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aling Travel]혼다 스즈키 야마하 창업한 일본 장인정신의 전설적 성지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9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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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alth&Beauty]조성하 기자의 힐링투어
스터디 투어의 명소, 하마마쓰를 가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젊은 시절 17년간 지켰던 하마마쓰 성. 여기서 천하통일의 꿈을 키워 이뤘다고 해서 ‘출세의 성’으로 불린다. 하마마쓰(일본 시즈오카 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젊은 시절 17년간 지켰던 하마마쓰 성. 여기서 천하통일의 꿈을 키워 이뤘다고 해서 ‘출세의 성’으로 불린다. 하마마쓰(일본 시즈오카 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인문지리(人文地理·Human geography)’라는 말이 있다. 사람의 활동에서 비롯되는 모든 현상과 결과를 그 사람이 속한 지리 등 자연 환경을 통해 이해하려는 것이다. ‘자연환경이 삶과 문화를 결정한다’는 지리관이다. 일본에서 인문지리의 시각이 얼마나 효과적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을 경험했다. 도쿄의 남쪽 태평양변 시즈오카 현의 하마마쓰(濱松) 시다. 이곳의 인구는 80만 명. 도쿄와 교토(오사카)를 잇는 국도 1호선인 도카이도(東海道)의 중간쯤에 있다. 옛 수도와 새 수도의 중간에 있는 하마마쓰가 내게 인문지리 교과서로 다가온 이유. 그건 혼다(HONDA) 스즈키(SUZUKI) 야마하(YAMAHA)라는 세계적인 오토바이의 창업자가 모두 이 부근에서 태어나고 여기서 창업했기 때문이다. 우연의 일치일까? 그럴 수도 있겠다. 그런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럴 만한 이유와 배경이 있었다. 그걸 사람들은 이렇게 설명한다. 이곳 주민의 정서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물건 만들기) 정신과 도전정신의 발현이라고. 그 정신은 어려울 때마다 자신과 이웃에게 던져온 투박한 사투리 ‘야라마이카(やらまいか)?’에 지금도 살아있다고. 이 말은 ‘한번 해보지 않겠어?’라는 뜻이다.

일본 茶의 명산지, 시즈오카

시즈오카는 도쿄와 가깝다. 후지산도 멀지 않다. 시즈오카는 아시아나항공이 인천에서 매일 오가는데 날씨가 좋은 날이면 착륙할 때 비행기 창으로 후지산을 볼 수 있다. 공항 명칭을 ‘후지산 시즈오카’라고 한 것도 그 때문이다. 시즈오카는 일본 차(茶)의 명산지다. 그래서 공항에서 50km 서편 하마마쓰로 가는 도중에 눈에 들어오는 풍광도 오로지 차밭 일색이었다. 도중 가케가와에서 한 식당에 들렀다. ‘스미야키 레스토랑 사와야카’라는 곳이었다. 스미야키(炭燒き)는 ‘숯불구이’란 뜻. 실내는 고기 굽는 냄새와 희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숯불화덕의 석쇠에서 사과처럼 동그랗게 만든 패티(햄버거용 고기)를 연신 구워내는 주방에서 스며 나온 것이다. 그걸로 만든 햄버거스테이크의 이름은 ‘겡고쓰’(250g·1만1000원). 숯은 명품으로 이름난 ‘빈초탄(備長炭·너도밤나무로 만든 최상품 숯)’만 쓴다고 한다.

겡고쓰 햄버거스테이크는 먹는 방식도 특이했다. 뜨거운 쇠판에 올려 테이블로 가져온 뒤 종업원이 가위로 반 토막 내 다시 굽는다. 호주산 쇠고기를 갈아 일본식 간장양념으로 재웠는데 맛이 기막혔다. 1977년 창업해 일본 전국에 알려졌지만 지점 28개는 오로지 시즈오카 현에만 있다. ‘맛보고 싶으면 시즈오카로 오라’는 것이다. 고향에 대한 자긍심과 음식에 대한 프라이드가 부러웠다.

일본의 에디슨, 혼다 소이치로

‘이쯤에서 괜찮겠지?’

