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는 38년 전부터 미국 우선주의를 외쳤다[트럼피디아]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월 22일 09시 30분


세상을 자주 놀라게 하는 도널드 트럼프. 그는 자신만의 규칙에 따라 세상을 바꾸고 있습니다. 트럼피디아는 트럼프와 그의 측근들이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는 코너입니다. 다양한 변화가 몰아칠 ‘트럼프 2.0 시대’에 트럼프와 주변 사람들의 시선이 닿는 곳을 추적해보겠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옛날에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언제 한 말일까?

“전 지쳤습니다. 다른 국가들이 미국에 바가지 씌우는 것(rip off)을 보면서 지쳤습니다. 미국은 훌륭한 나라입니다. 근데 그들은 뒤에서 우리를 비웃고 있습니다. 그건 우리 자신의, 지도자들의 어리석음 때문입니다.

생방송에 출연해 한 말이었는데, 우방이 미국을 이용한다는 인식을 드러냈고 워싱턴 정계에 대한 반감을 숨기지 않았다. 방송 출연에 앞서 이런 성명도 냈다.

“국민 여러분, 수십년째 동맹들이 미국을 이용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미국의 공짜 보호 아래서 무역 흑자를 내는 부유한 국가가 됐습니다. 이제는 미국이 ‘흑자 머신(profit machine)’들로부터 대가를 지불받을 때입니다. 이들을 상대로 ‘세금(관세)’을 부과해 미국 경제를 성장시킵시다.”

2006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대통령의 모습. 에버딘=AP 뉴시스

정답은 38년 전인 1987년이다. 그는 당시 41세의 유명 부동산 사업가였다. 뉴욕 맨해튼에 지은 ‘트럼프 타워’로 이름을 알렸고, 정치와는 인연이 없는 인물이었다.

그런 그가 그해 9월 2일 갑자기 유력 일간지 3곳에 거액을 들여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의 외교 정책을 비판하는 전면 광고를 실었다. 뉴욕타임스(NYT), 워싱턴포스트(WP), 보스턴글로브까지 조간신문 3곳에 광고를 실어 총 9만4801달러(현재 가치로는 약 26만 달러, 약 4억 원)를 썼다.

이날 밤 CNN의 전설적인 시사 토크쇼 ‘래리 킹 라이브’에서는 그를 긴급 섭외했다. “무슨 목적으로 광고를 실었냐”고 질문하기 위해서였다. 트럼프 대통령은 “마음대로 생각해도 되지만 나는 대선 출마할 의향이 전혀 없다”고 말했다.

이 시절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은 보면 볼수록 묘한 기시감이 들어 놀랍다.

뉴욕 ‘트럼프 타워’ 완공 이듬해인 1984년 잡지 GQ 표지 모델이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출처 GQ 웹사이트
뉴욕 ‘트럼프 타워’ 완공 이듬해인 1984년 잡지 GQ 표지 모델이 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사진 출처 GQ 웹사이트

“일본을 보세요. 우리를 완전히 이용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무역 적자가 상당합니다. 자유무역을 하자더니 자동차랑 영상카세트녹화기(VCR) 덤핑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일본을 보호해줬는데 이런 대가를 치르고 있습니다.
―1988년 CBS 레이트 나잇 위드 데이비드 레터맨 대담

“제가 대통령이 되면 미국은 정말 강한 엄청난 군사력을 자랑하게 될 것입니다. 러시아도 동맹도 누구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가 아주 부자인 국가들을 보호해주는 대가로 아무것도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계적인 웃음거리입니다.”
―1990년 성인지 플레이보이 인터뷰

트럼프 대통령의 오래된 정치 야망은 왜 잘 알려지지 않았던 것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세상 대부분의 사람이 그를 진지하게 여기지 않았다”가 중론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00년, 2012년 대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고 2016년 마침내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가 걸어온 길을 살펴봤다.

