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 포커스]삼성·LG전자 ‘엎치락 뒤치락’ 1등 다툼

  • 입력 2002년 9월 18일 17시 49분


“내가 1위다.”

“서천 소가 웃을 소리…. 누가 1위인지는 세상이 다 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요즘 벌이는 논쟁이다.

LG전자가 올 상반기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휴대전화 수출에서 1위를 했다고 밝히자 삼성전자는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 삼성이 앞서는데 무슨 소리냐”고 받아쳤다. 해외 조사기관인 스트래티지 어낼리틱에 따르면 상반기 삼성전자는 740만대, LG전자는 600만대를 판매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내수분이 414만대여서 수출만 따지면 LG가 앞선다”는 것이 LG의 주장. 삼성은 “조사기관 자료에도 없는 수치를 만들어낸다”며 자존심이 긁혔다는 반응이다.

가전제품에서는 반대로 삼성전자가 공격을 하는 편. 디지털TV, 홈시어터, DVD플레이어처럼 이제 시장이 형성되는 첨단 디지털제품은 집계하기가 쉽지 않다. 여기서도 물론 ‘내가 1위’라며 팽팽히 맞선다.

▽1등 시동 건 LG전자〓최근 두 회사의 경쟁이 치열해진 것은 LG가 본격적으로 ‘1등 주의’를 표방하고 나선 데 있다. LG전자는 전자업계 선발주자이면서도 90년대 이후 경영실적이나 브랜드 인지도 면에서 삼성전자에 밀려난 뒤 2위로 굳어지는 듯했다. 특히 삼성전자가 1990년대 초 세계 메모리반도체 시장의 주도권을 쥔 다음부터는 기업규모부터 커다란 차이가 났다.

올해 초 구본무(具本茂) LG그룹 회장과 구자홍(具滋洪) LG전자 부회장의 ‘1등론’은 이러한 위기의식에서 비롯됐다. LG는 자신들이 처음 시작한 사업도 지키지 못하고 2위에 안주하려는 문화가 형성되고 있다는 것이 경영진의 판단.

구 회장은 올 들어 ‘1등 LG’를 내걸면서 이를 실현하기 위한 개념화 작업, 중장기 전략 설정, 최고경영자(CEO)를 비롯한 임직원 평가와 교육 등 대대적인 ‘조직수술’에 착수했다. LG전자 창원공장이 세계 가전업계 영업이익률 1위를 기록하는 등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엎치락뒤치락 대결사(史)〓1980년대 후반까지 LG전자의 전신인 금성사는 국내 가전시장에서 독보적인 존재였다. 금성사는 58년 설립 후 선풍기 냉장고 흑백TV 에어컨 등을 잇따라 처음 개발했으며 반도체와 통신사업에도 일찌감치 뛰어들었다. 당시 대한전선과 삼성전자 등이 열심히 따라오고 있었으나 금성사는 69년 출발한 삼성을 경쟁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삼성전자는 80년대에 금성사와 나란히 신문기사에 나기 위해 열띤 홍보전을 펼쳤고 ‘휴먼테크’ 광고로 소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심어 줬다.

올 들어 LG전자가 강력한 1등 드라이브를 걸면서 다시 홍보전이 치열해지고 있다. 디지털TV, 휴대전화 등 신제품 시판 날짜와 차세대 기술 발표 등을 놓고 두 회사는 ‘업계 최초’ ‘세계 최대 크기’ 등을 경쟁적으로 내세우고 있다.

▽같은 점과 다른 점〓삼성이 이건희(李健熙) 회장을 정점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자랑하는 데 비해 LG전자는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강조한다.

10년 후를 먹고 살 미래사업 발굴이나 인재 확보에서도 삼성은 이 회장이 직접 나서 계열사 사장들을 이끌고 간다. 고려대 경영대 김언수(金彦秀) 교수는 “삼성맨들은 합리적이고 세련됐다는 외부 인상과 달리 일사불란한 면이 강하다. 현명한 리더십이 뒷받침되면 장점이지만 그렇지 못하면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조언했다.

반면 LG 구본무 회장은 커다란 틀만 제시한다. LG전자의 구자홍 부회장은 자신의 역할을 ‘직원들의 기(氣)를 살리는 것’과 ‘차세대 리더를 발굴하는 것’으로 정의한다. 과거 구씨와 허씨의 ‘동거’에서 비롯된 ‘인화(人和) 경영’은 최근 LG전자에서 ‘펀(FUN·재미) 경영’으로 옷을 바꿔 입었다. 고려대 경영대 문형구(文炯玖) 교수는 “LG맨들은 악착같은 면이 약하다. 질박한 대신 유연하다. 알아주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가전분야에서는 세계적 경쟁력을 자랑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두 회사는 모두 디지털시장의 글로벌 리더로 떠오르면서 한국의 국가이미지도 높이고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는 각기 상대 회사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을 삼갔지만 “그동안의 눈부신 성장과 혁신은 두 회사의 경쟁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공감하고 있다.

신연수기자 yssh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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