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아이비리그 흔드는 ‘反유대주의’… 하버드 총장도 해임 논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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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 학살 관련 모호한 답변에… 하버드 동문-후원회 등 사퇴 압박
교수 2300명중 700명 “총장 지지”… 긴급 소집 이사회에서도 지지 표명
진보 학계-보수 후원회 ‘이념 갈등’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은 물러나

5일 클로딘 게이 미국 하버드대 총장(왼쪽),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당시 총장(가운데)이 하원 청문회에서 ‘학내 
반유대주의 논란에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애매한 답변을 한 매길 전 총장은 4일 후 
사임했고 게이 총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워싱턴=AP 뉴시스
5일 클로딘 게이 미국 하버드대 총장(왼쪽), 엘리자베스 매길 펜실베이니아대 당시 총장(가운데)이 하원 청문회에서 ‘학내 반유대주의 논란에 어떻게 대처하겠느냐’는 의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 애매한 답변을 한 매길 전 총장은 4일 후 사임했고 게이 총장의 거취를 둘러싼 논란도 한창이다. 워싱턴=AP 뉴시스
하버드대를 비롯한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이 ‘반(反)유대주의’ 논란으로 휘청대고 있다. 미 의회 청문회에서 “유대인 제노사이드(인종 학살)를 요구하는 학생들이 징계 대상인가”라는 취지의 질문에 답변을 유보한 엘리자베스 매길 전 펜실베이니아대 총장이 9일 사임했고, 하버드대 최초의 흑인 여성 총장인 클로딘 게이 총장에 대한 사퇴 압박도 거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의 전쟁, 이로 인한 미국 내 반유대주의 논란을 계기로 진보 성향의 몇몇 명문대 수뇌부에 대한 보수 진영의 불만이 폭발한 것이다.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11일 “진보에 치우친 미 명문 대학과 보수 성향이 강한 부자 동문들 간 수년간 불화가 있었다”며 “오래된 권력 투쟁에 전환점을 맞고 있다”고 진단했다.

● 총장 거취 두고 두 쪽 난 하버드

중동 전쟁 발발 후 아이비리그 대학 수뇌부의 미적지근한 태도에 보수 진영과 보수 성향 기부자의 불만은 폭발 직전이었다. 하마스의 선제공격으로 이번 전쟁이 발발했는데도 학내 여론이 일방적인 이스라엘 비판으로 흘렀고, 수뇌부가 딱히 제지하지도 않는다는 이유다.

5일 미 하원 청문회는 이 불만에 기름을 부었다. 당시 공화당 엘리스 스터파닉 의원이 “유대인 학살을 요구하는 학생들은 학칙 위반인가”라고 묻자 게이 총장과 매길 전 총장은 모두 “발언이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의도적이거나 심각하다면” 등과 같은 전제를 달아 ‘학칙 위반’이라고 하거나 “상황에 따라 다를 수 있다”고 유보적으로 답했다.

이후 백악관은 “제노사이드는 끔찍하며 미국에 반하는 것”이라고 둘의 답변을 비판했다. 진보 성향의 뉴욕타임스(NYT)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조차 “한심한 대답”이라고 지적했다. 팔레스타인 지지와는 별개로 혐오 발언에 대해선 분명히 제지했어야 했다는 의미다.

논란이 거세지고 무엇보다 각 대학에 거액을 투척하는 ‘큰손’들이 “기부금을 끊겠다”고 위협하자 매길 전 총장은 사임했고 하버드대는 내홍에 빠졌다.

하버드대 이사회는 11일 비공개 회의를 전격 소집해 게이 총장의 거취 등을 논의하고 게이 총장에 대한 지지 의사를 표명했다. 앞서 유명 헤지펀드 퍼싱스퀘어의 빌 애크먼 회장을 비롯한 몇몇 기부자, 70명 이상의 미 의원이 그의 해임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맞서 교수진 2300여 명 중 700여 명은 이사회에 게이 총장에 대한 지지 서한을 전달했다. 이들은 “총장 사퇴 압박은 학문과 언론의 자유를 억압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 “보수 동문들, 진보 성향 대학에 반격”


이번 사태의 배경에는 진보 성향이 강한 미 대학 사회에 대한 보수 진영의 불만이 있다. 하버드대 기부금은 매년 10억 달러(약 1조3000억 원)에 달한다. 이런 큰돈을 내는 기부자 중 보수 성향이 강한 부호들은 진보 편향적인 대학 수뇌부와 갈등을 빚을 수밖에 없다.

펜실베이니아대에서 매길 총장의 사임을 이끌어낸 주역도 와튼스쿨(펜실베이니아대 경영대학원) 동문들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자신도 와튼 출신이라고 내내 자랑하는 곳이다.

WSJ에 따르면 와튼스쿨 동문회는 의회 청문회 다음 날인 6일부터 지배구조 개선을 이끌어 내는 미 월가 행동주의 투자자들처럼 집요하게 행동했다. 이들은 먼저 리더십 변화를 요구하는 서한을 이사회에 보낸 뒤 반응이 시원치 않자 이를 대외에 공개했고, 위기를 느낀 이사회가 마라톤 회의를 하게 만들었다. 그런 뒤 각 이사들에게 총장 퇴진 촉구 서한을 보내 개별적으로 공략했고, 정확히 4일 만에 매길 총장을 끌어내렸다.

이 같은 기부자들의 움직임을 간파한 다른 대학들은 발 빠르게 움직였다. 스탠퍼드대는 “어떤 민족에 대한 학살 요구든 명백히 규탄한다. 이는 학칙 위반”이라고 밝혔다. 피터 샐러베이 예일대 총장은 유대 명절 ‘하누카’(7∼15일)를 기념해 설치된 ‘메노라’(9개 가지 모양의 촛불)에 한 시위자가 팔레스타인기를 게양했다 내린 것을 비판하는 성명을 냈다.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반유대주의#미국#아이비리그#하버드 총장#해임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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