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세 청년이 교통사고를 당해 10년 만에 회복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30년이 걸려도 회복될까 말까 한 심각한 교통사고를 또 당했다. 이제는 나이까지 들어 매우 힘들 것이다.”
일본 정부 산하 싱크탱크인 JETRO-아시아경제연구소의 미즈노 준코(水野順子) 신영역연구센터장은 8일 동아일보와 전화인터뷰에서 동일본 대지진 이후 1년을 맞은 일본의 현재를 이같이 진단했다. 1995년 한신(阪神)대지진을 겪은 일본이 회복하는 데 10년이 걸렸지만 이보다 피해 규모가 수배에 이르는 동일본 대지진은 30년이 걸려도 쉽지 않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미즈노 센터장은 “1995년만 해도 일본 경제는 활력이 있었지만 지금은 장기불황을 겪고 있는 점도 큰 차이”라고 설명했다.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의 후유증을 딛고 일어설 수 있을 것인가.’ 7일 대지진 1년을 맞아 도쿄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총리관저 주최 정부합동 외신기자 회견장에서는 일본의 미래를 묻는 특파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이들의 질문에는 ‘사상 초유의 쓰나미에 원전사고까지 겹친 지난해 대지진 상처의 완전한 극복이 결코 쉽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이 깔려 있는 듯했다.
실제로 일본의 어깨를 짓누르고 있는 현안은 산적해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앞으로 10년간 최소 23조 엔에 이르는 복구자금 마련을 위해 국채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일본의 국가부채는 이미 국내총생산(GDP)의 두 배를 넘어 선진국 가운데 최악이다. 지난해 31년 만에 무역적자를 본 데 이어 1월에는 무역수지와 소득수지 등을 합한 경상수지마저 적자를 냈다.
요코하마시립대 국중호 교수(재정학)는 “해마다 20조 엔씩 국채발행액이 순증하는 일본으로서는 복구자금을 마련하느라 나라살림이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아직은 저축 등 민간금융자산(1300조 엔)이 나랏빚(1000조 엔)보다 많아 버티고 있지만 대지진으로 인해 국가부도 위기가 더 빨리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에너지 문제도 풀어야 할 난제다. 전력 생산에서 원전 의존율이 30%에 이르는 일본은 다음 달이면 현재 가동 중인 2개의 원전까지도 가동을 중단해 54기 모두 멈춘다. 명목상 정기점검을 위한 것이지만 원전 반대 여론이 높아 재가동 여부는 불투명하다. 이 때문에 앞으로 필요한 전력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비용이 더 드는 화력발전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런 와중에 수도권에 전력을 공급하는 도쿄전력은 다음 달부터 공장용 전력요금을 평균 17% 인상하기로 했다. 장순흥 KAIST 교수(양자공학)는 “제조업이 점차 정보기술(IT)화 되고 있는 추세에서 전기요금은 가격경쟁력과 직결된다”며 “원전 가동이 모두 중단되면 일본 제조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나 일본이 겪고 있는 에너지문제가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낙관론도 적지 않다. 세계적인 수준의 에너지 절약 기술이 1970년대 두 차례의 오일쇼크를 겪으며 탄생했듯이 반(反)원전 여론이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의 보급을 확산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지적이다.
대지진과 원전사고가 많은 희생자를 낳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가져왔지만 사회적으로는 한층 더 튼튼해지는 결과를 낳았다는 분석도 있다. 아리타 신(有田伸·사회학) 도쿄대 교수는 “재해복구 과정에서 피해 지역 주민과 전국의 자원봉사자가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회적 신뢰는 더욱 공고해졌다”며 “대지진을 계기로 일본의 정책 결정 과정에 지역주민이 더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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