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컬 드림팀]<1>삼성서울병원 폐암센터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9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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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암 3B기<최종 직전 단계> 생존율, 美-佛-日의 2배까지 높여

《‘베스트 닥터’는 많이 알려졌지만 ‘베스트 치료팀’은 왠지 낯설게 느껴진다. 하지만 요즘 의료현장의 스포트라이트는 협진에 의한 집중 치료로 옮아가고 있다. 의사 개인의 역량보다는 적절한 팀워크로 이끌어내는 조직적인 치료가 환자의 병세를 좌우하는 시대인 것이다. 전국 각 병원에서 활약하는 베스트 치료팀, 진료과목별 드림팀은 어떤 게 있을까. 동아일보는 앞으로 각 대형병원이 소개하는 메디컬 드림팀, 본보 취재팀이 발굴한 메디컬 드림팀을 격주 단위로 소개할 예정이다.》

삼성서울병원 폐암센터 치료팀이 환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에게 진단 결과와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삼성서울병원 폐암센터 치료팀이 환자(오른쪽에서 두 번째)에게 진단 결과와 치료법을 설명하고 있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4년간 폐암 세포와 싸워온 송모 씨(50)는 요즘 인생을 기적이라 여긴다. 2007년 5월 그는 서울시내 종합병원에서 폐암 3기B 판정을 받았다. 당시 세계폐암학회의 기준으로도 5년 생존율이 9%에 불과했다.

그는 병원에서 “왼쪽 폐의 암세포가 쇄골 상부 림프절까지 퍼진 데다 폐 기능이 떨어져 수술을 중단했다”는 말까지 들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삼성서울병원 폐암센터를 찾아 치료를 다시 받았다. 그 결과 암세포 대부분이 사라졌다. 앙상했던 얼굴에는 살이 붙기 시작했고 육체노동도 다시 시작할 정도로 건강을 회복했다.

삼성서울병원 폐암센터는 폐암 3기B 환자의 생존율을 세계 수준의 두 배인 18%로 끌어올려 이 병원 ‘베스트 치료팀’으로 떠올랐다. 호흡기내과 혈액종양내과 흉부외과 영상의학과 방사선종양과 병리과 전문의로 구성된 치료팀은 해외 의료인들도 주목하고 있다. 이 치료팀이 새로 만든 치료 가이드라인은 세계폐암학회에 실려 전 세계 병원들의 표준이 되기 때문이다.

○ 세계 수준의 폐암 치료 실적

이 병원 폐암 센터는 극도로 위중한 환자들의 삶을 드라마처럼 바꾸고 있다. 올 7월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실려온 임모 씨(45·여)는 암세포가 전신에 퍼진 폐암 말기 환자다. 당시 임 씨는 스스로 숨을 쉬기 어려운 호흡부전증으로 중환자실로 옮겨져 인공호흡기를 달았다.

치료팀에 속했던 호흡기내과와 흉부외과 전문의들은 수술이 불가능하다는 소견을 내고 폐암센터장인 박근칠 혈액종양내과 교수에게 진료 방식을 문의했다. 임 씨의 가족은 “약효가 검증되지 않은 약이라도 달라”며 구명을 호소했다.

진료 차트를 살펴보던 박 교수는 항암 표적치료법으로 암세포를 없애자는 의견을 내고 병리과에 유전자검사를 의뢰했다. 병리과 전문의들은 때마침 임상시험이 끝나지 않은 신약이 임 씨 유전자형에 효과가 있을 수 있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치료팀은 1주일간 미국에 있는 제약사에 전화를 걸고 e메일을 보낸 끝에 이 약을 구했다. 치료팀이 신약을 임 씨에게 투여하면서 부작용이 적은 항암 치료를 3주간 병행한 결과 임 씨의 상태는 날마다 나아졌다. 그 후 임 씨는 인공호흡기를 벗고 일반 병실로 옮겨졌으며 요즘은 외래 진료를 받고 있다.

