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호인가 소유인가…미디어에 눈독 들이는 재벌들[김수현의 세계 한 조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20일 14시 4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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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표현의 자유 절대주의자(free speech absolutist)다.”

4월 25일, 세계 미디어 지형을 뒤흔들 ‘깜짝 발표’가 등장했습니다. ‘괴짜’ 세계 최고 부호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트위터 인수를 발표한 것이죠. 이날 트위터는 주당 54.20달러, 총 매각 대금 440억 달러(약 55조원)에 머스크에게 지분 전량을 매각하는 데 합의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현재로써는 머스크가 인수 계약 파기 가능성을 경고하는 등 협상에 난항을 겪는 듯 합니다.

진정 ‘농담‘같은 인수전이었습니다. 트위터는 수익성 측면에서 결코 좋은 인수 대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트위터의 하루 평균 이용자 수는 2억2900만 명 수준으로, 페이스북(19억6000명)·틱톡(10억 명)·인스타그램(5억 명)에 비해 밀리며, 신규 유입 역시 최근 떠오르는 틱톡이나 레딧만 못합니다. 이에 미 IT전문매체 슬레이트 “똑똑한 사람들이 아직도 트위터를 구입하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라며 머스크가 트위터의 수익성 개선에 성공할지 의문이라고 혹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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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스크 역시 이번 인수의 목적은 ‘돈’이 아닌 ‘표현의 자유’에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외부에서도 기존 신문이나 방송 등 전통 미디어 매입과는 다르다는 평가가 나옵니다. 영국 ‘타임즈’는 “트위터는 공론장에 팔리는 ’출판물’이 아니라 공론장 그 자체다. 머스크의 인수는 부자들이 공론장의 규칙 뿐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를 독점하는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머스크‘만’의 자유가 보장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옵니다. 그는 2018년 트위터를 통해 테슬라의 배터리 대량 폐기 의혹 기사를 낸 ‘비즈니스인사이더’ 기자에 “가짜뉴스”라며 수차례 공개 저격했습니다. 표현의 ‘절대’ 자유를 외치며 정작 테슬라의 주요 시장인 중국의 검열 정책은 묵인하고 있다는 점도 비판받고 있습니다.
일론 머스크는 2018년 테슬라의 ’배터리 대량 폐기 의혹‘을 보도한 기자에 대해 수 차례 ’가짜 기사(fake articles)‘라고 반박했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캡쳐
일론 머스크는 2018년 테슬라의 ’배터리 대량 폐기 의혹‘을 보도한 기자에 대해 수 차례 ’가짜 기사(fake articles)‘라고 반박했다. 일론 머스크 트위터 캡쳐
‘디지털 혁신’ 베이조스…“아마존 비판은 불가능” 지적도
미디어에 눈독을 들인 억만장자는 머스크가 처음이 아닙니다. 재정난에 허덕이며 SOS를 외친 언론에 수많은 기업인이 응답했습니다. 현재 이들은 미디어 수호와 소유 중간 어딘가에 있습니다.

머스크의 ‘세기의 라이벌’이자 미국 아마존 창업자인 제프 베이조스 역시 2013년 미국의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WP)를 인수했습니다. WP는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 이후 경영난에 허덕이고 있었습니다.

베이조스는 그런 WP를 그레이엄 가문으로부터 약 2억5000만 달러(약 3224억 원)에 인수했습니다. 인수 당시 WP의 편집국장을 맡은 마틴 바론은 “베이조스는 민주주의와 언론의 사명을 매우 중시하는 인물”이라며 “언론이 안정적인 사업 모델을 가지고 있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점”고 인수 배경을 설명했습니다. 물론, “우린 아주 헐값이었다”며 너털웃음을 짓기도 했습니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미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 워싱턴=AP 뉴시스
세계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아마존‘의 창업자이자 미 워싱턴포스트의 사주인 제프 베이조스. 워싱턴=AP 뉴시스
베이조스는 인수 초반부터 독립된 편집권을 보장할 것이라고 공언했습니다. 초반의 우려와 다르게 WP의 편집권은 독립적으로 유지되는 듯 보였습니다. 특히 노조 설립과 관련해 WP는 친(親)노조 시각을 보이며 꾸준히 아마존에 비판적 태도를 보이기도 했습니다.

대신 “20년 안에 종이 신문은 사라질 것”이라는 그의 호언장담을 지키듯 그는 디지털 전환 등 사업 모델을 변화시키는 데 주력했습니다. WP는 인수 3년 만에 흑자 전환에 성공했고, 2017년에는 온라인 유료 구독자 수 100만 명을 넘었습니다. 베이조스는 2018년 한 인터뷰에서 “90살이 된 후 내가 가장 자랑스럽게 일궈낸 것을 하나 꼽자면, WP를 인수해 그들이 험난했던 전환기를 지나가도록 도운 것일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다만 CEO의 직접 압박 없이도 기자들의 ‘눈치 보기’가 발생한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컬럼비아대가 발간하는 컬럼비아저널리즘리뷰(CJR)는 WP가 타 매체에 비해 아마존의 결점을 작게 보도하거나 아예 베이조스가 아마존의 소유주라는 점을 숨기는 등의 보도 방식을 취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미 허프포스트스토리 역시 다수의 WP 기자들이 스스로 “다른 기업에 비해 아마존을 덜 비판적으로 바라본다”고 평가하고 있다고 보도했습니다. CJR은 “베이조스가 소유한 신문사가 아마존을 취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고 꼬집었습니다.


