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안전지대’로 여겨 대비 부족… 심야-얕은 진원 탓 피해 커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9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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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로코 120년만의 강진]
잠자는 시간대라 빨리 피신 못해
진원깊이 10~18km로 흔들림 커
내진설계 안된 부실 건물 대부분
2월 튀르키예 지진과 닮은점 많아

8일(현지 시간) 발생한 모로코 강진은 올 2월 5만 명 넘는 사망자를 낸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당시와 비슷한 요인들이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지진 발생 지점이 지표면에서 깊지 않았고, 새벽으로 향하는 시간대에 발생해 잠자던 주민들이 빨리 피신하지 못했으며, 주택을 비롯한 대부분 건물이 규모가 큰 지진을 버티지 못하도록 지어진 것이다.

● “도시보다 시골에서 피해 더 커”

‘지진 피해’ 주민들, 봇짐 들고 피난길에 8일 심야(현지 시간)에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주변 건물이 파괴돼
 돌과 흙더미가 길을 덮친 모로코 마라케시 물라이브라힘 마을 주민들이 9일 오전 봇짐을 들고 피난길에 나서고 있다. 이번 지진에 
흙벽돌과 돌로 지은 건물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마라케시=AP 뉴시스
‘지진 피해’ 주민들, 봇짐 들고 피난길에 8일 심야(현지 시간)에 발생한 규모 6.8의 강진으로 주변 건물이 파괴돼 돌과 흙더미가 길을 덮친 모로코 마라케시 물라이브라힘 마을 주민들이 9일 오전 봇짐을 들고 피난길에 나서고 있다. 이번 지진에 흙벽돌과 돌로 지은 건물들이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마라케시=AP 뉴시스
모로코 지구물리학센터, 미국 지질조사국(USGS), 유럽지중해지진센터(ESMC)에 따르면 이번 지진 규모는 6.8∼7.2로 측정된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규모 7.8)보다 작은 규모다. 하지만 실제 지표면 흔들림을 나타내는 진도는 진원지 깊이가 얕을수록 커진다. 일반적으로 지진은 지하 수십∼수백 km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USGS는 이번 지진 진원이 지표면에서 불과 18km 아래라고 밝혔고 ESMC는 지하 10km로 추정했다.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진원 깊이 17.9km와 비슷하거나 더 얕다.

이번 지진과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모두 사람들이 잠자고 있어 빨리 대피하기 어려운 시간대에 발생해 인명 피해를 더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모로코 지진은 오후 11시 11분에,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은 오전 4시 17분에 각각 발생했다.

내진(耐震) 설계가 되지 않은 건물들도 피해 규모를 키운 것으로 지적된다. 모로코 당국에 따르면 10일 낮 12시 반 현재 사망자 2012명 중 절반이 넘는 1293명은 인구밀도가 높은 모로코 제3의 도시 마라케시가 아닌 남쪽 시골 알하우즈주(州)에서 나왔다. 마라케시에서도 옛 도심에 피해가 집중된 것으로 알려졌다.

모로코 국가건축협회 오마르 파르카니 전 회장은 미국 뉴욕타임스(NYT)에 “알하우즈에선 자금 여유가 없어 스스로 집을 짓거나 숙련도 낮은 석공 도움을 받아 짓는 주민이 많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2011년부터 건물 내진 설계 기준을 강화했지만 이를 무시하고 지은 건물이 많다는 얘기다. 모로코 출신의 건축가 아나스 아마지르흐도 “시골에서는 장부에 적은 내용보다 철근 보강재를 더 적게 넣고 약한 콘크리트를 쓰는 경우가 많다”며 “건물 감리 빈도도 적다”고 지적했다.

USGS도 10일 모로코 지진 보고서와 올 2월 튀르키예-시리아 지진 보고서에서 공통적으로 “(피해 지역) 건물들이 지진에 매우 취약한 구조물”이라고 짚었다. 철골 구조는 땅이 흔들리면 철골이 휘어져 충격을 일부 흡수할 수 있지만 피해 건물 대부분은 벽돌과 콘크리트만으로 지었다는 것.

● ‘지진 안전지대로만 여겼는데…’


지진 지대로 알려진 튀르키예 남부, 시리아 북부와 달리 모로코는 지진 안전지대로 여겨져 지진 대비가 부족해 피해를 키웠다는 지적도 나온다.

튀르키예는 2개 대륙판이 만나는 단층선 위에 있어 1999년 이후 규모 7.0 이상 지진이 4번이나 발생했다. 반면 USGS에 따르면 이번 모로코 지진 진앙 반경 500km 이내에서 규모 5.0 이상 강진이 발생한 것은 40여 년 전 모로코 서부 아가디르 지진(규모 5.8)이 마지막이다.

모로코 단층 전문가인 프랑스 몽펠리에대 필리프 베르낭 교수는 AFP통신에 “안타깝게도 예측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면서 “강력한 지진이 드물었기 때문에 내진 설계 등 대비책을 마련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번 지진은 한겨울 발생한 튀르키예-시리아 대지진 때보다 건물 잔해에 파묻힌 사람들이 좀 더 오래 생존할 가능성이 있다. 당시에는 기온이 영하로 떨어진 데다 폭우 폭설 강풍까지 겹쳐 구조 작업에 애를 먹었다. 수도 앙카라와 이스탄불에서 구조용 비행기를 띄우기도 쉽지 않았다.

하지만 모로코 강진 피해 지역이 주로 아틀라스산맥 고원지대에 있어 산사태로 길이 막히는 등 구조 작업이 쉽지만은 않을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청아 기자 clearlee@donga.com
#모로코#지진#지진 안전지대#대비 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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