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8월의저편 392…낙원으로(9)

  • 입력 2003년 8월 13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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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는 병사의 군화를 보았다. 가죽이다, 재봉틀로는 안 박힐 것 같은데, 손바느질인가? 저렇게 두꺼운 가죽을 뚫을 수 있는 바늘이 있나?

“뭘 봐!”

“구두를….”

“구두?”

“어떻게 만들까 하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온돌 같은 머리로 뭘 생각할 수 있다고, 거기서 자면 다들 바보가 되잖아, 하하하.”

둘이 짐칸에 올라타자 트럭은 곧바로 출발했다. 총검을 든 병사가 지키고 있어서 잠자코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포장도로이더니, 잠시 후부터는 덜컹덜컹 차체가 흔들리는 것이 자갈길이나 울퉁불퉁한 흙길을 달리는 것 같았다. 병사가 아무 말 없이 주먹밥 꾸러미와 물통을 내밀기에 둘 역시 아무 말 없이 주먹밥을 먹고, 물통의 물을 마셨다. …오줌 누고 싶은데…물 괜히 벌컥벌컥 마셨나봐… 못 참겠다. 소녀는 혼이 날 각오를 하고 큰 소리로 말했다.

“저요!”

“뭐야!”

“오줌 누고 싶은데요.”

병사가 칸막이 창을 두드려 운전석에 있는 병사에게 알리자 트럭이 멈췄다.

끝없는 들판이었다. 저 먼 들판은 탈색된 것처럼 하얗게, 바다처럼 보였다. 소녀는 머리통 하나만큼 키가 큰 고량 밭 속으로 들어갔다. 쭈그리고 앉아 오줌을 누고 나오려는데, 어느 쪽에서 왔는지 방향을 가늠할 수 없어 두 손으로 휙 휙 풀을 헤치고 뛰었다. 어떡하지, 길을 모르겠네, 소녀는 가쁜 숨을 내쉬며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태양은 머리 꼭대기, 정오의 위치에 있다. 사사삭 소리가 나기에 돌아보니, 병사가 총구를 들이대고 있었다.

“도망치려고.”

“…아니요.”

“도망치면 죽일 거야.”

포장을 들어올리고 트럭 짐칸으로 올라탄 소녀의 눈이 여자의 얼굴과 마주쳤다. 포장으로 새어드는 미미한 빛이 여자의 옆얼굴을 비췄다. 치켜뜬 눈이 불안에 떨고 있었다. 트럭은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는데, 이가 부들부들 떠는 소리밖에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하지…큰일 났네…너무 무더워서, 온몸의 땀구멍이란 땀구멍에서 땀이 뻘뻘 흘러나오는데, 바늘 같은 공포가 혈관을 맴돌고 한기가 머리까지 기어 올라온다. 독을 마시면 이럴까…어떡하지…어떻게 하면 좋지?

글 유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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