● “노동자들. 그들은 날 사랑한다”
20일 취임사에서 “미국의 황금기는 지금부터”라고 선언한 트럼프 대통령. 앞서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생각하는 미국의 황금기가 1950~1960년대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이 패권국으로 부상했을 시기로, 그는 유복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1946년 뉴욕 퀸스에서 부동산 개발업자 프레드 트럼프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가정부와 운전사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뉴욕군사학교를 졸업한 후 뉴욕 포덤대에 진학했으나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로 편입해 1968년 졸업했다. 당시엔 베트남 전쟁이 한창이었다. 그러나 그는 징집을 다섯 차례 유예받은 끝에 참전하지 않았다.

무사히 졸업한 후 트럼프 대통령은 펜실베이니아에서 뉴욕으로 돌아와 가업을 물려받았다. 부동산 개발업자로 일했고, 파티와 나이트클럽을 다니며 사교계 활동도 부지런히 했다.

첫 번째 프로젝트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이었다. 그는 1978년 아버지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받아 코모도르 호텔을 매입해 그랜드 하얏트 호텔로 재건축하며 큰 관심을 받았다. 이어 1983년 맨해튼에 58층짜리 트럼프 타워를 지으며 성공한 사업가로 주목받았다. 마침내 ‘트럼프’ 이름을 붙인 대형 건물이 탄생한 순간이다.

1987년 3월 백악관에서 로널드 레이건 당시 대통령(왼쪽)과 악수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오른쪽). 사진 출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 도서관

이 시기 트럼프 대통령은 사회 이슈에 목소리 내기 시작했다. 바람둥이로 유명한 부동산 재벌이 일간지에 자신의 주장을 담은 전면 광고를 연이어 실자 화제가 됐다. 1987년 첫번째 저서 ‘거래의 기술’을 출간한 후 오프라 윈프리 쇼 등에 출연하며 대선 출마를 저울질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책을 팔기 위한 마케팅 수단이었다는 말도 나온다.)

그가 당시 가졌던 엄청난 자기 확신도 인상깊다. 1990년 플레이보이 인터뷰에서 ‘누가 당신을 대통령으로 뽑겠냐’는 질문을 받자 그는 “노동자들. 그들은 날 사랑한다”고 답했다.

● 초라했던 첫 대선 시도
53세였던 1999년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을 탈당하고 혁신당에 가입했다. 그는 “사비로 대선에 나서겠다”며 1억 달러를 선거 자금으로 약정했다. 연간 650만 명에 이르는 트럼프 호텔과 카지노 손님에게 자신을 뽑아달라고 홍보할 계획이었지만 결국 후보 경선에서 2000년 3월 중도 하차하며 첫 대선 도전은 초라하게 막을 내렸다.

2004년 어프렌티스 시즌1의 마지막화 장면. 트럼프 대통령(악수하는 사람 중 왼쪽)이 우승자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2004년 어프렌티스 시즌1의 마지막화 장면. 트럼프 대통령(악수하는 사람 중 왼쪽)이 우승자와 악수하고 있다. 동아일보DB

이 시기 사업도 어려움에 빠졌다. 무리한 팽창을 하다 1992년 뉴저지주에 있는 그의 카지노가 파산했고, 그의 회사들이 수십억 달러의 빚을 졌다. 이후 사정이 나아지긴 했으나 사업가로서의 명성에 금이 갔다.

정치적 실패와 실추된 명예는 2004년 NBC에서 TV쇼 ‘어프렌티스’를 선보이며 완전히 씻어냈다. 특히 뉴욕 명사에서 전국구 스타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됐다. 다만 정치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해 2004년 대선 때도 출마를 고려한 것으로 알려졌다.

●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고 싶다”
이후 트럼프 대통령은 엄청난 재력과 의지를 바탕으로 공화당 큰손이 됐다. 뉴욕타임스(NYT)는 “몇년간 공화당 인사들은 트럼프를 적당히 달래며 그의 돈을 받아갔지만, 그의 정치적 열망을 과소평가했다”고 전했다. 당시 공화당에서는 언행이 거칠지만 대중의 주목을 받는 재력가 트럼프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자는 분위기였다고 한다.

