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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3년 8월 11일 17시 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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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호랑이의 원류인 시베리아 야생호랑이 3대의 삶과 죽음을 담은 EBS 자연다큐 ‘밀림이야기’(14, 15일 오후 10시)를 제작한 박수용 이효종 장진 순동기 PD. 영하 30도의 혹한 속에서 머리에 ‘임금 왕(王)’, 목덜미에 ‘큰 대(大)’자가 새겨진 시베리아 호랑이를 찾아 6년째 헤매고 다닌 이들이다. 시베리아 호랑이는 세계에서 150여마리밖에 남아 있지 않다.
EBS 다큐팀의 프로듀서는 재정형편상 카메라맨을 겸하는 ‘카메듀서’다. 이번 작품에서도 박 PD는 한 벤처기업에 시베리아 자연풍광을 찍어주는 수탁사업의 대가로 받은 제작비를 아껴 촬영비용에 보탰다. 박 PD의 촬영 일지를 통해 추위와 외로움, 예산과 싸우는 자연다큐 PD의 세계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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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카메라 냄새맡고 14대 부숴
박 PD는 1997년 시베리아 호랑이를 찍을 때 30m의 나무 위에 텐트를 치고 영하 30도의 추위 속에서 1년6개월을 버텼다. 주먹밥을 먹고, 대소변도 비닐봉지에 담아 해결한 끝에 BBC도 항공 촬영이 아니면 엄두를 못 낼 시베리아 야생 호랑이를 생생히 찍을 수 있었다.
이번엔 러시아 연해주 페트로바 섬(두만강 동북쪽) 일대 호랑이가 다니는 길목 100여km 구간에 20∼30km 간격으로 땅속에 4개의 잠복 촬영지를 마련했다. 잠복지는 폭 1.5m, 높이 1.5m의 반평짜리 공간. 주변 20∼30m에는 6, 7개의 소형카메라, 나무 위에는 리모컨으로 작동되는 카메라가 설치됐다. 4명의 PD들은 따로따로 잠복지 안에서 모니터를 보며 2년간 호랑이를 기다렸다.
“나무 위는 사람 냄새가 퍼지지 않고, 호랑이가 올라올 수 없어 안전합니다. 그러나 너무 춥고 위에서 내려찍으니까 호랑이가 왜소하게 찍히는 단점이 있어요. 땅속은 호랑이의 습격을 받을 수 있어 위험하지만 비교적 덜 춥습니다.”
호랑이는 희미한 카메라의 냄새를 알아내고 부수기 일쑤였다. 잠복지 주변의 소형카메라 17대 중 온전한 카메라는 3대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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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호랑이 공격받고 나흘 만에 구출
2001년 12월. 박 PD의 카메라 화면에 어미 호랑이와 새끼 호랑이 세 마리가 나타났다. 호랑이는 100여m 밖에서 다가오기 시작했다. 카메라 렌즈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 호랑이의 수염이 박 PD의 손등을 스쳤다. 호랑이는 앞발로 카메라를 박살낸 뒤 두더지처럼 흙을 파헤치고, 담요를 뜯어내고, 지붕 위에서 쿵쿵 뛰었다. 박 PD는 영하 30도의 추위에도 손가락 하나 비비지 못하고 밤새도록 얼어붙은 듯 앉아있어야 했다. 그는 호랑이가 공격한 지 나흘 만에 무전을 받고 달려온 산지기들의 도움으로 구출됐다. 이후 호랑이에게 노출된 이 잠복지는 더 이상 쓸 수 없었다. 그는 새로운 곳에 다시 땅을 파 숨었다.
○ 다큐 찍으며 책 수백권 읽어
박 PD의 야생동물 다큐 촬영의 원칙은 “못 찍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가둬놓고 찍지 않는다”는 것. 야생동물은 갇혔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 스트레스를 받고, 왜곡된 생태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이다.
야생동물을 제대로 찍으려면 길목에서 돌멩이처럼 기다려야 한다. 긴긴 시간 동안 땅속에서 책도 수백 권 읽지만 대부분 사색과 관찰을 하면서 보낸다.
“땅속에 있으면 별별 생각이 다 들어요. 월드컵 때 축구선수였다면 어떻게 골을 넣었을까도 상상하거나, 파도소리는 1분에 몇 번씩 치는지 세보기도 합니다. 감방에서는 바퀴벌레 수를 센다고 하던데…. 가만히 앉아 있으면 낙엽이 지고, 눈이 내리고, 안개가 끼는 자연의 변화가 오히려 더 잘 보입니다.”
박 PD는 ‘반디’(1994) ‘물총새 부부’(95) ‘한국의 파충류’(96) ‘수리 부엉이’(96) ‘시베리아, 잃어버린 한국의 야생동물을 찾아서’(97) 등으로 각종 방송상을 받았다. 그는 결혼식 때에도 전날 산에서 내려와 식을 올린 다음날 바로 산으로 떠났다고 한다.
그는“자연다큐 PD로서 추적보다는 기록자가 되고 싶었다”고 말했다.
전승훈기자 raph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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