‘글쎄요. 그렇게 하지요.’

‘행복했어.’

‘정말 행복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도 감사해. 괜찮은 인생이었어.’

1973년 어느 날 혼다의 혼다 소이치로(本田宗一郞·1906∼1991) 사장과 후지사와 다케오(藤澤武夫·1910∼1988) 부사장이 나눈 뜻 모를 이 대화. 사실은 경영일선에서 함께 물러나자는 말이었다. 1948년 창업 때부터 함께해 온 두 사람. 하지만 후회 없이 거대기업 혼다를 떠났다. 계기는 1년 전 CVCC엔진의 자동차가 미국시장에서 각광을 받은 일이었다. 2년 전 혼다 사장은 차 설계 때 공랭식엔진을 주장하며 수랭식을 주장하는 젊은 기술진과 대립했다. 그러다 천하의 혼다가 자기 고집을 꺾었는데 수랭식 차에 대한 미국시장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혼다는 더이상 젊은 기술진을 능가할 수 없음을 인정하고 은퇴를 결심한 것이다.

혼다는 후타마타(하마마쓰 시)에서 대장장이의 아들로 태어났다. 이곳 고등초등학교를 졸업한 후엔 자동차정비소에서 일했고 후에 피스톤링 제작소도 차렸다. 그는 타고난 기술자이자 지칠 줄 모르는 발명가였다. 한 해에 출원한 특허가 10개가 넘은 적도 있었다. 그가 오토바이를 만들게 된 건 전후(戰後)에 버려진 군용통신기를 보고서다. 거기서 떼어낸 발전기를 자전거에 붙여 원동기로 활용했다. 그 오토바이가 1949년 첫선을 뵌 혼다C형(96cc)이다.

이후 그는 회사를 키워가며 1961년엔 ‘혼다’라는 이름을 전 세계에 알린 오토바이 모델을 개발한다. 지금껏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오토바이 ‘슈퍼카브 55’다. 왼쪽 페달로 기어를 변속시키는(지금도 모든 오토바이가 이 방식으로 구동한다) 세계 최초의 모델이었다. 오토바이 상용화를 이끈 엄청난 발명품이다. 그는 훗날 이렇게 말했다. 국수배달을 하는 형을 위해 고안한 것이라고. 배달통을 들고 늘 한 손으로 운전하는 형을 보며 페달방식을 생각해 낸 것이다. 참고로 혼다는 자기 회사에 어떤 가족도 들이지 않았다. 경영과 소유를 철저히 분리한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나는 점심식사 후 곧장 후타마타 정(町)으로 향했다. 5년 전 문을 연 ‘혼다 소이치로 모노즈쿠리 전승관’을 보기 위해서다. 전승관은 고풍스러운 2층 건물이었다. 거기엔 혼다 오토바이의 최초 모델부터 혼다 사장이 은퇴 후 유유자적하며 그린 그림까지, 혼다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귀한 물건이 전시돼 있었다. 그날 나를 안내하던 다케시 오하시 씨(74)로부터 들은 일화 하나. 혼다 사장이 은퇴 후 고향의 초등학교에 편지 한 통을 보냈다. 핵심은 ‘다메시 히토니’, 풀이하면 ‘도전하는 사람이 되라’는 말이다. 그런 혼다 사장이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있었다. ‘어렵지 않으냐?’는 말이었다. 그는 생전 그 말에 이렇게 응대했다. 해보지도 않고 어렵다는 걸 어떻게 아느냐고.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자가 했다는 말과 비슷하다.

혼다 소이치로는 경영일선에서 물러난 후엔 고문자격으로 회사를 도왔다. 그런 뒤엔 도쿄에서 그림을 그리며 유유자적하다가 81세에 세상을 떴다. 그는 무덤 속에서도 자신이 좋아하던 오토바이 소리를 들으며 후지산을 바라보고 있다.