‘WSJ 편집권 개입’ 의혹…정치적 파워까지 노린 언론 재벌
전통적인 미디어 재벌로는 호주 출신 폭스뉴스 창립자이자 뉴스코퍼레이션(뉴스코프) 회장인 루퍼트 머독(91)이 있습니다. 현재 뉴스코프는 폭스뉴스를 비롯해 월스트리트저널(WSJ), 뉴욕포스트, 더타임스, 더선 등 세계 유수의 신문사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현대 타블로이드판의 창시자’ 머독은 1952년 종군 기자였던 아버지로부터 작은 신문사였던 뉴스 리미티드(News Limited)를 상속받습니다. 이어 그는 스캔들 보도와 자극적인 헤드라인을 통해 선풍적 인기를 끌며 호주에 이어 영국, 미국에서도 미디어 사업을 성공시킵니다.

머독이 미디어 재벌을 넘어 본격적으로 정치적 파워를 확보하기 시작한 것은 1976년 뉴욕포스트 인수입니다.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1980년 열린 제40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뉴욕포스트가 로널드 레이건 당시 공화당 후보의 당선에 크게 기여했다고 평했습니다. 그 대가로 레이건 행정부는 머독의 미국 TV산업 진출을 빠르게 허용했죠. ‘같은 시장에서 한 개인이 방송과 신문을 동시에 소유할 수 없다’는 규정마저 없애며 그의 사업 확장에 전폭적 지지를 보냈습니다.

2007년 WSJ 인수 역시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이 해 8월 머독은 소유주 뱅크로프트 가문과의 협의를 통해 50억 달러(약 6조 원)에 WSJ를 인수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2013년 루퍼트 머독(왼쪽)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주가 7년간 WSJ에서 최고매출책임자(CRO)로 근무한 마이클 루니(가운데)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마이클 머독 트위터 캡쳐
2013년 루퍼트 머독(왼쪽) 미 월스트리트저널(WSJ) 사주가 7년간 WSJ에서 최고매출책임자(CRO)로 근무한 마이클 루니(가운데)와 작별 인사를 나누고 있다. 마이클 머독 트위터 캡쳐
NYT는 인수 결정 바로 다음 날에 ‘경쟁에 관한 촌평(Notes about Competition)’이라는 사설을 통해 편집권 독립에 대한 우려를 표시했습니다. NYT는 “NYT와 WSJ는 머독이 ’더타임스’의 편집권 독립 약속을 어떻게 배신했고, 그가 중국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BBC의 위성중계를 어떻게 중단했는지 보도해왔다”며 “WSJ 보도의 수준과 성실성을 수호하는 것이 곧 자신의 투자(WSJ 인수)를 보호하는 길”이라고 비평합니다. 머독은 이듬해 5월 WSJ 신임 편집국장으로 본인의 측근인 로버트 톰슨 전 더타임스 편집국장을 올립니다.

머독의 편집권 침해 논란은 이후에도 사그라지지 않았습니다. 2017년 8월 NYT는 WSJ 내부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비판하는 기사를 통제해 논란이 발생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제라드 베이커 당시 WSJ 편집국장이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반(反)이민·난민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 일부가 과도하게 주관적이라며 삭제했다는 것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 매주 전화를 할 정도로 ’절친’한 머독의 개입의 의심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선한 영향력 목표” 늘어나는 재벌의 ‘언론 소유’
언론 인수에 동참한 재벌들. 왼쪽부터 패트릭 순시옹, 존 헨리, 로렌 파월 잡스. 패트릭 순시옹 트위터·존 헨리 트위터·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언론 인수에 동참한 재벌들. 왼쪽부터 패트릭 순시옹, 존 헨리, 로렌 파월 잡스. 패트릭 순시옹 트위터·존 헨리 트위터·로스앤젤레스=AP 뉴시스
언론을 인수하는 재벌은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2018년 제약회사 ‘비보알엑스(VivoRx)’를 설립한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의 패트릭 순시옹은 미 유력 일간지인 ‘로스앤젤레스타임스’를 인수했습니다. 인수 이유에 대해선 “언론이 탄압받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유년 시절 인종차별을 경험한 것이 계기”라고 밝혔습니다.

미국 프로야구 보스턴 레드삭스와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EPL) 소속 리버풀FC의 구단주 존 헨리 역시 2013년 지역 신문인 ‘보스턴글로브’를 매입했습니다.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1955~2011)의 배우자인 로렌 파월 잡스도 2017년 ‘디 애틀랜틱’의 최대 주주로 부상했습니다. 로렌 잡스는 “중요한 시기에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라고 인수 배경을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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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현의 자유, 민주주의, 경제적 이득. 억만장자들이 밝힌 미디어를 인수하는 이유는 각양각색입니다. 다만, ‘영향력’이라는 공통분모는 분명해 보입니다. 매체의 영향력이 곧 자신의 영향력이 되는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돈으로 영향력을 살 수 있는 시대, 머스크의 ‘트위터 시대’가 열릴지는 아직까지는 물음표로 남아 있습니다.

김수현 기자 new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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