확대되는 추세다. 지난해 1월 기준 KT&G가 판매하는 담배 71종 중 27종(38%)이 멘톨 커피 모히토 등을 넣은 가향 담배다.

가향 물질 자체도 유해성이 있다는 연구 결과가 속속 나오고 있다. 흡연 욕구를 자극하고 담배 의존성을 강화한다는 것. 가장 많이 쓰이는 가향 물질인 멘톨은 담배 연기가 목에 주는 자극을 느끼지 못하게 만들어 담배를 더 많이 피우도록 유도하고, 코코아 향은 기관지를 확장하는 물질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에 담배 연기를 더 깊이 빨아들이게 한다. 또 첨가물이 연소하는 과정에서 발암물질인 아세트알데히드 등 새로운 화합물을 만들기도 한다.

상황이 이런데도 국내에서는 가향 담배에 대한 별다른 규제가 없다. 국민건강증진법의 ‘가향 물질 함유표시 제한’ 내용이 유일한 가향 담배 규제다. 그나마 물질 자체를 규제하지 않고 “가향 물질에 대한 내용을 담뱃갑에 그림이나 사진 등으로 표시하거나 광고할 수 없다”는 수준이다.

이에 보건복지부는 10일 비(非)가격 금연 종합대책을 발표하면서 “가향 담배 규제 방안을 2018년까지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우선 질병관리본부와 식품의약품안전처가 올해부터 내년까지 2년간 가향 담배가 청소년 흡연에 미치는 영향과 가향 물질의 유해성에 대한 연구를 진행할 예정이다. 복지부는 이 연구 결과를 반영해 규제안을 만들 방침이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보다 빨리 강도 높게 가향 담배 규제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외국에서는 가향 담배 규제가 강력히 시행 중이다. 미국은 2009년부터 멘톨을 제외한 과일향, 사탕향, 허브향 등 가향 물질의 사용을 금지했다. 유럽연합은 이달 20일부터 멘톨을 제외한 가향 물질 및 캡슐을, 2020년부터는 멘톨 사용도 금지할 예정이다. 터키는 2019년부터 멘톨을 포함한 모든 가향 담배의 제조를, 2020년 5월부터는 판매도 금지한다.
 
이지은 기자 smiley@donga.com
#가향 담배#향기#흡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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