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온천은 신이 선물한 '특효약'…외국에선 치료에 활용

  • 입력 2002년 9월 19일 17시 26분


▼병원이나 물리치료실 함께 설치 효과 높여▼

목욕을 뜻하는 ‘bath’라는 영어 단어에는 전설이 있다. 리어왕의 아버지 블러더드가 왕자였을 때 문둥병에 걸려 외진 곳에 숨어 살면서 호구지책으로 돼지를 길렀는데, 어느 날 연못에 도토리가 떠 있는 것을 본 돼지들이 그걸 먹으려고 물 속으로 뛰어들었다. 그때 이를 본 왕자가 돼지들을 쫓아내기 위해 연못에 들어갔는데 이상하게도 물이 따뜻했다. 따뜻한 물 속이 싫지 않았던 왕자는 한참을 있다가 나왔는데 놀랍게도 문둥병이 다 나아 있었다. 이 일이 있은 후 왕자는 연못을 잘 정비하고 자신의 이름을 따 ‘블러더드’ 연못이라고 불렀다. 후에 블러더드라는 발음이 변해 오늘날의 ‘배스’가 됐고 이곳은 현재도 유명한 관광지가 돼 있다.

또 당시 사람들은 옷을 입고 온천욕을 하였는데, 그 전통 때문인지 유럽 대부분 지역에서는 지금도 온천장에 수영복을 입고 들어간다.

따뜻한 물, 즉 온천의 질병치료 효과는 서양의 전설에만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이웃나라 일본의 경우 학, 사슴, 원숭이, 곰 같은 동물이 온천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그 온천을 애용하기 시작했다는 곳이 많다. ‘쓰루노유(鶴の湯)’라든가 ‘구마노유(熊の湯)’ 등의 이름이 붙은 온천장이 바로 그런 곳들이다. 그리고 나가노현의 지고쿠타니(地獄谷) 온천은 지금도 원숭이와 사람이 함께 목욕하는 곳으로 유명하다.

▼유명 온천서 장기간 투숙생활▼

지금처럼 의학이 발달되기 전에는 온천이 중요한 치료 수단 중 하나였다. 우리나라만 해도 세종대왕이나 세조가 경기도 이천의 온천 등지로 병을 치료하기 위해 행차했다는 기록이 있다.

이렇게 온천을 치료 목적으로 이용하는 것을 가리켜 ‘탕치(湯治)’라고 한다. 이는 단순한 목욕이나 샤워와는 개념이 다르다. 목욕은 단지 더러운 몸을 씻는다는 의미지만, 온천욕은 몸을 온천이라는 약물에 담가 피부와 혈관 속에 스며들게 함으로써 건강을 증진시키는 행위인 것이다.

현재 탕치 개념의 온천욕이 가장 발달해 있는 곳은 유럽과 일본이다. 특히 250개 정도의 온천이 있는 독일의 경우 온천 자체를 주로 치료 수단으로 이해하고 있는데, 요양의 뜻으로 ‘쿠어(kur)’라는 개념이 일반화돼 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온천휴양지인 바덴바덴의 로마니시 바트하우스(로마풍의 목욕탕)에 가면 샤워부터 시작해 마사지실, 관수사우나실, 건사우나실, 습사우나실, 잠수욕실, 유수욕, 천연천니욕, 탄산욕, 저온온천탕, 고온온천탕 등 번호순으로 12코스를 돌도록 돼 있다. 각 코스마다 소요시간을 표시해 두었는데, 최소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프랑스도 온천욕을 물치료(hydro-therapy)라는 개념에서 접근하고 있다. 프랑스의 3대 온천도시 중 하나인 비시의 칼루 온천은 나폴레옹 3세가 즐겨 찾은 곳으로 유명한데, 1990년대에 현대식 물치료 프로그램을 도입해 사람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코스는 온천탕에서 관절 치료나 통증 완화를 위한 체조를 20분간 하는 것으로 시작해, 의사의 처방 아래 특수 제조된 욕조 안에서 10분 정도 물줄기와 기포마사지 받기, 물치료사에 의한 샤워 마사지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보통 18일 일정(단기 체류객을 위한 1주, 2주 코스도 있음)이 기본이고, 주로 류머티스관절염 환자나 소화기장애 환자가 이용한다고 한다. 이처럼 프랑스에는 유명 온천지역마다 물치료센터가 있다. 또 온천건강학이라고 해서 학문적 차원에서 온천을 연구하는 움직임도 활발한 편이다.

독일의 ‘쿠어’나 프랑스의 ‘물치료’ 개념은 기껏해야 온천장에서 하룻밤 머무는 것이 전부인 우리나라 사람들의 온천욕과는 차원이 다르다. 유럽인들은 보통 온천욕을 한다고 할 경우 대부분 장기 투숙을 하며 질병을 치료하는 행위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온천지역에 병원이나 물리치료실 등의 의료시설이 들어서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에선 온천학과도 설립▼

온천을 장기 혹은 주기적으로 함으로써 질병치료 효과를 꾀하는 것은 일본도 마찬가지다. 온천 천국이라는 일본에는 다종다양한 온천시설이 있으며 지금도 도호쿠지방의 유명 온천에는 장기간 투숙하며 질병을 치료하려는 탕치객이 주류를 이룬다.

1년 농사를 마친 농부들이 그간의 지친 몸과 근육을 풀기 위해 가족과 함께 먹을 것과 이불을 싸들고 와 겨울 한철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하다. 그래서 어떤 지역의 숙박시설은 일반 손님을 받는 ‘여관부’와 순전히 자취하는 손님만 받는 ‘자취부’가 따로 구별돼 있을 정도다. 자취부는 요금도 저렴하다.

