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 남부 대피 명령…팔 주민들 갈 곳이 없다

  • 뉴시스
  • 입력 2023년 12월 5일 11시 2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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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0만 주민 중 180만이 남부에 집중…80%가 난민
이군 지정 안전 지역은 전기·식량·수도·난방 없는 곳
팔 주민들 “남느냐 떠나느냐” 죽음의 방정식 풀어야 해

이스라엘이 가자 남부를 향해 진격하기 시작하면서 이미 난민들로 북적이는 지역의 주민들에게 피난 명령을 내리고 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안전 지역으로 지정한 곳은 사람이 살 수 없는 황무지여서 가자지구 난민들이 피난할 곳은 없다고 미 월스트리트저널(WSJ)과 뉴욕타임스(NYT)가 4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자 주민들은 가자 지구를 벗어날 수 없다. 이스라엘이 국경을 봉쇄하고 외국 비자를 가진 사람들과 직계 가족들, 심각하게 부상을 입은 사람들만 이집트로 갈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군은 10월8일 가자 북부에 대한 공격을 시작하면서 문자, 전화, 삐라로 모든 주민들에게 일주일 내 소개하도록 명령했다. 따르지 않으면 하마스와 관련된 것으로 간주될 것이라는 경고도 있었다.

많은 주민들이 남부로 피신해 남부가 포화상태가 됐다. 식량과 식수를 구할 수 없고 폭격도 멈추지 않았다.

인질 석방 휴전 이전에 이스라엘군은 하루 몇 시간 동안 “인도주의 통로”를 열어 피난할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그 동안에도 폭격을 멈추지 않았다.

공습이 멈춘 것은 인질 석방이 이뤄지던 최근 8일 뿐이었다. 공습이 재개되면서 팔레스타인 주민들은 떠나는 것이 안전할지 머무는 것이 안전할 지를 정해야 하는 죽음의 방정식을 풀어야 하게 됐다.

친척집으로 피신한 사람들, 피난처에 머무는 사람들 모두 밀집해 있기에 폭탄 한 발로 몇 세대가 숨지는 일이 빈발한다. 유엔에 따르면 220만 가자 주민 가운데 180만 명이 피난민이다.

칸유니스의 주민들에게 소개를 명령한 이스라엘군이 4일 최남단 라파 지역을 폭격했다.

가자 지구의 인도주의 지원 단체들은 이스라엘의 소개 명령에도 불구하고 피난민들이 더 이상 갈 곳이 없다고 밝힌다.

유엔 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는 민간인 사망자가 급격히 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대피 명령으로 공포가 크게 확산되고 있다고 밝혔다.

필립 라자리니 UNRWA 사무총장은 이미 난민이 넘치는 UNRWA 대피소에 6만 명 이상이 대피했고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것“이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대피 안전지역으로 지정한 지중해 인접 농촌 알마와시 지역은 식량도, 식수도, 전기도, 난방도 없는 지역인 데다가 이스라엘 해군이 계속 폭격하는 곳이다. 노르웨이 난민 위원회 언론 담당관 아메드 바이람은 ”안전하다는 보장이 없는 곳“이라고 했다.

2개월 동안 5번 피난…최남단 라파도 폭격 지속

지난 10월8일 새벽 1시30분 이스라엘 접경 가자지구 도시 베이트 하눈의 의사인 후삼 아부우다의 전화벨이 울렸다. 모르는 사람이 아랍어로 부인과 다섯 자녀와 함께 떠나라고 통보했다. 이후 아부우다 가족들은 한 달도 안 되는 동안 이스라엘의 지시를 받고 공습을 피하기 위해 다섯 번이나 피신해야 했다.

폭음이 계속되는 새벽에 일가족이 피아트 자동차를 타고 10km 남쪽 가자시티로 달렸다.

아부우다 가족들이 찾아간 가자시티 사촌의 집에는 4인용 주택에 25명이 북적였다. 인도네시아병원의 소화기내과 의사인 아부우다만 병원으로 복귀했다.

