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시대를 풍미했다가 이제는 거의 사라진 진공관이 반도체 업계의 난제를 해결할 묘안으로 떠올랐다. 반도체 칩 성능이 18개월마다 2배로 증가한다는 ‘무어의 법칙’이 조만간 무너질 거라는 어두운 예측 속에 재미 한인 과학자가 진공관 원리를 이용해 반도체 칩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기술을 개발해 주목받고 있다.
미국 피츠버그대 전기·컴퓨터공학과 김홍구 교수(사진)팀은 전자를 반도체와 같은 고체 속이 아닌 진공 속에서 움직이도록 함으로써 반도체의 한계를 넘을 수 있다고 2일 밝혔다.
과학자들은 전자가 이동하는 반도체 회로의 폭을 줄이는 방식으로 반도체 칩 성능을 높이려 하고 있다. 최근 회로의 폭을 10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수준까지 좁히면서 무어의 법칙을 잘 지켜왔지만, 회로 폭이 작아지면 전자의 움직임을 조절하기 힘들고 열도 많이 발생해 한계에 이를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일반 반도체 칩에서는 전자가 고체를 따라 움직이며 여기저기 부딪히고 흩어지는 탓에 속도를 높이기 어려웠다.
김 교수팀은 ‘진공관’ 속 전자는 허공 속을 움직인다는 점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진공관은 금속에 높은 전압을 가하면 전자가 허공에 방출되는 특성을 이용한 장치다. 금속이나 반도체에서 빠져나온 전자는 공기 중에서 60nm 정도의 거리는 어떤 충돌도 없이 날아간다는 것인데, 연구팀은 반도체에서 20nm 떨어진 곳에 전자를 잡는 장치를 설치했다.
또 연구팀은 기존 진공관의 경우 전자를 내보내기 위해 10V가 넘는 높은 전압이 필요했던 문제도 해결했다. 반도체 표면에 이미 존재하는 전자층에 절단면을 만들어 0.1V의 낮은 전압에서도 전자가 쉽게 빠져나오게 한 것이다.
김 교수는 “이번 기술을 활용하면 반도체 칩의 성능을 10∼100배나 높일 수 있다”며 “무엇보다 기존 회로에 큰 변화를 주지 않고 간단히 적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산업적 활용 가치가 클 것”이라고 말했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