이런 협진을 통해 치료팀의 수술 실적은 세계적 수준에 올랐다. 치료팀은 16년간 폐암환자 5000여 명을 수술했다. 치료팀으로부터 수술을 받은 환자 1785명을 추적 관찰할 결과 폐암 1기의 5년 생존율은 82%로 나왔다. 이는 세계폐암학회의 수술 성적 73%(2009년 기준)보다 9%포인트 높다. 세계폐암학회의 수술 성적은 미국 프랑스 스페인 일본 등 의료 선진국의 표준 치료 실적이다. 폐암 3기A의 경우 삼성암센터의 성적이 국제수준보다 11%포인트 높다.

○ 협진체제로 복합 치료법 개발

전문의 50명으로 구성된 폐암 치료팀은 탄탄한 팀워크를 바탕으로 신속하고 정밀한 진료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암 치료는 이제 특정 의료인 한 명에 의존하던 시대가 지났다는 것이 의료진의 얘기다. 팀 단위의 정밀 검사와 진단, 협진이 폐암 정복의 지름길이라는 것.

치료팀을 이끌고 있는 박 교수도 팀 우선 원칙을 강조한다. 그는 “폐암 치료에는 ‘스타’ 의사도 중요하지만 팀워크가 없으면 성과를 올리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지만 각자 맡은 분야에서 최고 전문가가 되지 못하면 협진에 의한 시너지 효과도 기대할 수 없다. 삼성암센터장이자 치료팀 구성원으로 일하는 심영목 흉부외과 교수는 “폐암 수술과 항암치료, 방사선 치료, 수술후 관리 분야에서 팀원이 최고 수준이 아니면 협진도 무의미하다”고 잘라 말했다.

심 교수는 치료팀에 합류하기 전 폐암과 식도암 수술 분야에서 국내 최고라는 명성을 얻었다. 심 교수는 호흡기내과의 권오정 교수, 방사선종양학과의 안용찬 교수의 대학(서울대 의대) 선배로, 팀워크 유지에 필요한 중심 역할을 한다.

치료팀은 매주 월요일과 목요일 회의를 열고 새로운 치료법 개발에 힘쓴다. 박 교수는 “폐암 치료에는 암세포를 떼어내는 수술적 요법과 칼을 대지 않는 비수술적 요법이 혼용되는데 협진 체제에서는 표준 치료법을 쓸 수 없는 환자에게도 최상의 수술법을 제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폐암 진단에는 CT PET 유전자 검사 등 첨단 장비와 기술이 동원된다. 하지만 첨단 장비의 진단 정확도는 50%로 낮은 편이다. 치료팀은 목 밑 흉골 위의 파인 부분을 절개해 기관지 위로 내시경을 넣는 종격동경검사로 확진에 들어간다. 이 검사를 통해 암세포가 반대편 폐나 림프샘에 전이됐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치료팀의 기본 수술방식은 폐에 구멍 3개를 뚫고 내시경으로 들여다보며 암세포를 떼어내는 흉강경 수술. 지난해 환자 1000여 명을 대상으로 이 수술을 마쳤다. 심 교수는 “암세포가 내시경 지름보다 크면 없애기 힘들지만 폐의 저항 능력을 살려주는 것이 흉강경 수술의 장점”이라고 소개했다. 치료팀은 “연간 700여 명의 환자는 완치를 목표로 치료에 들어 간다”며 자신감을 보였다.

○ 세계 표준에 도전

최근 세계폐암학회 회원들이 폐암 2기 이상 환자의 수술후 항암치료 효과를 두고 논란을 벌인 적이 있다. 박 교수는 이 논란의 마침표를 찍었다. 그는 수술후 항암치료가 5년 생존율을 4.4% 올린다는 결과를 내놓았다. 이 연구 결과는 폐암학회 공동연구논문으로 실려 전 세계 병원의 가이드라인이 됐다. 영상의학과 이경수 교수는 미국 의학서의 공동 필진이 됐다. 싱가포르 홍콩 대만 중국 출신의 의사들은 치료팀의 흉강경 수술을 배우기 위해 해마다 이 병원을 찾는다.

치료팀은 국내 환자를 위해 상담전문 간호사제도도 도입했다. 환자들은 전문간호사와의 상담을 통해 치료 과정에서 궁금한 점과 주의할 점을 듣는다. 지방에 사는 환자들은 치료기간을 줄이기 위해 정밀 검사를 방문 당일에 받을 수 있다.

정위용 기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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