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뷰티]질병, 인류의 희로애락과 함께한 ‘불청객’

  • 입력 2006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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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년대까지만 해도 국민 대다수가 웬만한 기생충에 감염돼 있었다.

기생충 질환은 '국민병'으로 불릴 정도로 한국인을 괴롭혔다. 정부가 '기생충 질환 예방법'을 만들어 기생충 박멸에 나섰던 시절이다.

당시 학생들은 교사가 나눠 준 조그마한 봉투에 자신의 대변을 넣어 제출해야 했다. 제때 내지 못하면 심한 꾸중을 들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하면 친구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결과가 나오는 날, 기생충 질환이 있는 친구의 것을 나눈 바람에 구충제도 함께 먹어야 했다. 지금은 추억이 된 얘기들이다.

일제시대에 콜레라가 퍼지자 사람들은 관청에서 발행한 문서의 붉은 인주가 찍힌 부분을 오려 환자의 이마에 붙이거나 이를 태운 재를 물에 타 먹였다. 또 붉은 글씨로 장비, 포도대장, 헌병, 순사 등의 이름을 써 붙였다. 붉은 부적을 문기둥에 붙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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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듬해에도 콜레라가 극성을 부렸다. 교통이 끊기고 입학시험이 연기되는 등 온 나라가 법석을 떨었다. 붉은색 옷을 입으면 콜레라에 걸리지 않는다는 소문이 돌아 여자는 붉은 속바지, 남자는 붉은 주머니가 달린 바지가 크게 유행했다.

서양에서도 콜레라가 창궐하면 어김없이 붉은 옷, 붉은 목도리, 붉은 스타킹이 유행했다. 귀신이 붉은 색을 두려워한다고 믿는 것은 동서가 다르지 않았다.

한 시대에 만연한 질병은 삶의 모습을 바꿔 놓았다. 새로운 문화를 형성했고, 미신을 만들어 특정한 패션을 유행시켰다.

역사를 바꾼 질병도 있다. 페스트로 서양의 중세가 막을 내렸고, 천연두로 아메리칸 인디언은 무력화됐다.

역으로 문명의 발전은 질병의 양상을 바꾸었다. 의학 발전으로 전쟁보다 더 무섭다는 '마마(천연두)'는 이미 사라진지 오래다. 경제성장에 따른 식생활의 변화는 비만, 당뇨 등 예전에 문제되지 않았던 질병을 만들어냈다.

질병은 시공을 초월해 인류의 삶을 끊임없이 간섭해 왔다. 질병과 인간은 오랜 세월 서로 정복하고 진화하며 질긴 인연의 끈을 이어왔다.

인간은 지금도 '적과의 동침' 중이다.》

인간과 질병, 정복하고 정복당하고 질긴 악연

‘염병’이란 말이 있다. 장티푸스의 속칭이다.

옛날에는 전염병이 한번 돌면 손 쓸 새도 없이 떼죽음을 했다. 그래서 ‘염병할’이란 염병 같은 몹쓸 전염병에 걸리라는 나쁜 욕이었다.

15세기 유행했던 매독도 욕으로 사용됐다. 영국인에게는 ‘프랑스 발진’, 파리 사람에게는 ‘독일 질병’, 이탈리아 플로렌스 사람에게는 ‘나폴리 질병’, 일본인에게는 ‘중국 질병’이었다.

알츠하이머병에 걸려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가장. 남은 삶이 길어야 1년인 암 말기의 여자 주인공. 시한부 삶 판정을 받고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사랑을 지키려는 남자 주인공. TV 드라마나 영화에서 ‘불치병에 걸린 주인공’은 시청자와 관객의 마음을 흔들기 위한 단골 레퍼토리다.

우리는 질병을 통해 상대를 위협하고, 상대를 무시하며, 자극받고 동요한다. 질병이 우리의 감정과 언어, 문화를 지배한다.

○감염성과 비감염성

한국표준 질병분류표에 따르면 현재 한국인이 앓을 가능성이 있는 질병은 무려 1만2000여 가지에 이른다. 시간이 갈수록 듣도 보도 못한 질병이 자꾸 생긴다.

신체의 기능이 떨어지거나 조화를 이루지 못하고, 육체적 정신적 고통 또는 불쾌감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불가능한 상태를 ‘질병’ 또는 ‘질환’이라고 한다.

질병에는 감염성과 비감염성이 있다. 감염성은 바이러스 세균 곰팡이처럼 병원체가 인체에 들어와 걸리는 병이다. 비감염성은 고혈압, 당뇨처럼 병원체 없이 일어난다.

오늘날은 비감염성이 감염성보다 중요해졌다. 항생제의 발견으로 감염성 질병 치료가 쉬워졌기 때문이다. 의학기술 발달로 과거에 발견하지 못했던 질병을 진단할 수 있는 것도 한몫했다.

비감염성 질병은 원인이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경우가 많다. 여러 종류의 위험인자가 복합적으로 질환을 유발시키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의 저주에서 과학의 대상으로

고대 바빌로니아인들은 질병을 ‘신의 징벌’로 생각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신들의 전쟁의 결과로 질병이 생겼다고 믿었다. 고대 이스라엘인들은 ‘신의 증거’로 인식했다. 질병을 신과 결부시켜 운명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따라서 질병에 걸리면 신의 탓으로 돌렸다.