트럼프는 공화당계 행사에 연설자로 나서고, 당 중진과 행사에서 어깨를 나란히 하는 인물이 됐다. 공화당 인사들은 NYT에 “그의 거대한 자아를 충족시켜주고 고액 기부자에 대한 관례도 따를 겸 초대한 것이었다”고 회고했으나 이 모든 대외 활동이 트럼프의 몸값을 올려주고 있었다.

2011년 4월 트럼프 대통령과 멜라니아 여사의 모습. 동아일보 DB

2011년 초 트럼프 대통령은 버락 오바마 당시 미국 대통령을 상대로 맹공을 쏟아붓고 있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케냐 태생이라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없고, 무슬림일 수도 있다는 허위 주장이었다. “출생증명서를 공개하라”며 음모론을 펼쳤다. 그 결과 2011년 3월 CNN 여론조사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공화당 대선 주자 중 지지율 10%로 5위를 기록하며 존재감을 드러냈다.

2011년 4월 워싱턴에서 열린 백악관 출입기자 연례만찬 행사는 현재까지도 종종 언급된다. 오바마 전 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악연’을 상징하기 때문이다. 이날 오바마 전 대통령의 연설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은 웃음거리가 됐고, 좀처럼 지지율이 오르지 않아 2011년 5월 후보 경선에서 하차했다.

오바마 전 대통령은 무대에 올라 “억만장자 사업가는 백악관을 카지노로 변신시킬 것” “출생신고서를 공개했으니 트럼프가 ‘달 착륙 조작설’ 같은 보다 심각한 문제에 관심을 돌릴 것” 등 농담 같은 독설을 쏟아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표정이 굳은 채 일찍 귀가했다고 한다.

그는 시간이 흘러 2016년 NYT 인터뷰에서 “2011년 출입기자 연례만찬에서 매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며 반박하면서도 “(당시 세간의 연이은 공격에) 내가 대선에 나가야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겠다는 깨달음을 얻었다”고 말했다.

20일 두번째 임기를 시작하며 백악관에 복귀한 트럼프 대통령. 워싱턴=AP 뉴시스

직후 트럼프 대통령은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기 위해’ 차기인 2016년을 목표로 대선 준비에 착수했다. 조용히 캠프 직원을 모았고, 이때 플로리다주의 베테랑 정치 컨설턴트였던 수지 와일스 백악관 비서실장과 처음 인연을 맺었다. NYT에 따르면 와일스는 2015년 뉴욕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처음 만난 뒤 주변에 “겉에서 보이는 것과 달리 정치적 재능이 있고, 인간적인 매력이 있다”며 대통령이 될 자질이 보인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앤드루 브레이바트 등 극우 언론인과 관계를 돈독히 다지는 동시에 공화당이 자금 사정이 어려울 때마다 거액을 기부하며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 크리스 크리스티 당시 뉴저지 주지사 등 공화당 고위급들과도 안면을 텄다.

그리고 2015년 6월. 트럼프 대통령은 뉴욕 자택인 트럼프 타워에서 황금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내려오며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화 요약: 트럼프 대통령은 38년 전부터 정계에 기웃거렸다. 2000년 54세에 첫 대선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공화당 큰손이 됐지만 세상이 그를 비웃었다. 그는 “진지하게 받아들여지겠다”는 열망으로 2016년 대선을 차근차근 준비해 결국 대통령이 됐다.

3화 예고: 멜라니아 여사는 취임식 내내 눈을 가리는 챙 넓은 모자를 썼다. 트럼프 대통령이 볼에 입을 맞추려다 모자 챙에 막혀 ‘허공 키스’를 하게 된 순간은 취임식 명장면이 되고 말았다. 여러모로 비범한 이들의 ‘부부의 세계’를 들여다봤다.

#트럼프#트럼프 2기#미국 대통령#미국 우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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