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집요하게 ‘더티밤’ 주장 노림수는?

  • 뉴시스
  • 입력 2022년 10월 26일 22시 1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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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가 국제사회의 일축에도 아랑곳 않고 우크라이나의 ‘더티 밤(dirty bombs)’ 사용 가능성을 계속해서 주장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서방의 무기 지원을 막기 위한 노림수가 깔려있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더티 밤 공론화로 자국의 전술핵무기(tactical nuclear weapons) 사용 가능성에 쏠린 국제사회의 시선을 돌리고, 서방의 ‘레드라인(Red line·금지선)’을 테스트하면서 동시에 공포감 조성으로 우크라이나로 향하는 장거리 미사일 지원 등 막으려는 다목적 카드가 아니냐는 것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25일(현지시간) ‘더티 밤은 무엇이고 러시아는 왜 그것을 얘기 중인가’라는 제목의 기사에서 우크라이나의 더티 밤 사용 주장을 이어가고 있는 러시아의 배경에 관해 집중 분석했다.

더티 밤은 기존의 핵무기와는 다른 개념의 비대칭 재래식 무기다. 폭탄·미사일 등 재래식 무기의 폭약에 우라늄·플루토늄과 같은 방사성폐기물, 세슘-137 등과 같은 방사성물질을 덧입혀 폭발로 인한 대규모 방사능 오염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핵분열이나 핵융합 과정에서 발생하는 폭발력을 목적으로 하는 전술·전략 핵무기와는 성격이 다르다. 핵무기는 1차 폭발로 고열과 함께 전자기충격파(EMP)를 발생시켜 순식간에 다수의 목숨을 앗아간다.

폭발력으로 인해 방사능 물질이 상승했다가 광범위한 지역에 떨어지는 이후 과정부터는 핵무기와 더티 밤은 성격이 유사하다. 핵무기든 더티 밤이든 낙진 지역 내 다수는 방사능 물질에 피폭된다. 극소량에 노출된 경우라 하더라도 생존이 힘들다.

더티 밤은 전장에서 실제로 사용된 사례는 아직 없다. 미 외교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1996년 러시아와 분쟁 중이던 체첸반군이 모스크바 이즈마일롭스키 공원에 세슘-137과 다이너마이트를 혼합한 더티 밤을 설치했지만 폭발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가디언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핵무기 사용 가능성을 반복해서 언급한 이후 서방의 대응 과정에 주목했다. 러시아는 개전 이후 줄곧 서방의 참전, 크름반도 공격, 본토 타격 등 핵무기 사용 조건을 내세우며 위협해 왔다.

설령 우크라이나가 아닌 러시아의 더티 밤 사용 가능성이 높다고 하더라도 더티 밤 자체를 공론화시키는 것만으로도 위협을 고조시키는 것은 물론, 서방 지도자들이 대응을 위해 매달릴 수 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고 가디언은 풀이했다.

러시아의 더티 밤 공세에 사흘 간 반응을 보이지 않아 왔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날 처음 관련 입장을 밝혔다. 더티 밤을 명분으로 삼은 러시아의 전술핵무기 사용 가능성에 경고 메시지를 발신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그것이 거짓 깃발 작전인지는 아직 확실하지 않다. 나는 아직 모른다”면서도 “러시아가 전술 핵무기를 사용한다면 러시아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심각한 실수를 하는 것”이라고 했다.

앞서 바이든 대통령은 지난 7일 러시아의 전술핵 사용 가능성을 ‘아마겟돈(인류 최후의 전쟁)’에 비유하며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라며 우려의 뜻을 밝힌 바 있다.

과거 시리아 내전에 개입했던 러시아가 당시 서방의 대응을 지켜보면서 전쟁범죄 수준을 높였던 전략을 반복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더티 밤을 통해 이른바 서방의 ‘레드라인(Red line·한계선)’을 테스트하면서 추후 핵무기 사용 위협으로 이어나갈 수 있다고 가디언은 보도했다.

앞서 IS 테러 리스트 축출을 명분으로 내세운 러시아는 시리아 정부군과 함께 6개월 간 총 9000여 회 공습을 퍼부은 바 있다. 당시 러시아는 열압력탄, 소이탄, 집속탄 등 사용 금지된 무기를 집중 활용했다. 생화학무기를 사용했다는 의혹도 제기됐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는 시리아 정부군의 화학무기 사용을 ‘레드라인’으로 규정했지만, ‘제한적·다자적 개입주의 원칙’하에 비교적 소극적으로 개입한 전례가 있다. 이를 경험한 러시아가 당시 학습효과로 더티 밤으로 ‘레드라인’을 테스트하고 있다는 게 가디언의 분석이다.

또 핵무기 사용 가능성이 서방으로 하여금 우크라이나에 장거리 미사일 지원을 억제하는 효과를 거뒀듯, 추후 군사적 지원을 막기 위해 더티 밤 공론화를 시도 중이라는 시각도 있다.

우크라이나는 줄곧 사거리 300㎞ 이상의 전술탄도미사일 에이태큼스(ATACMS)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러시아 본토를 공격할 수 있다는 우려로 거부해왔다. 고속기동포병로켓시스템(HIMARS·하이마스)에서 발사가 가능하지만 최대 사거리 80㎞의 미사일만 제공해왔다.

자칫 미국이 공여한 미사일이 러시아 본토를 타격할 경우 러시아가 이를 빌미로 핵보복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에 따라 장거리 미사일 지원 억제 효과를 누려왔다고 가디언은 풀이했다.

안드레이 바클리츠키 유엔군축연구소 전략무기프로그램 선임연구원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대량파괴무기 사용과 관련한 ‘가짜 깃발’ 전술을 구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라면서 “전장에서 입지를 강화하면서 회담 개최를 위한 명분을 찾고 있을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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