우리 조상들도 다를 바 없었다. 질병을 귀신이 인간의 죄에 대해 내린 벌이나 보복으로 여겼다.

불과 100년 전만 해도 인류는 질병의 가장 흔한 원인인 세균의 존재조차 알지 못했다. 몸살이나 감기를 신의 저주로 생각할 정도였다.

하지만 과학이 발전하면서 점차 질병과 맞서 싸우기 시작했다. 항생제 발견과 새로운 치료법으로 질병의 고통과 공포로부터 해방을 꿈꾸고 있다.

○질병도 변화한다

병의 기원을 연구하는 ‘태고병리학자’들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이전부터 질병이 존재했을 것이라고 추측한다. 2001년 경기도 양주에서 발견된 400년 전 소년 미라의 사망원인은 결핵이었다. 간염 바이러스도 있었으며 각종 중금속에 오염돼 있었다.

이처럼 유골이나 미라에서는 지금도 인류가 고통 받는 다수의 병이 발견된다. 소아마비, 골다공증, 동맥경화, 간염, 늑막염, 담석, 충수염, 기관지 폐렴….

인간의 질병 가운데는 다른 동물에게서도 발견되는 것이 있지만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 생긴 질환도 많다.

특히 대규모 집단생활이 확산되면서 개인의 생존을 넘어 인류 전체의 생존에 영향을 끼치는 질병이 나타났다. 이른바 ‘전염병’이다. 사람들은 질병이 항상 같은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전에 많은 목숨을 앗아간 질병이 지금은 기억에서조차 희미해진 경우도 많다. 인간의 역사와 더불어 질병의 역사도 변하고 있는 것이다.

○검진과 예방이 최선

대부분의 질병은 관리와 예방이 가능하다. 한국인 사망률 1위인 암 가운데 폐암은 금연으로 80∼90% 예방될 수 있다. 간암은 간염예방접종으로 70∼80% 막을 수 있다. 위암 대장암 유방암 자궁암은 비교적 진단이 쉽고 조기에 발견되면 완치할 수 있다.

이처럼 정기 건강검진, 생활습관 교정, 운동 등을 통해 충분히 질병의 조기 발견과 예방이 가능하다.

건강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지속적인 건강 체크가 필수다. 자신에게 맞는 방식으로 건강을 관리하면 질병의 위협에서 얼마든지 벗어날 수 있다.

글 =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디자인 = 김성훈 기자 ksh97@donga.com

▼ 페스트 콜레라 독감 사스… 세계 역사를 뒤흔든 질병들▼

그리스 로마 시대에 퍼진 ‘역병’은 아테네와 로마 제국의 멸망을 가져왔다. 어떤 질병인지는 모르지만 문헌상 기록된 최초의 전염병이다.

13세기 중세시대에 확산된 한센병은 사회적인 통제가 개입된 최초의 질병이다. 한센병 환자들은 격리 수용됐고, 복장이나 행동 등에도 규율이 정해졌다.

한센병은 14세기 중엽부터 쇠퇴하기 시작했다. 흑사병(페스트)의 확산 때문이다. 14세기의 페스트는 중세 유럽을 붕괴시키고 근대시대를 열었다.

페스트로 유럽 인구는 현저히 줄었다. 이로 인해 농업 노동력이 귀해졌고 도시에선 수공업자가 급증하면서 초기 자본주의의 모습이 나타냈다. 당시 사람들에게 페스트는 공포 그 자체였지만 결과적으로 근대시대의 도래를 앞당겼다.

15세기 르네상스시대를 맞아 ‘성의 억압’에서 해방되자 매독이 기승을 부렸다. 특히 전쟁 때 매춘부를 통해 군인들에게 전염된 매독은 이들이 전쟁이 끝난 뒤 고향으로 돌아가면서 급속하게 퍼졌다. 17, 18세기를 거치면서 매독은 더욱 확산됐다.

19세기엔 ‘백색 페스트’로 불리는 결핵의 습격을 받았다. 비위생적인 의식주가 주된 원인이었다. 당시 평균수명은 15세 정도로 추정된다. 이 시대에 많은 사람이 결핵으로 죽었다.

비슷한 시기 조선에는 콜레라가 침입했다. 인도 갠지스 강 유역에서 시작된 콜레라는 중국을 거쳐 조선에 들어와 전 국토를 휩쓸었다. 상업 발달에 따른 교역 증가가 원인이었다. 조선 특유의 장례 풍속도 콜레라 창궐에 영향을 미쳤다. 문상객들이 전염병의 진원인 시체를 옆에 두고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이후 독감이라고 불리는 인플루엔자와 암이 인류를 위협했다. 전염력이 강하고 잠복기가 대단히 짧은 인플루엔자에 의해 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 1918년 스페인 독감은 2500만 명의 생명을 앗아갔다. 또한 문명의 발달로 생긴 발암물질에 노출되면서 암이 두려운 질병으로 급부상했다.

21세기 들어와서는 중증급성호흡기증후군(SARS·사스), 조류 인플루엔자 등이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넣으며 인류의 역사를 다시 한번 뒤흔들 태세다.

이호갑 기자 gd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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