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해군 제럴드 R. 포드 항공모함에 이란 전장에 투입될 전투기와 각종 미사일이 놓여 있다.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 미군은 인공지능(AI)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미국 중부사령부 페이스북 계정 캡처
2월 28일(현지 시간) 오전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측근들과 함께 테헤란에 있는 지하 벙커로 모였다. 다른 고위 인사도 저마다 긴급회의를 위해 비밀 시설에 집결했다. 이들의 움직임은 미국이 운용하는 인공위성, 정찰기 등 다양한 감시 자산과 휴민트(인간정보원)를 통해 포착됐다. 미군의 인공지능(AI) 군사 정보 플랫폼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은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최적의 타격 지점과 시점을 산출했다. 하메네이가 숨은 벙커 등 핵심 목표물에는 미국 측 공작에 포섭된 현지인이 이미 비콘(beacon: 폭격 유도 장비)까지 설치해놓은 상태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최종 승인이 떨어지자 AI가 분석한 정보를 전달받은 미국과 이스라엘 전투기들이 벙커버스터로 핵심 타깃을 정밀 타격했다.
‘멀티 모달 AI’ 전쟁 투입
이스라엘 국방군이 하메네이 이란 최고지도자가 공습으로 사망했을 당시 머물던 테헤란 지하 벙커 구조를 재구성해 공개했다. 이스라엘 국방군 제공외신 보도와 군사 전문가 취재를 바탕으로 재구성한 미국-이란 전쟁 개전 당일 미국이 감행했던 ‘AI 전쟁’ 양상이다. 이란 공습 첫날 미국과 이스라엘은 하메네이 등 고위 인사와 핵·미사일 시설 등 1000여 개 목표물을 타격했다. 공습 타깃 수와 성공률 모두 과거에 비해 크게 늘었다. 이 같은 전과(戰果)는 AI 기술에 힘입은 결과라는 게 전문가들 평가다. 이번 전쟁과 같은 대규모 군사작전 계획을 수립하려면 엘리트 군인 수백 명이 달라붙어도 상당한 시간이 걸리기 마련이다. AI가 막대한 정보를 멀티 모달(multi modal: 여러 유형의 데이터를 종합적으로 처리) 형태로 실시간 분석해 최적의 계획을 제시한 덕에 작전 준비 시간은 줄고 정밀도는 크게 상승된 것이다.
미국-이란 전쟁은 AI가 군사작전에서 실질적인 ‘두뇌’ 역할을 한 첫 사례로 평가된다. 메이븐 스마트 시스템에는 팔란티어의 군사 지도 시스템 ‘고담’과 앤트로픽의 AI 모델 ‘클로드’가 적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담이 사전에 해킹한 현지 교통 폐쇄회로(CC)TV 등 데이터를 통해 고위 인사들 위치를 찾으면 클로드가 공습 타깃과 순서를 최적화해 설계하는 식이다. 이 과정에서 인간의 역할은 공격 여부를 결정하는 최종 ‘트리거’에 국한된 것으로 보인다.
최기일 상지대 군사학과 교수는 “미국-이란 전쟁은 ‘AI 전쟁 시대 개막’이자 ‘군사 패러다임의 대변혁’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며 “AI가 일상은 물론, 군사 영역에서도 많이 쓰인다는 사실 자체는 알려졌지만 그 수준이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다는 게 이번에 여실히 드러났다”고 말했다. 김세진 태재연구재단 선임연구원은 “미군은 이번 전쟁에서 AI를 계획부터 실시, 평가까지 작전 전 과정에 활용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미 미군은 실전뿐 아니라 평시 보고서 작성이나 훈련 강평 등에도 AI를 일상적으로 쓰고 있다”는 게 김 선임연구원의 설명이다.
