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4일 이란의 원유 수출을 ‘제로(0)’로 만드는 등 제재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세계 4위 원유 보유국인 이란이 원유 수출로 번 돈으로 핵무기 개발을 시도하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 레바논의 친(親)이란 무장단체 헤즈볼라 등을 지원하며 중동 긴장을 고조시켰다는 이유에서다. 이에 대해 아바스 아라그치 이란 외교장관은 5일 “최대 압박 정책은 이미 실패로 판명났고, 다시 시도해도 또다른 패배로 귀결될 것”이라고 반박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집권 1기 때인 2018년 5월 이란이 미국 등 서방 5개국과 2015년에 체결한 ‘핵합의(JCPOA)’를 전격 탈퇴했다. 또 2020년 1월에는 ‘정부 위의 정부’로 불리는 이란 혁명수비대에서 헤즈볼라 지원 업무 등을 담당했던 가셈 솔레이마니 쿠드스군 사령관을 무인기(드론)로 공개 암살하며 이란과 내내 대립했다.
이번 트럼프 대통령의 제재 강화 발표를 놓고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도 이란에 대한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기조가 계속될 것임을 분명히 밝힌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이스라엘과의 전쟁으로 최근 하마스와 헤즈볼라가 거의 무력화됐고, 이란의 중동 지역 내 영향력도 줄어든 만큼 이란을 더 압박해 핵 개발 포기 등을 이끌어내겠다는 의도도 담겨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란 핵무기 절대 못 가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워싱턴 백악관에서 이란 제재를 강화하는 ‘대통령 각서(presidential memorandum)’에 서명하며 재무부와 국무부에 대책 마련을 지시했다. 대통령 각서는 의회 비준 없이 각종 정책을 즉시 실시할 수 있는 대통령 행정명령(executive order)보다는 구속력이 낮으나 특정 기관에 구체적인 지침을 줄 때 주로 쓰인다.
그는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이 이란산 원유의 수출 제재를 엄격하게 집행하지 않아 이란이 중동 무장단체에 자금을 지원하고 핵무기를 개발할 수 있었다”며 “내가 있는 한 이란은 핵무기를 가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전문가들은 현재 이란이 핵폭탄급에 미치지는 못하지만 그에 준하는 핵무기 최소 4개 이상을 만들 수 있는 농축 우라늄을 보유한 것으로 보고 있다. 라파엘 그로시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총장은 최근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린 세계경제포럼(WEF)에서 “이란이 우라늄 농축 속도를 높이고 있다”고 우려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이란이 자신을 암살하려 든다면 “이란을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만들겠다(obliterate)”고 강조했다. 그는 혁명수비대 일부 세력이 솔레이마니 암살에 대한 보복으로 자신을 노리고 있다고 보고 있다.
실제 미 법무부도 지난해 11월 트럼프 대통령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받은 이란 요원을 적발해 기소했다. 다만 개혁·온건파인 마수드 페제슈키안 이란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암살을 시도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 이란-中 동시 견제
트럼프 대통령이 이란산 원유에 대한 제재를 강조한 건 이란과 중국을 동시에 견제하려는 의도로도 풀이된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이란은 2023년에만 원유 수출로 530억 달러(약 76조8500억 원)를 벌었다. 석유수출국기구(OPEC)에 따르면 지난해 이란의 석유 생산량은 2018년 이후 최고 수준을 기록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이란의 원유를 가장 많이 수입한 나라는 중국이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중국이 이란산 원유의 95%를 구매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2002년 이란의 핵개발 의혹이 처음 제기된 후 서방 주요국은 이란산 원유의 직접 구매를 강하게 제재해 왔다. 중국의 수입은 미국을 중심으로 서방이 추진해 온 제재를 정면으로 위반한 것이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란과 중국은 제재를 우회하기 위해 이란산 원유의 원산지를 이라크, 말레이시아, 오만 등으로 위조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의 동맹국에도 “이란을 고립시키기 위한 활동에 동참하라”는 ‘스냅백(snapback) 조치’를 당부했다. 다만 그는 “이란과 거래를 성사시키는 방안도 모색하고 싶다”며 협상 여지도 남겨뒀다. 앞서 멕시코, 캐나다에 각각 25%의 관세 부과를 위협했다 두 나라가 자신이 요구한 불법 이민자 및 마약 단속에 응하자 관세 부과를 30일 유예한 것처럼 이란에 대해서도 핵시설 사찰 등에 협조한다면 협상과 제재 완화가 가능하단 것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