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의 우리 거리 읽기]황폐해진 도시 후손에 물려…

  • 입력 1999년 7월 5일 18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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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섯 달. 예정됐던 시간이 지났다. 이 시리즈도 마무리를 하게 됐다. 길기도 하고 짧기도 했던 연재 끝에 남는 아쉬움은 분명 있다.

그러나 아쉬움 없는 마무리가 어디 이뿐이랴. 그래도 끊임없이 날아든 격려와 질책은 연재가 헛되지 않았다는 점을 확신시켜 주었다. 인터넷 시대답게 외국에서 날아온 E메일도 의외로 많았다. 하지만 가장 가치있게 남는 것은 독자들의 한탄과 분노. 분노하지 않으면 변화시킬 수 없다. 21세기는 그렇게 시민의 애정어린 분노로 시작돼야 한다. 침을 뱉어야 한다.

12세기 고려시대는 흙이 살아 숨쉬던 시대였다. 도공의 손 끝에서 흙은 개구리가 되기도 하고 도깨비가 되기도 했다. 개구리는 밤새 개굴개굴 울고, 도깨비는 부라린 눈으로 지나가는 이의 바지자락을 잡는 듯했다. 이 위대한 청자의 시대는 한 두 사람의 도공에 의해 이뤄지지 않았다. 12세기를 만든 것은 그런 청자를 요구하는 문화였다. 귀족들의 안목과 도공들의 신기(神技)는 어느 시대도 넘볼 수 없는 세계를 이뤄냈다.

그러나 20세기의 우리에게 문화는 언제나 구호였고 과시였다. 화가의 이름이 유명하다고, 김장철 밭떼기로 사들이는 배추처럼 그림 200여점이 한번에 사고 팔리는 것이 미술문화. 이력서에 한 줄 써넣어야 한다고 외국 교향악단에 돈주고 협연하고 초대권으로 관객 채우기에 급급한 것이 음악문화. 일본인들이 산에다 쇠말뚝을 박았다고 핏대를 올리면서도 그 산의 허리를 두부 자르듯 잘라내서 아파트를 세우는 것이 건축문화. 20세기는 그런 ‘문화’의 시대였다. 다가온다는 문화의 세기는 또 어떤 모습일까?

거리에서 본 20세기는 이 땅의 역사상 가장 참담한 시기로 기록될 것이다. 일제시대, 한국전쟁은 원나라의 침략, 임진왜란보다도 훨씬 크고 깊은 상처를 이 거리에 남겼다. 도시를 말끔히 지워버린 것이다. 20세기 후반부는 가파르게 치솟는 경제성장의 시대였다. 건물은 무작정 들어섰다. 흙은 개구리도, 도깨비도 될 필요도 없었다. 포크레인으로 파내서 하루 빨리 건물을 세울 바탕에 지나지 않았다.

도시는 갈수록 황폐해져 갔다. 도시기반시설이 경제성장률에 맞춰 확충될 길은 아득하기만 했다. 약한 이들일수록 그 거친 거리로 대책 없이 내몰렸다. 난들 못 사겠느냐고 너도나도 자동차를 샀다. 그리고는 끼어 드는 앞차를 욕하고 부족한 주차장을 탓하기 시작했다. 자동차는 아무 곳에나 들어섰고 보도 위로 올라섰다. 보행자는 이리 밀리고 저리 끌려 다녔다. 이 거리에서 만인은 만인에 대한 늑대가 되었다.

도시는 청자보다 중요하다. 우리의 아들딸이 이 거리를 걸을 것이기 때문이다. 청자가 한 잔 술을 담았다면, 도시는 시민의 인생을 담는다. 아이들을 영어학원 보내고 음악학원 보내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이 자라서 즐겁게 반추할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다. 이 거리에서 우리는 먹고 먹히는 야수가 아니고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라는 점을 일깨우는 일이다. 이 거리를 걸으며 이런 삭막한 환경을 우리의 아들 딸에게 전해줘야 한다는 사실에 분노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이 도시가 이렇게 황량해진데 대한 첫번째 책임은 건축가들에게 있다. 망가지는 도시를 바라보면서도 사회가 휘두르는 채찍에 쫓겨다니기만 하는 건축가의 모습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이 사회도 그 책임을 벗을 수는 없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지녔다는 나라에서 건축가의 설계는 거의 항상 무시되었다. 내 돈 내서 짓는 건물이니 도면만 그려내라고 했다. 내 임기 중에 완공되게 설계를 맞추라고, 윗 분은 전통 양식을 좋아하신다고, 새로 부임하신 분의 취향이 다르니 건물의 모양도 바꾸라고 강요하는 것이 이 나라다. 민족의 영산(靈山)을 개발한다는데 꼼꼼히 하겠다가 아니고, 빨리 하겠다는 이야기만 칭찬받는 것이 이 나라다. 국회의사당 지붕에서 돔을 들어내고 기와지붕을 얹자고 건축가에게는 묻지도 않고 발표하는 것이 이 나라다.

한국에서 서울 경주 광주 전주 청주 진주 부여 공주의 국립박물관에 기와 지붕을 얹어놓는 사이 프랑스의 루브르 박물관에는 유리 피라밋이 들어섰다. 독일 의회 의사당에는 유리돔이 올라갔다. 20세기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위대한 건축적 성취라는 찬사들이 쏟아졌다. 프랑스의 대통령과 독일의 총리는 개관식날 건축가를 따라다니면서 건물의 설명을 들었다. 그러나 이 땅에서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모습은 항상 지워졌다. 멋대로 주무른 그 추악한 건물을 설명하겠다고 고위 공무원이 나섰다. 공사장의 현장소장이 설계를 설명하겠다고 나섰다.

건축가나 건축사가 아니고 건축설계사라는 괴상한 이름이 횡행하는 세상. 건축가는 무념무상으로 손을 움직여 도면을 제작하는 사람이 아니다. 이 시대의 정신을 도시에 새겨 넣는 사람이다.

아시는지, 세종대왕은 진상하는 사기그릇에 도공의 이름을 새겨 넣으라고 하셨던 것을. 그러나 사기그릇을 청자모양으로 만들라고 하시지는 않았다는 것을. 백자를 만든 문화는 그렇게 이루어졌다. 이 사회가 아름다운 도시를 만들어 후대에게 전해주려면 건축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건축가의 설계대로 집을 지어야 한다. 길거리에 화장실 하나를 지어도, 난간 하나를 만들어도 건축가가 꼼꼼히 설계하게 하고 그에 맞춰 만들어야 한다.

청자를 만든 도공들은 신라의 토기, 송나라의 자기를 뛰어넘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었을 것이다. 할아버지들이 물려준 것은 청자가 아니고 독창적으로 만들겠다는 창작의지였다. 그 창작의지를 받쳐준 것은 귀족들의 안목이었다. 현대는 시민의 시대. 우리의 도시도 시민의 안목과 관심을 먹고 자란다. 사기그릇에 도공의 이름을 새기듯 건물을 설계한 건축가의 이름을 알려라. 이 도시는 우리의 얼굴이다. 시민이여 분노하라. 건축가들을 비난하고 책임을 물어라. 건물이 아직도 도시를 더럽히거든 그 이름에 침을 뱉어라.-시리즈 끝-

<서현>hyun1029@chollia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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