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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11월 9일 17시 3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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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컴퓨터 그래픽으로 거대한 무리의 움직임을 구현할 때 보통은 하나하나를 특정한 위치에 그린다. 하지만 인공생명 기법은 생명체의 군집행동을 모방해 움직이도록 만드는 기술이다. 예를 들어 개체들 사이의 거리만 생각해볼 때 하나의 개체가 바로 주위의 다른 개체와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아야 한다. 이 조건을 컴퓨터 그래픽에 적용해 각 개체가 복잡 미묘하게 움직이게 하고 전체 무리의 행동을 자연스럽게 만드는 것이 인공생명 기법이다.
그렇다면 인공생명이란 무엇일까. 여럿이 모여 하나를 이루고 우수한 성질만 선택해 진화하며 단순 모방에서 벗어나 창의적으로 행동하는 생명체의 다양한 특성을 인공적으로 구현하는 소프트웨어나 하드웨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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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매트릭스의 기계로봇 센티넬도 인공생명이다. 영화의 센티넬들은 작은 물고기들이 모여 큰 덩치를 이루듯이 거대한 용의 모양을 갖춰 위협하고 하나의 센티넬이 어떤 표적을 확인하면 나머지가 무리로 몰려와 공격한다. 또 센티넬들은 기계세계를 지배하는 절대 권력자의 얼굴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영화의 센티넬은 인공생명 분야에서 연구되는 자율분산 로봇과 비슷하다. 자율분산 로봇은 여러 대로 구성되는데 각자가 자율적으로 주위 환경을 인식하고 다른 개체와 협조한다. 결국 정보를 공유해 전체가 최적의 움직임을 보여준다. 한 예로 자율분산 로봇에 특정 목적지를 찾는 임무가 주어진다면 초기에는 무질서하게 움직이지만 곧 한 개체의 훌륭한 행동을 본받아 모두 목적지를 찾아간다.
조 교수는 “최근에는 여러 대가 스스로 합체하거나 나눠지는 형태인 모듈형 로봇이 개발되고 있다”고 말했다. 벨기에, 스위스, 이탈리아가 참여한 스웜봇(Swarm-bots) 프로젝트가 대표적인 예다. 2001년 10월에 시작된 이 프로젝트에서는 여러 대의 로봇이 정보를 탐색하다가 장애물을 만나면 하나로 이어져 장애물을 피하거나 건너가는 스웜봇이 연구되고 있다. 또 7월 중순 일본 고베에서 열린 로봇지능 관련 국제학회에서는 뱀, 거미 등으로 변신하는 미국 팰러앨토연구센터의 모듈형 로봇이 주목받기도 했다.
앞으로 이런 로봇들은 서로 협력해 미로처럼 만들어진 도시의 하수도를 청소하거나 태양계의 행성을 탐사하는 데 쓰일 수 있다. 어쩌면 스스로 수리하고 조직하고 진화할 수 있는 인공생명인 부부 로봇을 완성해 미지의 행성에 보낼 경우 부부 로봇이 그 환경에 적응해 수많은 자식 로봇을 낳는 SF영화 같은 일이 가능할지도 모른다.
영화에서 매트릭스는 인공지능이 만들어낸 가상현실세계다. 영화의 인공지능은 구체적인 모습이 나오지 않지만, 인간의 뇌를 능가하는 지능을 가진 컴퓨터일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인공생명은 인공지능과 어떤 차이가 있을까.
한국과학기술원 전자전산학과 양현승 교수는 “지능은 생명체의 여러 특징 중 하나”라며 “인공지능이 기억, 추론, 학습 등 지능을 실현하려는 것인 반면, 인공생명은 기존의 생명체를 모방해 새로운 종류의 생명을 창조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이충환 동아사이언스기자 cosmo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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