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3편의 시리즈에 걸쳐, 시리아 무력 충돌 이후 요르단에 정착한 난민 가정의 이야기를 듣는다. 이들의 이야기를 통해 가족의 실종이 남긴 공백과 회복의 과정을 조명하고, 이를 지원하는 한국 정부의 인도주의적 의미를 살펴본다.
“돌아올 수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매일 희망을 갖고 살아요.”
요르단 수도 암만 교외의 반지하에서 만난 사하르(56)는 지난 13년을 한 문장으로 압축했다. 시리아 내전이 한창이던 2012년의 어느 날, 외출 도중 아들이 행방불명됐다. 온 가족이 수소문했지만 끝내 생사조차 확인하지 못한 채, 2014년 요르단으로 피신했다. 사하르는 “엄마와 대화를 많이 하는 사랑스러운 아이였다”고 당시 24살이던 아들을 회상했다.
타르다(38)의 시간은 남편이 사라진 2012년에 멈췄다. 잠시 물건을 사러 나간 남편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지나갔다는 검문소와 행정기관 등 어디에도 흔적이 없었고 돈을 주면 정보를 주겠다는 사람들만 접근해 왔다. “지금도 매일 남편이 사라진 날을 떠올린 다”는 타르다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옆에선 당시 갓난아기였던 딸은 또렷한 눈으로 취재진을 관찰하고 있었다. 타르다는 현재 요르단 북서부 마프라크의 한 난민 텐트에서 두 자녀와 지내고 있다.
시리아 무력 충돌로 인한 실종자는 주로 남성이다. 시리아와 요르단을 포함한 중동 지역은 전통적으로 남성이 생계와 가족 의사결정을 책임지는 가부장적 가족 구조가 일반적이라, 보호자와 결정권자를 동시에 잃은 여성들은 법적 보호가 미비한 상태에서 차별, 생계 불안에 노출된다. 암만=지희수 기자
한국 정부와 ICRC… 요르단에서 가족 찾기 활동
두 사람의 사례는 단지 개인의 비극이 아니다. 2010년대 초 ‘아랍의 봄’이 시리아를 포함한 일부 중동 국가에서 반정부 시위가 무력 충돌로 번졌고, 수백만 명의 실향민과 난민이 발생했다. 국경을 넘는 피난 과정에서 수많은 가족이 연락이 끊긴 채 실종됐고 일부 강제 연행이나 납치에 의한 ‘강제 실종’도 구조적으로 반복됐다.
요르단은 가장 많은 시리아 난민이 정착한 곳 중 하나이다. 한국 정부는 2024년부터 국제 인도주의 기구 ICRC(International Committee of the Red Cross, 국제적십자위원회)의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지역 내 분쟁 피해 실종 가족 지원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고 있다.
ICRC는 1863년 설립된 국제 인도주의 기구로, 국제적 비국제적 무력 충돌 상황에서 민간인을 보호하고 지원하는 활동을 한다. 한국전쟁 당시 우리 정부와 국민도 도움을 받았다.
UN은 시리아에서 강제 실종된 이들이 13만 명 이상일 것으로 추정한다. 이중 상당수는 10년 이상 미해결 상태로 남아있으며, 실제로 가족을 찾는 사례는 많지 않다.
그럼에도 ICRC는 “정보를 수집해 보안을 지키며 안전하게 보존하는 일 자체가 가치 있는 일”이라고 강조한다. 지금은 실종자를 찾지 못해도, 기록의 유무가 추후 수색의 성패를 갈라놓기 때문이다. ICRC 관계자는 이를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이자 동시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말했다.
ICRC 관계자는 “모든 절차는 가족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원하는 범위에서만 진행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기술적 데이터베이스가 있어도 현장에서 발로 뛰며 직접 확인하는 과정이 핵심”이라며 “이는 어떤 시스템으로도 대체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한국 정부의 인도 지원이 큰 힘… 피해국에서 지원국으로
얀 프리데 ICRC 암만 대표단 단장. 그는 한국 정부의 지원이 “국제 사회에서의 인도적 지원 협력의 좋은 모델”이라고 설명했다. 암만=지희수 기자ICRC는 실종을 실종자와 가족 모두의 존엄을 침해하는 문제로 본다. 얀 프리데 ICRC 암만 대표단 단장은 “애도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은 전쟁이 남기는 가장 깊은 상처이자 트라우마”라며 “이런 상실감은 시간이 흘러도 일상과 가족 기능을 회복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어 “암만 대표단은 중동 지역 전체를 지원하는 허브로서, 앞으로도 실종자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능력을 유지하는 데 집중할 것”이라며 “이 활동은 정세 변화 속에서도 인도적 가치를 지키는 기반이며, 분쟁 이후 평화를 가능하게 하는 조건”이라고 강조했다.
ICRC가 요르단, 시리아, 레바논 등 중동 지역에서 수행하는 가족 찾기 활동은 2024년부터 한국 정부의 지원을 받아 추진되고 있다. 2026년까지 이어지는 인도적 지원으로, 실종자 수색, 정보 기록, 가족 연락 재개, 심리·사회적 지원, 경제적 기반 지원 등 핵심 활동을 중단 없이 지속할 수 있는 구조적 기반을 확보했다.
프리데 단장은 “한국은 전쟁을 겪은 나라로서 실종의 고통과 그 불확실성이 무엇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며 “한국 정부의 지원은 단순한 예산 지원이 아니라, 그런 역사적 경험에서 비롯된 인도주의 정신의 실천”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지원은 국제 인도 협력의 이상적 모델이며, 분쟁 피해국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기반이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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