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뉴스 미디어업계에는 2명의 여걸(女傑)이 있다. 애리애너 허핑턴 씨(60)와 티나 브라운 씨(57)다. 허핑턴 씨와 브라운 씨는 각각 ‘허핑턴포스트’와 ‘데일리비스트’라는 인터넷뉴스 매체를 운영하고 있다.
신문산업의 전반적인 침체 속에서 이들이 운영하는 인터넷매체는 큰 폭의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이들의 또 하나의 공통점은 신문 잡지의 강점이라고 할 수 있는 탐사보도를 인터넷뉴스에 접목하려 하고 있다는 것이다. 신속성만으로는 인터넷뉴스가 독자에게 어필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판단 아래 심층성을 보강하는 전략이다.
데일리비스트는 5일 워싱턴포스트에서 하워드 커츠 기자를 영입했다. 커츠 기자는 30년 경력의 워싱턴포스트 기자로 CNN 토크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허핑턴포스트는 지난달 뉴스위크에서 하워드 파인먼, 뉴욕타임스에서 피터 굿맨 기자를 데리고 왔다.
2005년 첫선을 보인 허핑턴포스트는 현재 뉴욕타임스 웹사이트와 맞먹는 4500만 명의 월 방문자를 기록하고 있다. 2008년 시작한 데일리비스트도 월 방문자가 1000만 명으로 웬만한 신문사 웹사이트를 능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 인터넷매체의 취재기자는 10명 정도에 불과하다. 뉴스보다는 논평에 주력하기 때문에 기자를 많이 보유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허핑턴포스트와 데일리비스트는 블로그 성격이 강하다. 뉴스는 다른 매체의 뉴스에 신속하게 링크를 걸어 보여주는 대신 직업기자는 아니지만 전문성 있는 일반인으로 논설진을 구성해 심도 있는 논평을 싣고 있다. 허핑턴포스트가 자사를 소개할 때 ‘인터넷신문’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4월부터다. 이전에는 ‘뉴스블로그’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최근 이들 인터넷매체가 신문 잡지 출신 베테랑 기자를 적극 영입한 것은 논평뿐만 아니라 보도 부문에서도 ‘깊이’를 보강하기 위한 것이다.
심층보도 강화는 두 여성 경영자의 개인적인 경쟁심리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데일리비스트의 브라운 씨는 경영 부진을 겪는 미디어회사를 정상화하는 데 탁월한 능력을 발휘해왔다. 이 과정에서 ‘하이힐을 신은 스탈린’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영국 출신인 브라운 씨는 25세의 젊은 나이에 태틀러라는 영국 잡지의 편집장을 맡아 실적을 회복시킨 후 미국으로 건너와 배니티페어, 뉴요커 등 맡는 잡지마다 큰 성공을 거뒀다. 올 3월 그가 주최한 ‘제1회 세계 여성 서밋(WWS)’에는 힐러리 클린턴 미 국무장관, 체리 블레어 전 영국 총리 부인 등이 연사로 참석했을 정도로 정치적 영향력도 크다.
그리스 선박 재벌과 결혼했다가 이혼한 허핑턴 씨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40대 중반부터 정치평론가로 활동해오다가 55세 때 허핑턴포스트를 설립했다. 허핑턴 씨는 정치평론가 시절에는 보수 성향이었으나 허핑턴포스트에는 진보적 색채의 글을 많이 싣고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워싱턴포스트와 더불어 꼭 봐야 할 매체’로 허핑턴포스트를 꼽으면서 유명해지기 시작했다.
브라운 씨가 1980년대 초반부터 이름을 날렸다면 허핑턴 씨는 2000년대 중반이 돼서야 주목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최근 경영실적이나 지명도에서는 허핑턴 씨가 브라운 씨보다 한발 앞서고 있다. 지난달 데일리비스트가 뉴스위크 인수를 적극 시도한 것은 허핑턴 씨를 의식한 브라운 씨의 공세였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브라운 씨의 뉴스위크 인수 시도는 결국 실패했다.
탁월한 경영능력으로 미국 미디어업계에서 주목받아온 이들의 경쟁은 앞으로 심층보도 분야에서 더욱 가열될 것으로 전망된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되든 뉴스저널리즘의 미래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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