필자는 일본 아키다현 하치만타이라 고원에 자리잡은 다마카와(玉川) 온천을 이용해보려고 몇 년 전부터 시도해봤지만 번번이 예약에 실패했다. 명탕 중의 명탕인 이 온천을 이용하려는 예약 탕치객들이 너무나 많았기 때문이었다. 결국 한 방에 19명이 사용하는 방을 간신히 예약할 수 있었다. 이 온천에는 한 달 정도 투숙하는 장기 탕치객이 대부분이었고 식사는 식당에서 해결할 수 있었다.

다마카와 온천에는 50%의 원탕을 섞은 대욕장을 중심으로 무색 투명한 원천사우나탕, 침탕, 기포탕 등 13종류의 입욕 시설이 있다. 일반 관광객들은 이 온천시설을 들락거리는 것만으로도 즐겁겠지만, 탕치를 목적으로 하는 입욕객은 입욕 방법에 신경을 써야 한다. 특히 온천물을 마시는 치료, 증기를 흡입하는 치료 등도 팸플릿에 설명돼 있어 그야말로 온천 치료의 백미라고 할 수 있다.

필자는 이 온천에서 하루 만에 무좀으로 망가진 발톱이 쏙 빠지는 경험을 하기도 했는데, 류머티즘으로 걸을 수 없었던 사람이 걸어나갔다거나 암 수술 후 이 온천을 이용했는데 5년이 지나도록 재발되지 않았다거나 하는 치료담이 쉴새없이 사람들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일본은 온천의 천국답게 명탕으로 이름난 곳을 국민보양지로 지정하고, 공공기관이 운영하는 국민보양시설이나 휴양시설도 계속 설치하고 있다. 또 대학에 온천학과가 설립된 곳도 있고, 온천에 관한 장서만도 5000여권이나 소장하고 있는 온천학 교수도 있다.

온천을 치료의학에 적용해보려는 선진국의 노력를 보면서 필자는 우리나라의 온천 현실이 떠올라 서글픔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온천을 단지 목욕이나 하고 환락을 추구하는 일회성 시설로만 생각하는 한 한국의 온천은 앞으로도 설 자리가 별로 없기 때문이다.

< 양희열/ 변호사 >

명온천의 조건 - 지표에 솟아난 용출수가 ‘최고’

온천은 ‘지혜(地惠)의 약물이요 천혜(天惠)의 약탕’이란 말이 있다. 말하자면 하늘과 땅이 인간에게 선물한 최고의 특효약이란 뜻이다. 온천의 근원은 지표로부터 150km 깊이에 있는 마그마다. 1300℃의 고열과 지표의 5만 배에 가까운 압력을 받아 분출되는 마그마의 수증기와 뜨거운 지하수가 일체가 되어 암석 등 여러 물질을 녹이면서 수십년에서 수백년에 걸쳐 점차적으로 지표 밖으로 나오는 것이 온천이다. 지하수가 스며들어 온천으로 형성되어 나오기까지는 최소한 53년이 걸린다고 한다.

온천수는 지표 밖으로 용출됨과 동시에 변질되기 시작한다. 압력이 급히 내려가면서 물속에 녹아 있는 칼슘 마그네슘 철 유황 등이 침전하고, 탄산가스나 유화수소가스의 태반이 공기중으로 사라지고 만다.

특히 온천은 공기와 접촉하는 순간 산화가 시작된다. 철천의 다갈색이나 유화수소천의 유백색은 온천의 노화현상을 나타낸다. 그것들은 원래 땅속에서는 무색 투명한 상태였다. 심장에 좋다는 탄산천이나 약효가 뛰어난 방사능천도 화학변화를 일으키기 쉬운 온천이다. 즉 특효약인 온천의 성분은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엷어진다. 지상에 나온 지 3일이면 온천성분의 대부분이 없어져 버린다는 보고도 있다.

이 때문에 온천은 살아 있는 생물(生物)이라고 할 수 있고, 명온천의 제1조건 역시 신선도에 달려 있다. 식염천이나 유황천 등 다양한 천질을 따지는 것도 좋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지표에 용출한 때로부터 시간이 얼마 경과하지 않은 신선한 온천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와 함께 가장 바람직한 온천장은 욕탕 바로 밑에서 온천수가 솟는 곳이다. 좋은 온천탕의 조건은 탕원(湯源)으로부터 1m라도 가까이 있는 곳이다. 즉 수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온천을 배급받는 것이 아니라, 온천탕 부지 내에 원천(源泉)이 있어야만 온천 효과가 제대로 나타난다. 세계의 온천마니아들은 이 때문에 부지 내에 탕원을 갖고 있는 온천을 선호한다.

일본의 경우 온천이 관광지화 또는 대형화되면서부터 탕량 부족 문제가 대두되고 있다. 호텔이나 여관들이 공동탕(外湯)이 아닌 각자의 내탕을 만들면서 그간 자연용출이나 약간의 굴착만으로 퍼 올리던 온천수로는 턱없이 모자라게 된 것이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더 깊은 지하까지 굴착하게 되고, 그것도 모자라 수돗물이나 지하수를 섞기까지 한다. 이렇게 될 경우 그것은 이미 온천이라 할 수 없고, 온천 특유의 치료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우리나라의 온천 중 순수 온천수만 사용하는 온천이 과연 몇 군데나 될까 의심해보게 하는 대목이다.

가장 좋은 온천은 땅 밑에서 바로 올라온 신선도 높은 자연용출수이고, 그 다음으로는 땅 밑에서 굴착해 퍼 올린 온천이라도 탱크에 저장되지 않은 채 바로 흘러나오는 물이란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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