혼다가 1961년 출시한 슈퍼커브 C105.(왼쪽) 오토바이 모델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혼다 소이치로 모노즈쿠리 전승관에 전시 중이다. 오른쪽은 스즈키 사가 1955년 출시한 최초의 자동차 ‘스즈키 라이트’.
혼다가 1961년 출시한 슈퍼커브 C105.(왼쪽) 오토바이 모델로는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것으로 혼다 소이치로 모노즈쿠리 전승관에 전시 중이다. 오른쪽은 스즈키 사가 1955년 출시한 최초의 자동차 ‘스즈키 라이트’.
‘야라마이카’ 정신의 뿌리

‘한번 해보지 않겠어?’ 하마마쓰를 품고 있는 엔슈(遠州) 지방의 역사는 이 말을 빼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19세기(에도 후기)부터 지금까지 방직업이 자동차산업(이륜차 사륜차)으로, 목재운송업이 제재업으로, 제재업이 다시 기계가공과 피아노제조업으로 성공적인 변신을 해온 원천이 바로 이 야라마이카 정신이기 때문이다.

그걸 눈으로 확인시켜주는 곳이 있다. ‘스즈키 역사관’이다. 여기엔 스즈키 미치오(鈴木道雄·스즈키 창업자·1926∼1998)가 최초로 만든 직조 기계부터 현재 생산 중인 경차까지 스즈키의 변천과정을 보여주는 실물이 전시돼 있다. 스즈키가 엔슈 지방에서 일으킨 산업은 세 가지. 방직기계와 자동차(이륜차, 사륜차), 그리고 피아노 등 악기. 세계적인 피아노 제작사 가와이(KAWAI)도 이곳의 향토기업인데 스즈키 밑에서 일하던 기술자가 창업했다.

하마마쓰 상공회의소에 따르면 하마마쓰 산업의 모태는 19세기 후반에 시작된 방직업과 목재운송업이고 이는 모두 이곳의 지리적 환경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부연하면 하마마쓰가 도쿄와 교토를 잇는 도카이도의 요충지로서 두 도시에 물건을 대기에 가장 적당한 위치에 있기에 산업이 발달했다는 것이다. 산업입지로 손색이 없다보니 방직업이 비교적 일찍 발달했다.

당시 옷감은 아주 귀한 물건이었다. 베틀로 짜야 하니 당연했다. 좀더 빨리, 좀더 힘들이지 않고, 좀더 효율적으로 옷감을 짜는 기계는 없을까. 거기에 처음으로 도전한 사람이 바로 일본에서 ‘모노즈쿠리(장인정신)의 화신’으로 일컬어지는 스즈키 미치오다. 그는 평생 100개 이상의 발명품을 고안해낸 재주꾼으로 이미 10대에 어머니를 위해 방직기 개량에 매달린다. 스물한 살에 혁신적인 직조기를 만들어 이듬해 창업했고, 창업 2년 만에 당시의 요구 조건을 모두 수용한 첨단 방직기를 만들어 일본 전국에 공급해 유명인사가 된다.

그런 그가 오토바이사업에 뛰어든 건 1951년. 직원들이 강풍을 뚫고 자전거로 통근하는 모습을 보고서다. 엔진자전거라는 발상은 이듬해 파워프리 E2로 구체화된다. 이후 이웃한 혼다 사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세계시장에 진출한다. 1955년 혼다가 이륜차로 전국 1위에 오를 즈음 스즈키는 자동차를 출시한다. 경차의 원조로 손꼽히는 전설의 모델 ‘스즈키 라이트’다. 이후 스즈키는 자동차로는 오로지 경차만 생산해 이 분야의 독보적인 존재가 됐다.

▼도쿠가와가 통일 야망 닦은 ‘출세의 성’… 하마마쓰 성▼

‘도전정신’ 상징하는 명소… 초봄 벚꽃세상 장관


‘출세의 성’이라고 불리는 하마마쓰 성. 지금도 도심 한가운데에 건재하다. 지역민에게는 이곳 특유의 ‘도전정신’을 상징하는 특별한 장소이기도 하다.

그 성의 주인은 에도막부를 연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1543∼1616). 그가 성에 주둔한 시기는 29∼45세의 17년간(1570∼1586년). 8세에 부모와 생이별하고 19세까지 이마가와가(家)의 미카와국(國)에서 볼모로 살아온 도쿠가와는 이마가와가 오다 노부나가 군에 패해 전사한 뒤에야 비로소 자유를 얻는다. 그때 오다는 도쿠가와와 ‘기요스 동맹’을 맺고 그를 동쪽 세력의 대표격인 다케다 신겐과의 완충 지대로 삼는다.

