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닮고싶고 되고싶은 과학자④]김명자 환경부 장관

  • 입력 2002년 9월 22일 18시 00분


과학자 출신으로서 성공적으로 행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김명자 환경부 장관. - 사진 이만홍작가
과학자 출신으로서 성공적으로 행정업무를 수행하고 있는 김명자 환경부 장관. - 사진 이만홍작가
“과학자로서 연구 경험이 환경부 일을 하는데 큰 힘이 되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과학 지식이 환경문제를 이해하는 기본이 되고, 과학적 방법론이 문제 해결에도 도움이 됩니다.”

김명자 환경부 장관(58)은 국내 최장수 여성장관 기록을 세운 비결에 대해 이렇게 귀띔한다.

“한때 복잡한 화학 문제와 씨름하는 데 엄청난 시간을 보냈지요. 지금 그 당시의 복잡한 미적분학이나 양자역학 문제를 풀라고 하면 사실 엄두가 안 나요. 솔직히 말하면 과학이 인생에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김 장관은 환경부 일을 하게 되면서 ‘그렇지 않다’는 점을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화학을 전공했기에 사건이 터질 때마다 원인과 대안에 대해 빨리 감을 잡을 수 있었다. 그래서 국회의원이나 기자들의 질문에 서면 자료를 참고하지 않고 정확한 수치를 들어가며 답변하는 일이 많다. 환경부 직원들은 업무 보고를 할 때 전문적 내용을 장황하게 설명할 필요가 없어 일하기 편하다고 전한다.

사실 99년 6월 환경부 장관으로 임명될 때 주변의 우려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자연과학자 출신의 장관이 분쟁과 소송이 끊이지 않는 험한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는 것이 쉽지 않아 보였다. 물론 우리의 정치 풍토 상 여성이 장관 업무를 수행하는데 대한 곱지 않은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이런 우려를 멋지게 불식시켰다. 무엇보다 올해 3월 최장수 여성장관 기록을 경신해 주목을 받았다. 역대 여성장관들이 대부분 불과 몇 달만에 물러나 단명한 것에 비하면 기념비적인 일이었다. 또 환경부가 정부 부처 업무평가에서 작년에 이어 올해 6월까지 1위였다.

김 장관은 자신이 여성이라는 점도 일을 풀어 가는 데 강점으로 작용했다고 밝힌다.

“이해 당사자 간의 조화와 협조를 이끌어내는데 여성적인 시각과 접근방법이 큰 도움이 됩니다. 냉철한 논리와 합리성에 근거하되 감성적인 접근도 잊지 않았지요.”

장관 부임 직후 가장 어려웠던 것은 낙동강물관리종합대책을 세우는 것이었다. 낙동강 유역 주민들은 댐을 건설하는 계획이 대책에 포함돼 있다며 반대해 애를 먹었다. 김 장관은 평소 알고 있던 문인들의 모임인 맑은물사랑실천협의회에 글을 써달라고 부탁했고, 이 글이 주민들의 마음을 움직여 지지로 돌아서도록 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

김 장관은 ‘깐깐한 화학자’의 이미지처럼 평소 자기관리가 철저하고 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편이다. 하지만 ‘할 때는 하는’ 유형이다. 낙동강을 비롯한 3개 수계 특별법이 여야 만장일치로 의결된 날, 직원들과 자축하는 자리에서 폭탄주가 돌았다. 한잔을 겨우 마시고 멈추려 할 때 “건너야 할 강이 셋이었으니 어느 강을 버릴 수 있겠느냐”는 주위의 권주사 때문에 석 잔을 연거푸 마셨다.

“청소년 시절 과학탐구의 길을 택하는 것은 일생에서 가장 소중한 투자입니다. 과학기술계도 경영, 행정 등 다른 분야로 진출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고 있습니다. 청소년들의 과학기술계 진출은 적극 권장돼야 합니다.”

여성 과학자로서 행정가로서의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해온 김 장관의 모습은 ‘과학 꿈나무’들이 과학자뿐 아니라 정치 경제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 좌우명: 진인사대천명

- 감명 깊었던 책: 발견자들(다니엘 브어스틴)

▼김명자 장관은…▼

44년 서울 출생. 60년대 초 경기여고 시절 부친의 조언에 따라 자연과학의 길을 택했다. 서울대 화학과 졸업 후 미국 버지니아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74년부터 숙명여대 화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80년대 사회적 혼란기에 어수선한 마음을 정리하기 위해 ‘과학혁명의 구조’(토마스 쿤) 등 번역작업에 몰입했다. 이후 ‘엔트로피’ ‘현대사회와 과학’ 등 20여권의 책을 발간, 과학대중화에 힘썼다. 그 공로로 84년 한국과학저술인협회 제1회 저술상, 여성으로는 처음으로 94년 대한민국 과학기술상 진흥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했다.

90년대 들어 과학계뿐 아니라 환경단체, 여성계, 관계 등 다방면에 걸쳐 활동해 왔다. 99년 6월 25일 환경부장관으로 임명됐으며, 올해 3월 국내 최장수 여성장관 기록을 경신했다.

김훈기 동아사이언스기자 wolfki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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