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기세포 이용 태아 치료길 열리나

  • 입력 2005년 11월 4일 03시 0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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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줄기세포를 닭의 수정란에 이식했다고?

지난해 11월 마리아병원 박세필 생명공학연구소장과 서울대 의대 왕규창 학장(신경외과) 연구팀이 ‘이색적인’ 줄기세포 연구 성과를 발표했다. 수정한 지 3일 된 닭의 배아에서 척수 신경관 일부를 잘라낸 후 줄기세포를 이식하자 상처가 아물더라는 것.

다양한 질병을 앓고 있는 동물에 줄기세포를 이식해 효과를 확인하는 실험은 세계적으로 활발하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기 전 단계인 수정란에 이식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연구팀은 지난해 성과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 12일부터 5일간 미국 워싱턴에서 열리는 ‘미국신경과학회 정기 심포지엄’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신경과학 분야에서 세계 최대 규모로 개최되는 이 행사에서 연구팀의 논문은 1만6000여 편의 논문 가운데 ‘랭킹 700위’ 내에 들어 세계 언론에 배포되는 보도자료집에 수록된다. 이 연구가 특별히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줄기세포로 치료하는 대상이 상당히 파격적이다. 박 소장은 “인간으로 비유하면 산모 배속에 있는 태아를 치료한다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사람은 수정 후 26일 정도면 척수 신경관이 등 쪽으로 둥글게 말리면서 닫힌다. 만일 유전적 결함으로 이 관이 닫히지 않으면(척수 신경관 결손) 뇌와 척수에 염증이 생기고 비뇨기 계통이 비정상적으로 작동하는 등 심각한 증세가 나타난다. 대략 수천 명 가운데 1명이 이런 선천성 질환을 갖고 있다.

왕 학장은 “미국 대학병원 3군데에서 외과수술을 통해 태아의 벌어진 신경관 부위를 봉합하는 임상시험이 진행되고 있다”며 “만일 줄기세포를 이용한다면 작은 내시경을 삽입해 살짝 뿌려 주는 것만으로도 치료가 가능해 현재 방법보다 훨씬 안전할 것”이라고 말했다.

연구팀은 척수 신경관이 벌어진 닭의 수정란 수십 개에 인간의 줄기세포를 넣자 7일간 생존하는 비율이 70%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보통 닭의 경우 수정 후 21일이 지나야 알을 깨고 병아리가 태어난다. 7일이면 전체 수정란 시기의 3분의 1에 불과하지만 지난해에 비해 성공률을 두 배 높인 게 큰 의미가 있다.

또 줄기세포가 아교처럼 벌어진 부위를 감쪽같이 붙인다는 사실도 밝혔다. 줄기세포가 신경관에 이식됐으니 신경세포로 분화될 것이라는 일반적인 예측과는 다른 결과였다.

물론 이 방법이 사람에게 언제 적용될지는 예측하기 어렵다. 하지만 줄기세포를 이용해 선천성 질환을 근본적으로 치료하려는 시도가 한국에서 출발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 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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