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즐기며 우리가족 '화목이 절로'

  • 입력 2000년 8월 13일 19시 04분


“엄마, 컴섹이 뭐야?”

분당에 사는 주부 송미옥씨(40)는 지난해 초등학교 4학년이던 딸아이가 컴퓨터게임을 하다가 무심코 던진 물음에 화들짝 놀랐다. 컴섹이란 컴퓨터섹스의 줄임말로 네티즌들이 주고받는 은어.

‘도대체 내가 모르는 사이에 컴퓨터에서 무슨 일들이 벌어지는 거야?’는 불안한 생각이 든 갤러그세대 송씨. 그 뒤부터는 딸이 컴퓨터게임을 할 때는 언제나 뒤에 앉아 지켜봐야 했다. 그러다 어느새 자신도 컴퓨터 게임에 푹빠져 들게 됐다.

▼랭킹 53위 엄마가 최고수▼

송씨는 지금은 국내 대표적 무협 컴퓨터 그래픽게임 ‘바람의 나라’에서 ‘이름이에요’라는 ID를 가진 주부 ‘게임도사’다. 150만명을 헤아리는 회원들 가운데 랭킹이 자그마치 53위. ‘도사’ 2차 승급자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최고수급에 속한다. 아빠 민동배씨(41)와 중학교 1학년인 준원군(ID 머찐 군인) 역시 최고수급인 ‘전사’ 1차 승급자이고 초등학교 5학년 정원양(ID 토니랑 나랑)은 ‘주술사’ 레벨 99등급으로 한 등급 아래다.

가족 전원이 게임의 최고수들이어서 부부는 물론 부모 자녀간에도 대화가 단절되는 법이 없다. “엄마가 오늘 사냥갔다가 네 친구를 만나는데 많이 도와주기에 엄마가 갖고 있던 백화검을 선물했다” “여보, 오늘은 준원이가 환두대검이랑 인풍죽선은 만들었소? 파트너를 정한다는데 누구랑 했소?”라는 식으로 다른 가족들은 알아들을 수도 없는 내용이 많다.

▼전화 한번 않던 남편도 매니아▼

송씨는 “직장에 출근하면 전화 한 번 안하던 남편이 요즘은 게임이 궁금해 하루에도 서너번씩 집으로 전화한다”며 “가족들끼리 대화의 벽이 없어지니까 갈등이란게 있을 수 없다”고 게임예찬론을 펼친다. 저녁식사가 끝나면 거실에 있는 컴퓨터를 먼저 차지하기 위해 숟가락을 미처 놓기고 전에 누구랄 것없이 후닥닥 뛰어가는 모습은 늘상 있는 즐거운 풍경. 올케와 만나도 게임 동료이기 때문에 쓸데없이 서로 흠잡을 일이 없다.

송씨는 “게임을 하면 집안 일을 하면서 쌓인 스트레스가 풀리고 쓸데없이 쇼핑 나가 돈 쓰는 일도 없을 뿐만 아니라 가족끼리 화목해져 일석삼조”라고 말한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부들은 ‘아들이 게임에 미쳐 잠도 안자고 게임만 하는데 어떡하면 좋겠느냐’는 호소를 자주 한다. 송씨는 그러나 “무턱대고 막으면‘말 안 통하는 부모’로 인식돼 역효과가 나기 쉽다”며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지기 마련”이라고 충고한다.

<김광현동아닷컴기자>kk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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