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마당]홍진표/‘北인권’에 침묵만 할건가

  • 입력 2004년 7월 26일 19시 1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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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은 소련 붕괴 직후 100만명의 러시아 거주 유대인을 받아들였고, 에티오피아에서 기아에 직면한 20만명의 ‘검은 유대인’을 받아들였다. 좁은 땅의 500만 인구가 120만명의 동족을 수용한 것이다. 4500만 인구인 한국으로 치면, 1000만명의 북한 사람을 받아들인 셈이다. 그러나 한국은 이제 겨우 5000여명의 탈북자를 수용했다.

동남아시아에 체류 중이던 탈북자 450여명의 입국을 계기로 정부의 탈북자 정책이 적극적으로 바뀌기를 기대한다. 몇 명의 탈북자를 찔끔찔끔 받아들이는 식의 미봉적 처리는 한계가 분명해졌다. 탈북난민촌 건설 등을 통해 중국을 떠도는 수십만명의 탈북자를 수용할 근본 대책이 강구돼야 한다.

국내 수용 탈북자들의 교육과 지원제도의 정비도 서둘러야 한다. 기존의 제도는 탈북자가 몇 안 되던 시대에 만들어진 것으로 이미 낡아 버렸다. 2개월 과정의 정착교육 기간도 대폭 늘려야 하고, 부족한 시설도 확충돼야 한다.

탈북자가 발생하는 근본 원인에 대해서도 거시적 차원의 관심을 가져야 한다. 탈북자의 존재는 북한 체제가 ‘먹고사는’ 최소한의 인권조차 보장해 주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 주는 증거다. 북한 인권에 대한 적극적인 문제 제기가 절실하지만 정부는 침묵하고 있다. 최근 미국 하원이 탈북자와 북한 주민의 인권 개선을 위한 ‘북한인권법’을 통과시킨 것을 두고 여당인 열린우리당 일각에서 ‘체제 붕괴 유도’니 ‘내정간섭’이니 하면서 반대하는 실정이다.

‘북한인권법’은 북한인권단체를 지원하며, 대북(對北) 라디오방송 시간을 확대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북한 체제 붕괴를 추구한다는 논란이 벌어졌던 ‘북한자유법안’의 쟁점 조항을 대폭 수정해 인권에 충실한 법으로 인정받고 있다.

정치범수용소에서 온 가족에게 대를 이어 강제노동을 강요하고, 탈북 여성의 뱃속에 든 아이를 강제 유산시키고, 5년 사이에 300만명을 굶어죽게 만든 현실을 비판하고 그 개선을 위해 노력하는 것을 반대한다면 ‘김정일의 기쁨조’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의 대한(對韓) 인권외교를 환영했던 사람들이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내정간섭이라는 이중 잣대를 적용하는 것은 모순이다.

인권단체 프리덤 하우스가 지난해 말 발표한 세계 192개국의 자유도 조사에 따르면 북한은 미얀마, 쿠바, 수단 등과 함께 ‘최악 중의 최악’으로 분류됐다. 유엔 인권위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북한의 인권 개선을 촉구하는 결의안을 채택했다. 이처럼 국제사회의 북한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데 반해 국내는 무관심이 지배하고 있다. 한국사회의 주류로 등장한 이른바 ‘진보세력’이 북한 인권에 대해서는 “남북관계에 지장을 준다”는 이유로 ‘침묵’하는 불문율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민주화를 위해 헌신했던 사람들이 국내의 군사정권시대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폭압통치와 인권유린에 시달리는 북한 주민들의 비참한 처지에 침묵한다면 그 이율배반은 풀기 어려운 미스터리로 기록될 것이다.

홍진표 ‘시대정신’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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