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김태한/통신업계의 진흙탕 싸움

  • 입력 2002년 4월 3일 18시 19분


요즘 국내 통신업계에는 ‘감정싸움’이 한창이다. 휴대전화업계에 이어 초고속 인터넷업계로까지 번진 기업간의 비방은 도를 넘어섰다는 느낌이다.

얼마 전까지 회사를 합치기 위해 협상을 벌여온 초고속 인터넷업체 하나로통신과 두루넷은 최근 통합협상 결렬 후 원색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하나로통신 측은 “두루넷이 ‘2중 플레이’로 통합협상을 깼다”며 “아무리 변명해도 죄를 감형 받을 수는 없다”고 비난했다. 두루넷 측도 SK텔레콤을 상대로 한 두루넷의 전용회선 매각협상건과 관련해 “제3자인 하나로통신이 영업기밀을 누설했다”며 법적 대응 불사를 외치고 있다.

가입자가 3000만명을 넘어선 휴대전화 시장에서는 페어플레이가 실종된 지 오래다. 특히 선두업체인 SK텔레콤과 2, 3위 업체인 KTF, LG텔레콤 사이의 설전(舌戰)은 이전투구(泥田鬪狗) 양상이다.

LG텔레콤은 “SK텔레콤의 가입자 1명당 보조금이 최고 30만원에 이른다”며 통신위원회에 제소했고 SK텔레콤은 “너희는 보조금을 안 주느냐”며 맞받아 치고 있다.

SK텔레콤의 몇몇 대리점은 KTF의 선불카드 다단계 판매행위를 검찰에 고발했고 KTF는 SK텔레콤의 ‘붉은 악마’응원단 광고를 문제삼고 있다.

SK텔레콤과 KTF는 또 품질 1위도, 3세대 부호분할다중접속(CDMA) 서비스를 세계 처음으로 상용화한 것도 자사(自社)라며 경쟁사 흠집내기에 열을 올린다.

통신업체간 대립이 끊이지 않는 것은 통신분야가 그만큼 유망하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해당기업들로서는 미래의 생존과 직결될 수 있고 나름대로 할 말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하더라도 최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지나치다고 할 수밖에 없다. 국내시장을 둘러싸고 한치 양보도 없는 ‘치고 받기 소모전’을 벌이는 동안 소비자의 이익이나 국제경쟁력 향상은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 통신업계가 당장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해 10년 뒤를 내다보는 긴 승부를 외면하고 있는 것 같아 걱정스럽다.

김태한기자 경제부 free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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