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을 위한 김호의 ‘생존의 방식’]초고처럼 끊임없이 고치는 삶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7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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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이 작자는 기지도 못하면서 날려 든다.”

지금은 사랑받는 소설가로 활동하는 정유정 작가가 첫 신춘문예에서 받았던 심사위원 평가였다. 작가도 아니고 작자라고 평을 했다니. 이로 인해 정유정 작가는 마음고생을 심하게 했단다. 전문 인터뷰어 지승호 씨가 정유정 작가를 인터뷰한 책 ‘정유정, 이야기를 이야기하다’를 읽었다. 정유정 씨가 자신이 소설을 쓰는 방법에 대해서 이야기한 책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생각했다. 우리의 삶도 하나의 이야기이고 소설이 아닌가. 그런 면에서 ‘삶’이라는 이야기는 어떻게 써 나가야 할지 생각해 봤다. 이 책에서 가장 눈길을 끈 것은 ‘스토리’라는 책으로 유명하고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스토리 세미나를 진행하는 로버트 매키가 제시한 질문을 정유정 작가가 나름대로 체화하는 대목이었다. 그는 여섯 가지 질문을 던져서 답한 후에 소설을 쓰기 시작한다는데, 특히 두 가지 질문이 중요하게 다가왔다.

첫째, 등장인물은 어떤 사람들인가? 정유정 작가는 이를 “인물의 카탈로그”라고 표현했다. 나의 삶, 직장 생활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인가? 나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사람과 장애가 되는 사람은 누구인가? 여기에서 성장을 단순히 직장에서의 승진으로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나에게 좋은 정보와 기술을 공유해주는 사람, 나의 전문성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사람, 내가 어려울 때 힘이 되어주는 사람, 나의 장점을 발견하고 칭찬해주는 사람, 아무도 나의 실수를 지적하지 않을 때 슬쩍 건설적 피드백을 주는 사람 등은 모두 나의 성장에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다. 등장인물을 파악할 때 빠지지 말아야 하는 것은 주인공인 나에 대한 이해다. 때때로 직장에서 심리진단 조사를 할 때가 있다. 진단 결과 리포트에 나온 내용보다는 그 내용을 통해 자신을 보다 객관적으로 살펴보고, 성찰해보는 과정이 더 중요하다. 내가 어떤 때 내향적이며, 어떤 때 외향적인지. 나는 어떤 때 유연하고, 그렇지 않은지. 심리진단이든, 믿을 만한 직장 동료의 피드백이든 그 자체가 중요하다기보다는 이를 통해 스스로 돌아보는 과정에서 자신에 대한 이해를 높이게 된다.

둘째, 무엇을 원하는가? 욕망에 대한 질문이다. 누구나 다 아는 나의 드러난 욕망과는 별개로 나 자신도 깨닫지 못하고 있는 숨겨진 욕망은 무엇인가? 정유정 작가는 행동과 활동을 구분했다. 활동은 먹고 마시는 것처럼 가치의 변화가 없는 움직임인 반면에 행동은 목적과 의지를 갖고 선택하는 움직임이다.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내게 주어지는 과제들에 압도되어 목적이나 의지를 갖고 선택하는 움직임(행동)을 자신도 모르게 줄여 나가고, 가치의 변화가 없는 움직임(활동) 위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해 보게 된다. 정유정 작가는 활동이 아닌 행동이 이야기를 나아가게 만든다고 했는데, 내 삶이라는 이야기를 나아가게 만드는 행동을 나는 얼마나 하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이 밖에도 정유정 작가는 욕망의 동기(그들은 왜 그것을 원하는가), 행동과 선택에 대한 질문(어떻게 그것을 성취하는가), 갈등과 장애물(그들을 가로막는 것은 무엇인가), 결과(어떤 일이 벌어지는가)에 대한 질문을 제시한다. 우리의 삶에 대입하여 생각해 볼 만한 질문들이다. 소설의 주인공처럼, 자기 삶에서 주인공으로 살기 위해서는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깨달아가는 과정이 필요하고, 그것이 직장에서 내가 하는 일과 어떤 연관이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의 욕망에 따라 조직 생활을 더 열심히 할 수도 있고, 어떤 사람은 안정된 조직을 떠나 돈과 자유시간을 맞바꾸기도 한다.

정유정 작가는 첫 신춘문예에서 모욕에 가까운 평가를 받고는 드러누웠다가 며칠 만에 일어나 소주를 사러 나갔고 헌책방에서 스티븐 킹의 ‘스탠 바이 미’를 발견하고는 소설에 대해 다시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성공한 작가가 되었다. 정유정 작가의 마지막 원고에는 초고가 10%도 남지 않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초고란 결국 삶에서의 다양한 시도가 아닐까? 초고를 써 놓고 수도 없이 보완하고 수정하면서 그 과정에서 조금씩 자기가 원했던 진짜 방향을 찾아 나가게 되는 것처럼 우리 삶도 다양한 시도 속에서 조금씩 자신만의 욕망과 삶을 찾아 나가는 것 아닐까?
 
김호 더랩에이치 대표·조직 커뮤니케이션 전문가
#정유정 작가#욕망#스탠 바이 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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