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예술]'사이보그…' 인터넷을 지배하는 '빅 브러더'가 있다

  • 입력 2004년 2월 13일 17시 35분


◇사이보그 나이트클럽/이명행 지음/195쪽 8000원 문학과지성사

이명행의 ‘사이보그 나이트클럽’은 현실세계와 가상세계, 본명(本名)과 아이디(ID), 온라인과 오프라인, 진실과 거짓 사이를 재봉틀의 바늘처럼 왕복하는 소설이다.

인터넷이 제공하는 익명성의 그늘 아래에서 정보분석관 성호경과 경찰 출입 기자 민지수가 만난다. 토론방에서는 정치적인 논쟁을 벌이고 카바레에서는 비정상적인 성관계에 몰입한다. 하지만 사이트마다 다른 아이디를 사용하기 때문에 서로의 실체를 알 수는 없다. 인터넷이 정치적 토론 공간인 동시에 욕망의 내밀한 분출구라는 사실을 암시하는 설정인 셈이다.

그렇다면 이들은 인터넷에서 얼마나 자유로울 수 있을까. 두 사람은 정부 비밀문서의 유출 사건에 휘말리면서 서로의 실체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빅 브러더 격인 ‘도마뱀’의 치밀한 사전 각본에 의해 조종되고 있었음이 밝혀진다. 욕망의 끝에서 실재의 흉측함을 보아 버린 그들에게는 서로를 죽이겠다는 살인충동만이 뒤섞일 따름이다.

현대사회에서 욕망은 인터넷을 따라 흐른다. 사회학자 김종엽은 ‘아이디(ID)는 이드(id)다’라는 말로써 인터넷을 지배하는 욕망의 구조를 제시한 바 있다. 온라인에 접속하고 신분증명을 위해 아이디를 입력하는 순간, 우리는 문자와 숫자로 만들어진 가면을 둘러쓴 익명의 존재가 된다. 가면은 일종의 억압이며, 억압은 욕망을 구조화한다. 영화 ‘마스크’와 ‘반칙왕’에서 보았듯이 가면은 숨어 있는 욕망을 추동하는 조건이다. 아이디라는 가면이 주어지자 리비도의 저장고인 이드는 쾌락의 원리에 따라서 인터넷 공간을 움직여 간다. 현실세계의 억압 구조와 인터넷의 유희 공간을 왕복하는 현대인의 초상을 이 작품은 포착하고 있는 셈이다.

오늘날 우리에게 인터넷 공간의 의미는 무엇인가를 묻고 있는 소설이며, 개연성과 리얼리티에 대한 물음을 지속적으로 던지는 소설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가상현실에 대한 개연성 있는 리얼리티가 손에 잡히지는 않는다. 인터넷과 관련된 오래된 신화를 반복하는 느낌을 받은 것도 그 때문이리라. 라즐로 바라바시의 말처럼 인터넷은 ‘척도(중심) 없는 네트워크’일까, 아니면 저자의 지적처럼 빅 브러더의 은밀한 감시와 조종 아래에 놓인 욕망의 축제일까. 두고두고 생각해 볼 문제이다.

김동식 문학평론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