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사 첫 판정]"제공-수혜자 공식연결 길열려"

  • 입력 2000년 2월 15일 19시 33분


“사실상의 뇌사 판정은 89년부터 이뤄졌지만 이제는 장기 이식자와 수혜자를 효율적으로 연결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지요.”

뇌사가 합법적으로 인정된 이후 최초로 15일 입원중이던 환자 박모씨에 대해 뇌사 판정을 내린 인천 가천의대 중앙길병원 뇌사판정위원회 윤정철(尹正哲·59·의료부원장)위원장은 합법적인 장기 기증이 비로소 실현됐다는 점에 의미를 부여했다.

▼ 전문의-목사 등 참여 ▼

윤위원장은 “장기는 살아 있지만 뇌의 상태가 이미 죽어 있는 환자의 인공호흡기를 인위적으로 떼어낸다는 것은 슬픈 일이지만 기능이 활발한 장기를 조속히 적출해 꺼져 가는 생명들을 더 많이 살려내는 일이 더욱 뜻깊고 인도적인 방법”이라고 말했다.

길병원 전문의 6명과 목사 등 7명으로 구성된 뇌사판정위원회는 14일부터 박씨의 상태를 예의 주시해왔다.

4일 뇌출혈로 인천 기독병원에서 수술을 받은 박씨는 시간이 지나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했지만 9일까지 동공에 빛을 비추면 반응을 보였다. 가족들은 이때까지 박씨의 회생을 기대했지만 9일 박씨의 뇌기능은 마비 상태로 빠졌다.

인공호흡기 혈압정상액투입 등으로 겨우 생명을 지켜오던 박씨는 14일 오전 뇌에서 30분간 반응을 보이지 않는 ‘평탄뇌파현상’이 나타났다.

윤위원장은 “평탄뇌파현상이 지속되다 14일 오후 미미한 뇌파반응이 나타났지만 하루만에 결국 뇌파 전달이 제로 상태가 됐다”고 설명했다.

▼ 검진소견 등 종합검토 ▼

뇌사판정위원들은 박씨에 대한 의료진의 검진소견, 진료카드, 가족들의 장기기증 동의서 등을 검토한 뒤 뇌사판정을 내렸다.

박씨의 가족은 기독병원 담당의사로부터 “회복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고 아들의 장기로 다른 환자의 생명을 살릴 수 있기를 바란다는 희망을 밝힘으로써 장기 이식이 결정됐다.▼ "아들도 하늘서 기뻐할것" ▼

한 가족은 “가정형편이 어려워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곧 바로 서울과 인천 등에서 열심히 일만 해온 아들이 평소 돈을 많이 벌어 어려운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말을 자주 했다”며 “아들도 자신의 장기가 다른 사람의 생명을 살리는 데 도움이 된 것을 알면 기뻐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씨는 인천에서 자취생활을 하면서 철강회사에 다녔으며 평소 두통을 자주 호소해 왔다고 주변사람들은 전했다.

<인천〓박희제기자> MIN0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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