반면 도쿠가와는 이마가와의 남은 영지(현재 시즈오카 현)를 차지하기 위해 다케다 신겐과 손을 잡고 정벌에 나선다. 하지만 다케다가 분할점령 약속을 어기자 하마마쓰로 성을 옮긴다(1570년). 이후 오다가 죽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쇼군에 올라 새로운 시대가 펼쳐진다.

당시 도쿠가와의 세력을 견제한 도요토미는 정략결혼을 제안하고 도쿠가와는 신하의 예를 갖춰 그의 딸과 결혼하고는 충성의 표시로 하마마쓰를 뜬다(1586년).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임진왜란 도중 숨지자 열도는 또다시 동서로 나뉘어 덴카비토(天下人)를 가리는 전쟁으로 돌입한다. 동서전쟁은 세키가하라 전투(1600년)에서 결판난다. 최후의 승리자는 동군을 이끈 도쿠가와. 그는 천하를 재통일하고 쇼군 직에 오른다. 역사가 하마마쓰를 ‘출세의 성’이라 부른 건 이때부터. 천하통일을 위해 17년간을 숨죽이고 준비해온 곳이어선데 주민들은 그걸 ‘도전정신’으로 이해한다.

◇하마마쓰 성:3월 하순 덴슈가쿠(최고층의 탑 모양 건물) 주변으로 360그루 벚나무가 꽃을 피운다. 현지전화 053-453-3872

▼Travel Info▼

◇찾아가기
▽시즈오카:인천∼시즈오카 직항 운항 ▽하마마쓰 초 △공항: 서쪽 50km △신칸센(히카리 호):도쿄에서 89분, 신오사카에서 83분 소요

◇관광정보: http://hamamatsu-daisuki.net/lan/kr

하마나코 호수의 명물 먹거리인 장어덮밥. 이시카와 전문식당에서 오사카 스타일로 맛볼 수 있다.
하마나코 호수의 명물 먹거리인 장어덮밥. 이시카와 전문식당에서 오사카 스타일로 맛볼 수 있다.
◇음식과 술 ▽음식 △하마나코 장어: 바다와 연결된 하마나코 호수에서 양식한 장어로 이곳 특산물. 전문식당 ‘이시카와(石川)’에선 오사카 스타일(직화구이)로 낸다. 이나사 초, 053-542-3377 ▽술 △하나노마이(花の舞) 슈조(酒造):1864년 창업. 시즈오카 현에서 계약 생산하는 야마나니시키(주조미)를 미나미알프스 산악에서 흘러내리는 지하수를 이용해 양조한 사케(일본 술). 11월부터 이듬해 6월까지 견학가능. 하마기타 구, 053-582-2121. www.hamanomai.co.jp

시즈오카 현의 대표적인 일본술 ‘하나노마이’.
시즈오카 현의 대표적인 일
본술 ‘하나노마이’.
◇이벤트 ▽하마마쓰 바(Bar) 호로요이 마쓰리: 8월 첫 주 사흘간(화 수 목) 시내유흥가(다마치 유라쿠가이 도리이)의 이자카야와 바, 식당이 펼치는 음식축제. 3000엔짜리 티켓 한 장으로 세 곳에서 각각 20∼30분 이내 술과 음식을 즐길 수 있다.

◇전시관 ▽혼다 소이치로 모노즈쿠리 전승관:www.honda-densyokan.com ▽스즈키 역사관:www.suzuki-rekishikan.jp (일본어) www.inhamamatsu.com/art/suzuki-plaza.php(영어)

여행상품

하마마쓰는 한국의 기업과 학교가 스터디 투어 목적지로 즐겨 찾는 곳. 상세한 안내는 교육전문여행사 TNC투어(대표 조성영) 02-734-2323

하마마쓰(일본 시즈오카 현)=조성하 여행전문기자 summer@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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