두 번째 전화가 걸려왔다. 녹음된 소리로 가자시티를 떠나라는 내용만 통보하고 어디로 가라는 말도 없었다. 부인, 자녀와 함께 가자시티 북서쪽 차로 몇 분 거리인 알샤티의 친척집으로 도피했다. 다음날 아침 폭격으로 인근 건물이 무너지면서 동네 사람들 몇 명이 숨졌다. 가족들을 북쪽 자발리아의 유엔 난민 캠프로 옮겼다.

10월13일 새벽 3시 유엔 당국자들이 이스라엘군이 모든 주민들을 와디 가자(가자 중부 지역의 계곡) 남쪽으로 이동하라고 한다고 했다. 가솔린을 구하러 가자시티로 갔다가 와디 가자 바로 남쪽 데이르 알발라의 친척 집으로 갔다. 20km를 이동하는데 4시간이 걸렸다. 그 집에는 100명 넘게 피신해 있었다. 연기 냄새가 가득했고 폭탄이 떨어지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다. 9일 째 되는 날 400m 떨어진 주택이 폭격을 당해 수십 명이 숨졌다. 자신들이 있던 곳까지 폭격 먼지가 뒤덮였다고 했다.

10월23일 아부우다 일가는 다시 차를 타고 라파까지 20km를 달렸다. 가까운 곳에서 폭탄이 터지는 유엔 학교 대피소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그 뒤 한 달 여 만인 지난 24일 처음으로 폭격이 멈췄다. 그러나 그날 베이트 하눈의 6층 집이 폭격으로 무너졌다는 소식을 들었다.

휴전이 끝나면서 다시 폭격 소리가 들리지만 가까운 곳은 아니라고 했다. 이스라엘이 지정한 안전 대피장소 알마와시는 건물이 한 곳도 없는 곳이라고 했다. 아부우다는 겨울이 오고 있는데 “갈 곳이 없다”고 했다.

3주 동안 폭격으로 일가 친척 68명 사망

가자 지구 중부 알 부레이지의 정신과 의사 와파 에이드는 지난 10월 10일 옆집 사람으로부터 이스라엘 정보 요원이라는 사람이 전화해 “당장 집을 폭격할 것”이라고 했다는 말을 들었다. 옷가지와 음식 깡통 몇 개를 들고 빠져나온 그는 30분 만에 서쪽으로 2km 가량 떨어진 여동생 집에 도착했다. 그곳엔 대피 경고 전화가 걸려오지 않았다고 했다. 다행이 가족 24명 모두 대피할 수 있었다.

거의 매일 폭격으로 집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후 3주 동안 에이드의 친척 68명이 폭격으로 숨졌다.

관광 가이드인 남동생 에삼 에이드와 9명의 가족들도 10월 10일 알부레지를 떠나 가자 중부 누세이라트의 딸 집으로 피신했다. 피신하라는 전화도 없이 5일 뒤 폭격을 당했다. 2살 배기 아이까지 모두 16명이 숨졌다. 이틀 뒤 알부레지의 누이 하얌 에이드의 집이 폭격당했다는 소식이 들렸다. 6살부터 62세까지 16명이 숨졌다.

에이드의 조부모들은 이스라엘 북부 갈릴리해 연안 언덕 마을 알마가르 출신이다. 이스라엘이 건국된 1948년 수십만의 팔레스타인 주민들이 추방되면서 가자로 강제 이주했다. 당시 소규모 난민 캠프가 있던 알부레지에 정착했다. 장사를 하고 관광 가이드를 하고 공무원이 되는 동안 이들이 사는 마을은 축제의 마을이라는 평판을 얻었다.

10월 23일 남쪽 자와이다에 사는 사촌 집이 폭격 당해 일가족 12명이 숨졌다. 지난달 2일에는 알부레지에 사는 다른 사촌 마르완 에이드가 손자와 함께 샤워를 하기 위해 방문했다고 돌아가던 길에 공습으로 숨졌다.

에이드는 숨진 일가족 중 하마스는 한 명도 없다고 했다. 사흘 뒤 사촌 3명과 일가족 22명이 숨졌다.

에이드는 “정신과 의사인 나도 감당할 수 없는 일”이라며 “트라우마에서 회복되려면 정신과 의사 20명은 필요하다”며 눈물을 흘렸다. “살아 있어도 산 것 같지 않다”고 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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