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료일기]차병헌/『의사말을 믿고 따르자』

  • 입력 1997년 8월 19일 07시 52분


50대의 중년부인 한 사람이 어느 날 의무기록지도 없이 느닷없이 진찰실로 들어와 멋적어 하며 웃기만 했다. 『어떻게 오셨느냐』고 묻자 『원장님께 죄송스러워서…』라고 말끝을 흐리며 계속 몸둘 바를 몰라했다. 어렵사리 꺼낸 말은 『진료의뢰서 한장 써 달라』는 것이었다. 『어디가 불편해 종합병원으로 가시려느냐』는 질문에 원장님께 죄송스럽다는 말만 반복했다. 찬찬히 살펴보니 그 부인은 7,8개월전에 이곳에서 자궁암검사를 받은 환자였다. 당시 검사결과는 양성에서 악성으로 넘어가는 상태(3기)였다. 앞으로 계속 치료를 받은 후 1개월안에 재검사를 받지 않으면 안된다고 신신당부까지 한 환자였다. 직장생활 때문에 치료받기가 어렵다는 말을 듣고 『사람이 아픈 것이 중요하지 직장이 더 중요하냐』며 설득하느라 힘들었던 기억이 되살아났다. 그 부인은 치료를 미루고 있다가 몸이 점점 쇠약해지자 암을 의심하기 시작했다. 치료를 열심히 받으라는 부탁도 새삼스레 생각났다고 했다. 겁이 난 이 환자는 혹시나 하고 다른 산부인과에서 다시 자궁암검사를 받은 결과 역시 이상세포가 많이 보였고 치료후 재검사를 받아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종합병원에서 자궁경부암 여부를 최종 확인하려고 필요한 진료의뢰서를 부탁하러 다시 찾아왔던 것이다. 암은 아무런 자각증상 없이 조용히 찾아오는 특징이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설마 내가 그런 병에 걸릴 리가 있나」하고 자기위안을 하기 십상이다. 또 암으로 진단받은 사람도 오진이길 바라는 마음으로 이 병원 저 병원을 기웃거리다가 치료기간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진료의뢰서 한장 때문에 내 앞에 앉아 있는 부인도 그런 사람 중의 하나였다. 부인들에게 가장 흔한 것이 자궁암이고 그 검사는 어느 산부인과에서도 어렵지 않게 할 수 있다. 다른 종합병원으로 가려고 마음을 다진 그 부인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의사를 믿고 검사 결과에 따라 치료를 서두르는 일이었다. 그 부인에게서는 암이 더욱 깊어져가고 있었다. 차병헌(차산부인과의원 원장·02―869―3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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