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기자의 酒변잡기]“헤쳐 모여” 4인방 술이 웬수?

  • 입력 2004년 4월 8일 16시 1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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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좋아하는 4인의 친구가 있다. 도원결의가 아니라 주(酒)원결의 비슷한 걸 한 사이라 술자리엔 전원 참석이 원칙이다. 그 중에 한 친구는 직장은 서울이고 집은 대전이다. 금요일 밤에는 꼭 집에 내려가야 하니 상대적으로 불리한 처지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어느 금요일 저녁. 4인의 친구는 날씨를 핑계로 술을 한 잔 하기로 뜻을 모았다. 집에는 가야겠는데 술자리에 빠질 수는 없고. 그 친구는 결국 막차를 타기로 작정했다. 그 다음은 어떻게 하면 가장 오래 마실 수 있느냐가 문제. 4인의 친구는 오래 같이 있기 위해 머리를 짜냈다.

우선 고속버스 대신 기차를 타기로 했다. 4인이 있는 곳에서 역도 가깝고 막차도 더 늦게까지 있었기 때문. 단 1분이라도 아끼기 위해 세심하게 신경을 썼다. 장소는 서울역에서 가까운 남영동의 한 술집. 택시가 잘 잡히는 큰길가에 있었고 안주도 빨리 익는 주꾸미와 먹장어였다.

자, 이제 4인에게 주어진 시간은 1시간 남짓. 친구는 채 익지도 않은 안주를 집어먹어 가며 급하게 소주잔을 들이켰다. 드디어 11시40분. 시계를 본 친구는 바이바이를 외치며 황급히 달려 나가 택시에 올랐다. 약 10분 후 무사히 기차에 올랐다는 소식을 휴대전화로 들은 나머지 3인은 프로젝트의 성공을 자축하며 잔을 들었다.

시계를 보아가며 술을 마시는 것은 고역이다. 몇 시까지라고 정해놓고 술을 마시면 술맛이 나지 않는다. 시계에 자주 눈길을 보냈다간 분위기를 깬다고 욕을 먹을 위험도 있다. 그래서 이누이트족이 부러울 때가 있다. 그들의 언어에는 시간을 가리키는 개념이 없다. 이누이트 사냥꾼들은 시계 대신 방광의 기능에 의존한다. 밤에 자다가 두 번째로 오줌을 누기 위해 일어나면 그때부터 하루 활동을 시작하는 식이다. 술꾼들도 가끔은 화장실에 두 번째 다녀오면 집에 가는 식으로 규칙을 정하면 어떨지. 훨씬 자연의 섭리에 가깝지 않을까.

그나저나 프로젝트는 결론적으론 실패로 끝났다. 술에 취해 잠이 든 친구가 대전을 지나 논산까지 가버렸던 것이다. 그는 결국 서울행 첫차를 타고 다음날 아침에야 집에 도착했다.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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