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아크로폴리스]<25>청년실업

  • 입력 2004년 7월 14일 18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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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이들은 일하고 싶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찾지 못해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있는 ‘취업 재수생’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당사자와 부모의 ‘한숨’거리인 청년실업은 국가적 손실이기도 하다. 명지대 경영학과 이종훈 교수(44)가 손창일(28·고려대 대학원 법학과) 성준경(22·연세대 응용통계학과 3년) 신영미씨(21·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년)를 만나 청년실업과 한국경제의 미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청년실업과 한국의 현실

▽신영미=청년실업은 어떻게 정의되나요? 주변에서 취직이 안 된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청년실업 현황도 궁금합니다.

▽이종훈 교수=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경우 15∼24세 중 일자리가 없어 일을 못하는 경우를 청년실업으로 봅니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남성의 군 의무복무 때문에 29세까지로 보기도 합니다. 한국의 청년실업 인구는 지난해 약 30만명이었는데 적극적 구직활동을 하지 않아 실업자 통계에는 잡히지 않지만 취업 준비를 하고 있는 젊은이들까지 합치면 45만명에 육박합니다.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여야 하는 이유는 전체 실업률과 청년 실업률의 격차가 OECD 국가 평균치를 상회하고 있기 때문이죠. OECD 국가 평균은 청년 실업률이 전체 실업률의 1.9배인 데 비해 한국은 2.5배나 됩니다. 특히 지난해는 3.1% 플러스 성장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절대 취업자수가 줄어들어 정말 우울한 상황입니다.

▽손창일=전체 실업률보다 특히 청년실업이 더 심각한 문제로 받아들여지는 이유는 뭔가요?

▽이 교수=요즘은 지식의 변화 속도가 예전에 비해 빠르죠. 학교 공부도 학습이지만 기업에서 일하는 것도 학습입니다. 일할 기회를 잡아야 새 지식을 쌓을 수 있는 거죠. 그런데 일할 기회를 4∼5년 놓치면 개인이 가진 지식이 사장될 수밖에 없겠죠. 기회가 오더라도 일을 하기 어렵게 됩니다. 국가적으로도 인적 자원의 손실이 큰 거죠.

▽성준경=그렇다면 왜 우리나라의 청년 실업률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은가요?

▽이 교수=청년실업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어요. 경기침체로 노동 수요가 부족하기 때문일 수도 있고 구직자가 기업이 원하는 능력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일 수도 있어요. 한국에서는 ‘내부자-외부자 문제’도 주요 원인으로 꼽힙니다. 기업 구조조정에서 ‘내부자’를 보호하려다 보니 ‘외부자’가 손해를 보는 경향이 크다는 거죠. 기존 근로자의 고용을 보호하려다 보니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든다는 뜻입니다.

● 취업난,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성=청년실업이 늘어난 것은 젊은이들의 취업 눈높이가 막연히 높아진 데도 이유가 있지 않을까요? 임금을 많이 받으면서 일하기 편한 직장을 선호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않거든요.

▽손=대기업 선호도 그런 맥락일 수 있겠네요. 학교 취업정보실에서도 학생들이 중소기업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이 교수=취업난을 돌파하려면 우선 젊은이들이 현실을 잘 알아야 해요. 요즘 기업은 젊은 사람을 뽑을 때도 경력직을 선호한답니다. 이전에는 기업에서 ‘직접 가르쳐서’ 일을 시켰지만 요즘은 일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을 ‘사들이는’ 쪽으로 개념이 바뀌었어요. 그렇기 때문에 젊은이들이 자신의 경력을 개발해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중소기업이라도 경력에 도움이 된다면 가서 일을 배우고 큰 기업으로 옮기라는 거죠. 또 어떤 직종에 인생의 승부를 걸 것인가를 평소에 생각해 둬야 합니다.

▽신=그런데 진로 교육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것 같아요. 고등학교 때는 입시공부에 바쁘고, 대학에 들어와서는 취업 준비에 매달리고. 진로를 생각할 틈이 없어요.

▽이 교수=미래에 대한 고민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해서는 젊은이들만 탓할 수 없습니다. 스스로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려면 우선 많은 경험을 해 봐야 하는데 고교 때까지는 그런 경험을 할 기회가 전혀 없는 것이 현실이죠. 하지만 ‘내가 좋아하는 일이라면 몇 년간 라면만 먹으면서라도 해 보겠다’는 패기로 경력을 키워 나가는 젊은이가 적은 것도 사실입니다.


청년실업 문제가 사회적 난제로 부각되는 현실과 그 해법에 대해 명지대 이종훈 교수와 학생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명지대 교정에서 만난 이 교수와 학생들. 왼쪽부터 신영미 이종훈 성준경 손창일씨.-이훈구기자

● 정부와 기업의 대책은

▽신=청년실업이 심각해지면서 적절한 정부 대책도 나와야 할 것 같은데요.

▽이 교수=가장 근본적인 대책은 경제성장입니다. 또 일자리가 많아지려면 현실적으로 한국기업의 국내 투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외국기업이 한국에 직접 투자하거나 기술이전을 해서 장기적으로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합니다. 그런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정부가 할 일이죠. 하지만 요즘은 한국기업의 해외투자가 증가하는 데 비해 외국기업의 한국투자는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는 상황입니다.

▽손=정부가 대학과 각급 학교를 적극적으로 지원해서 인재를 키우는 일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환경도 중요하지만 인재가 있어야 외국기업이 투자하지 않을까요. 대학에도 다양한 취업준비 프로그램이 있었으면 좋겠고요.

▽이 교수=정부뿐 아니라 기업도 할 일이 많지요. 기업은 멀리 내다보고 신규 채용을 게을리 하지 않아야 합니다. 당장 인력을 채용하지 않으면 단기적 비용은 줄일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궁극적으로 인재 수혈 없이 경쟁력을 키울 수 없다는 점을 기업이 알아야 합니다.

▽성=결국 정부나 기업, 취업 희망자들이 모두 장기적 안목을 갖고 대책을 세워야 청년실업 문제가 해결될 수 있겠군요.

정리=주성원기자 swon@donga.com

■EU 각국의 청년실업 해소대책

청년실업은 한국뿐 아니라 선진국에서도 고민거리로 대두된 문제. 이에 따라 영국 독일 등 각국 정부는 다양한 청년실업 대책을 시행해 오고 있다.

▽영국=1998년부터 청년실업 대책인 ‘뉴딜 정책’을 시행 중이다. 6개월 이상 실업상태인 18∼24세의 청년과 2년 이상 실업상태인 25세 이상의 실업자를 대상으로 최대 4개월간 정부가 구직 상담과 정보제공 등의 도움을 주는 ‘게이트웨이’ 프로그램을 실시해 고용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독일=1999년부터 ‘청년들의 훈련, 자격증 및 고용을 위한 즉각적인 행동프로그램(JUMP)’을 시행해 청년들이 다양한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돕고 있다. 이에 따라 1997년 10.2%이던 청년실업률은 2001년 8.4%로 떨어졌다.

▽프랑스=직업훈련의 현대화에 초점을 맞춘 실업대책 ‘TRACE’를 운영하고 있다. 지방정부와 공공 서비스기관, 기업과 노조가 함께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그 결과 1999년과 2000년 2년 동안 30만개의 일자리가 창출됐다.

▽벨기에=30세 미만의 구직자 전부를 대상으로 정부가 6개월간 고용이나 훈련의 기회를 제공하는 ‘ROSETTA’ 프로그램을 시행 중이다. 사(私)기업은 3%, 공무원은 1.5%에 해당하는 일자리를 실업 청년에게 제공하도록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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