“美 항모 격침” 이란 AI 인지전 시도
이란은 AI 딥페이크로 조작한 사진과 영상으로 여론을 조작하는 인지전을 감행하고 있다. 사진은 최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미국 해군 에이브러햄 링컨 항공모함이 이슬람혁명수비대의 무인기 공격을 받았다”며 올라온 영상 속 장면. X(옛 트위터) 캡처기존에도 AI가 전장에서 부분적으로 쓰인 사례는 있었다. 2023년 이스라엘은 하마스와의 전쟁에서 AI 분석 시스템 ‘라벤더’를 활용한 바 있다. 이스라엘에 적대적인 무장단체 조직원들의 신상을 데이터베이스화해 해당 인물을 식별해주는 시스템이다. 조상근 KAIST 국가미래전략기술 정책연구소 연구부교수는 “군사 기술 측면에서 이번에 주목할 점은 AI가 작전에 쓰였다는 단편적 사실이 아니라, 미국이 지상·해상·공중·우주·사이버 공간에서 실시간 취합한 정보를 AI로 분석한 뒤 시한성 표적(time sensitive target)을 정밀 타격하는 전 영역 작전(all domain operation)을 실행했다는 것”이라고 평가했다. 미국이 다양한 감시 자산으로 수집한 정보는 텍스트부터 이미지, 영상, 음성까지 다종다양하고 그 양도 방대하다. AI가 이를 실시간으로 분석함으로써 사람처럼 끊임없이 움직이는 타깃도 짧은 시간에 제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미국-이란 전쟁에서 AI는 무기체계뿐 아니라, ‘인지전’에도 적극 쓰이고 있다. AI가 물리적 타격은 물론, 인간 심리를 공략하는 수단으로까지 활용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최근 이란 매체들은 “이란의 미사일 공격으로 미국 항공모함이 파괴됐다” “이란군이 미국 전투기를 격추했다”며 AI로 조작한 사진과 영상을 배포했다. 조 교수는 “이란 당국이 AI 딥페이크로 조작한 정보를 가지고 자국민은 물론, 해외 여론까지 조작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선전선동에 능한 권위주의 국가가 AI 인지전에 나설 경우 그 위력은 더 크다”고 설명했다.
AI 전쟁이 현실화하자 이와 관련된 윤리 문제도 부각되고 있다. AI가 인명 살상에 관여해도 되느냐는 근본적 질문부터 AI의 전투 참여 범위를 어디까지 용인해야 하느냐는 ‘가이드라인’에 대한 논의까지 다양하다. 현재 군사 분야에서 AI 활용은 “마지막 선택은 인간의 고유 영역으로 남겨둬야 한다”는 암묵적 원칙이 있다. 다만 기술 발전 수준만 놓고 보면 AI가 최후 공격 결정을 내리는 것도 가능할 듯하다. AI에게 전쟁 결정권까지 맡기면 어떤 결과가 초래될까. 올해 초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팀이 AI에 가상 국가 지도자 역할을 맡긴 뒤 실시한 워게임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해당 연구에서 GPT-5.2(오픈AI), 클로드 소넷4(앤트로픽), 제미나이3 플래시(구글) 간에 치른 21차례 모의 전쟁에서 AI는 20번(95.2%)이나 ‘핵무기 발사’를 감행했다. 임무 완수에만 집중하는 AI 입장에서 핵무기는 효율적인 군사 옵션에 불과했던 것이다.
AI 워게임 결과 95% ‘핵무기 발사’
미국에선 AI의 군사적 이용을 둘러싼 정부와 기업 간 이견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했다. 앞서 미국 국방부는 앤트로픽에 ‘합법적인 모든 목적’의 AI 사용 권한을 요구했다. 앤트로픽이 “자율살상무기나 대국민 감시 목적에는 자사 AI를 쓸 수 없다”고 거부하자 미국 정부는 앤트로픽을 ‘공급망 위험 기업’으로 지정했다. 이에 앤트로픽은 미 국방부 등 연방기관 18곳과 피터 헤그세스 국방장관 등 고위 인사를 상대로 위헌 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대해 최 교수는 “어디까지나 추정이지만 미국이 이번 미국-이란 전쟁에서도 AI에 공격의 최종 트리거를 당기는 역할을 부여했을지 모른다”며 “향후 군사 분야에서 AI 이용에 대한 최소한의 윤리 가이드라인이 제정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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