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 참사후 첫 선거 홍콩, 정부 책임론속 투표율 하락 촉각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2월 8일 03시 00분


4년전 ‘친중 인사만 입후보’ 법개정… 선거 출마 161명 사실상 모두 친중
시민들 “누구도 날 대표할 수 없어”
외신 “중국에 대한 정서 가늠 시험대”
홍콩당국, 투표시간 2시간 늘리고… 특파원에 “허위-왜곡 보도 삼가라”

7일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 당일 지난달 고층 아파트 화재 참사가 발생한 타이포 지역의 투표소에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참사 여파로 저조한 투표율이 예상되는 가운데 홍콩 당국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투표 독려에 나섰다. 홍콩=AP 뉴시스
7일 홍콩 입법회(의회) 선거 당일 지난달 고층 아파트 화재 참사가 발생한 타이포 지역의 투표소에 시민들이 입장하고 있다. 참사 여파로 저조한 투표율이 예상되는 가운데 홍콩 당국은 투표 시간을 연장하는 등 투표 독려에 나섰다. 홍콩=AP 뉴시스
지난달 26일 159명의 목숨을 앗아간 최악의 화재 참사가 발생한 홍콩에서 7일 입법회(의회) 선거가 진행됐다. 2021년 선거법 개정으로 사실상 친중 성향의 인사들만 입후보한 가운데 홍콩 당국은 화재 참사 뒤 불거진 정부 책임론의 여파로 자칫 투표율이 크게 떨어질까 우려했다. 또 선거 전날 홍콩에 주재하는 해외 언론사의 특파원들을 불러 “허위·왜곡 보도를 삼가라”고 경고했다. 영국 BBC방송은 “이번 선거는 치명적인 화재 뒤 홍콩 시민들의 중국에 대한 정서를 가늠하는 시험대”라고 진단했다.

● 투표율 높이려 투표 시간 2시간 늘려

홍콩 선거법에 따르면 총 90석의 입법회 의석 가운데 지역구 20석만 주민 직선제로 진행된다. 나머지 70석 가운데 40석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지명하고, 30석은 각 직능단체가 선출하는 간선제 방식이다.

이번 선거에는 총 161명의 후보가 출마했다. 다만 2021년 개정된 선거법에 따라 후보자들은 사실상 전원 친중 인사로 채워졌다. 2021년 ‘범죄인 인도법(송환법)’이 도입되는 과정에서 홍콩에서 대규모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자 ‘애국자치항(愛國者治港·애국자가 홍콩을 다스려야 한다)’ 원칙에 따라 후보 자격을 박탈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됐기 때문이다.

90석 모두 친중 인사로 채워지는 구조지만, 투표율이 홍콩 시민들의 정서를 대변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실제 선거법 개정 이후 처음 치러진 2021년 말 입법회 선거의 투표율은 30.2%에 그쳤다. 법 개정 전인 2016년 투표율(58.3%)보다 28.1%포인트 급감한 것으로 역대 최저치였다. 당시 반중 성향이 강한 민주 진영 인사들의 출마가 불가능해지자 유권자들이 ‘지지할 후보가 없다’는 이유로 사실상 선거를 보이콧했던 것.

홍콩 당국은 지난해 ‘홍콩판 국가보안법’ 제정 등 반중 세력에 대한 통제를 계속 강화했고, 민주 인사들은 투옥되거나 해외로 도피했다. 이날 화재 현장을 찾아 헌화한 30대 남성은 투표를 하지 않을 것이라며 “후보자 중 누구도 진정 나를 대표할 수 없고, 정부가 선거를 연기했어야 했다”고 말했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전했다.

홍콩 당국은 이날 투표 시간을 이전 선거보다 2시간 늘리고(8일 0시 30분까지 가능) 투표소를 추가 설치하며 투표율 높이기에 나섰다. 존 리 홍콩 행정장관은 이날 “화재 피해자 보호와 사회 발전에 투표가 도움이 된다”고 독려했다. 또 선거를 앞두고 투표 불참을 선동한 혐의로 11명을 체포하기도 했다. 이날 오후 6시 반 기준 투표율은 25.75%로 선거법 개정 이후 첫 선거였던 2021년에 비해 0.7%포인트 상승하는 데 그쳤다.

● 외신에 “왜곡 보도 말라” 강력 경고

홍콩의 중국 중앙정부 기관인 주홍콩 국가안전공서는 선거를 하루 앞둔 6일 홍콩 주재 주요 외신들을 소집해 화재 참사와 입법회 선거와 관련해 허위·왜곡 보도를 하지 말라고 경고했다고 블룸버그통신 등이 이날 보도했다.

홍콩 당국자는 “일부 외신 보도가 정부의 재난 구조와 사태 수습 과정을 왜곡하고 선거를 방해해 사회 분열과 대립을 조장했다”고 주장했다. 또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스스로 조심해 법적 레드라인을 넘지 말라”고 압박했다.

이 당국자는 ‘미리 일러두지 않았다고 얘기하지 말라(勿謂言之不預)’는 표현도 썼다. 이는 중국 관영매체가 과거 인도, 베트남과 전쟁 직전에 사용했던 중국의 외교적 수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위의 경고를 담은 표현이라고 외신들은 전했다.

한편 ‘홍콩 당국이 반대 의견을 침묵시키려 한다’는 내용의 사설을 쓴 월스트리트저널(WSJ)에 홍콩 당국이 이달 4일 항의 서한을 보냈다고 홍콩프리프레스(HKFP)가 보도했다. WSJ는 6일 홍콩 당국의 항의와 관련해 “모든 후보가 친중 성향의 ‘애국자’들임에도 불구하고 당국은 반대 의견 억제에 몰두하고 있다”며 “홍콩이 중국의 엄격한 통제를 받는 도시로 변모한다는 최근 사례”라고 반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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