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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4년 6월 22일 18시 2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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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시간 15일 오전 8시40분(한국시간 16일 오전 1시40분) 하와이에서 동남쪽으로 약 1800km 떨어진 바다. 프랑스 국립해양개발연구소의 잠수정 ‘노틸(Nautile)’을 타고 태평양의 수심 5000m가 넘는 심해로 탐사를 떠날 채비가 한창이다.
조종사 프랑크 호사자와 부조종사 줄리앙 패누이라는 프랑스인 2명과 함께 잠수정 안으로 들어가니 움직일 공간이 없다. 잠수정에 연결된 로봇팔이 잘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배터리, 산소탱크, 각종 계기를 점검했다. 곧이어 잠수정은 덜컹거리다가 배에서 튕겨 나와 공중에 붕 뜨더니 바다에 잠겨 서서히 가라앉기 시작했다.
잠수정 계기반의 수온계는 섭씨 27도를 가리켰다. 계기반의 수심을 알리는 빨간 숫자는 1∼2초마다 1m씩 늘어났다. 수심 50∼100m 사이를 내려갈 때 수온이 갑자기 떨어졌다. ‘수온약층’이라 불리는 이곳에는 물이 차가워 밀도가 커지기 때문에 위에서 가라앉은 물질이 모인다. 창밖으로 동물플랑크톤 껍질이나 죽은 생물의 조각이 눈에 띄었다.
물 색깔은 처음에 밝은 파란색이더니 수심 180m 정도가 되자 검푸른색으로 바뀌었다. 곧 잠수정 창밖은 암흑세계가 됐다. 9시30분경 수심 1500m, 밖의 수온 2.7도. 잠수정 내부도 점점 추워졌다. 심해 바닥에 도착하면 탐사에 열중해야 하기 때문에 이르긴 하지만 점심식사를 했다. 오이피클, 쇠고기 스테이크, 과일 칵테일을 먹고 물은 마시지 않았다. 9시간 넘게 잠수하는 동안 볼일을 5L짜리 플라스틱 통에다 모두 해결할 수밖에 없기 때문.
9시45분, 잠수정은 수심 2000m를 통과했고 밖의 수온은 2.1도였다. 내부가 추워지면서 호사자씨와 패누이씨가 옷을 껴입었다. 10시24분 수심 3500m, 수온 1.5도. 차가운 벽에는 세 명이 내쉰 숨이 물방울로 맺혔다가 아래로 흘러내렸다. 이제 탐사에 대비해 각자의 자리에 다리를 구부리고 엎드렸다.
11시15분경 수심계가 5000m를 훌쩍 넘겨 5010.3m를 가리켰고 바닥까지 33.3m가 남았음을 알려주었다. 수심은 5043.6m인 셈. 잠수정 밖의 압력은 엄지손가락을 자동차 한 대가 누를 정도. 수온은 1.4도였다. 드디어 태평양 바닥 가운데 어느 누구의 방문도 허락하지 않은 처녀지에 도착했다. 이곳의 위치는 북위 9도34분, 서경 150도1분.
잠수정의 라이트를 켜자 영겁의 세월을 지켜왔을 심해의 푸른 물과 태평양 바닥이 어스름하게 모습을 나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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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임무는 적당한 장소를 선정해 퇴적물 샘플을 얻는 것. 퇴적물 샘플에 든 미생물을 나중에 배양하면 의약품에 쓰이는 유용물질을 얻어낼 수 있다. 채집 장소를 정하는 것은 과학자인 나의 몫. 주변에 동물의 배설물이 널려 있어 미생물이 많을 듯한 곳을 두 군데 선택했고 잠수정의 로봇팔로 퇴적물 샘플을 채집했다.
다음 임무는 심해 생물을 채집하고 사진을 찍는 것. 잠수정은 바닥에 바짝 붙어서 심해생물을 찾아 천천히 움직였다. 바닥에는 5∼6cm 정도 크기의 망간단괴가 빼곡히 널려 있고 군데군데 생물들이 기어간 흔적이 발견됐다. 어떤 곳에는 구멍 주변에 생물이 파낸 흙이 언덕을 이루고 있었고 심해 생물의 배설물도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심해저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수의 생물이 살고 있는 심해 생물의 천국이었다.
오후 2시24분, 눈앞에 하얀색의 길쭉한 꽃병처럼 생긴 해면이 나타났다. 잠수정은 가까이 접근한 후 로봇팔을 뻗어 해면을 부드럽게 쥐고 들어올렸다. 순간 해면 속에 숨어있던 작고 하얀 뱀장어처럼 생긴 물고기가 부리나케 도망갔다. 이후 곧추선 꼬리가 몸통보다 큰 보라색 해삼, 자기 몸통보다 5∼6배나 되는 긴 가시로 걸어다니는 성게, 날개가 달려 새처럼 날아다니는 문어 등을 만날 수 있었다.
‘꼬리민태’라는 심해 물고기는 잠수정을 의식하지도 않고 유유히 헤엄쳐 지나갔다. 조그만 날개를 움직이며 헤엄치는 모습이 천사를 닮았다 해 ‘바다의 천사’라 불리는 동물플랑크톤 ‘클리오니’도 눈앞에 나타났다.
처음 발견한 심해 물고기도 있었다. 머리가 매끈한 달걀 모양인데 희한하게도 눈이 없다. 아마도 빛이 없는 심해에서 살다 보니 눈이 퇴화한 모양이다. 카메라의 셔터를 연방 눌러댔다.
희귀하게도 죽은 후 심해에 가라앉은 고래 뼈를 둘이나 발견했다. 100만년에 2∼6mm씩 자라는 망간단괴가 빼곡히 자란 모습을 보니 수백만 년 전에 죽은 고래의 뼈임에 틀림없다. 역시 로봇팔의 채집 대상이 됐다.
심해 탐사는 오후 4시10분에 끝났고 잠수정은 오후 6시5분에 모선으로 돌아왔다. 이번은 전체 14번의 탐사 가운데 마지막 탐사였다. 또 한국인 최초로 수심 5044m의 태평양 심해저에 직접 들어가 과학탐사를 하고 나왔다는 기록을 세웠다. 인간이 가장 깊게 들어간 최고 기록은 1954년 미국의 잠수장치 ‘트리에스테-2’에 탄 자크 피카르와 돈 왈시가 세운 수심 1만912m다.
김웅서 박사·한국해양연구원 해저환경·자원연구본부 wskim@kor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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