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 4층 건물을 사형 집행장 삼아 대학살…어린이 수용소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4월 24일 14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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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시스
“러시아 병사들이 시신을 끌고 다닌 탓에 바닥 이곳저곳에는 피가 흥건했다. 양동이에는 배설물이 가득했고 탁자 위에는 그들이 술판을 벌이고 남긴 맥주병과 와인병들이 뒹굴었다.”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의 외곽 도시 부차에서 러시아 병사들이 마을의 한 건물을 ‘감옥 겸 사형집행장’으로 삼아 참혹한 만행을 저질렀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곳에 수감됐다가 살아남은 생존자들은 “100명이 넘는 사람들이 감금된 지하 감옥에는 악취가 가득했다”고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에 23일(현지 시간) 말했다.

러시아군은 인근에 ‘어린이용 수용소’도 따로 마련해 운영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날 WSJ은 우크라이나 전쟁 기간 벌어진 ‘부차 대학살’ 당시 러시아군이 거점으로 사용했던 한 건물의 이야기를 전했다.

러시아 공수부대와 와그너 용병으로 구성된 병사들은 부차에 있던 옛 소련식 4층 건물을 점령해 기지로 삼았다. 우크라이나 관료들에 따르면 약 100명의 러시아군이 이 건물에 주둔했고 작전에 필요한 무선전자장비 등도 갖춰졌다. 이곳에선 러시아군에게 포로로 잡힌 우크라이나 시민들에 대한 심문, 고문, 구금, 살해가 자행됐다.

2월 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기 전 이 건물 경비원으로 근무했던 미콜라 자카르첸코 씨는 부차로 진격한 러시아군에게 지난달 4일 붙잡혀 이 건물에 구금됐다. 그는 “이미 그때 건물 주변에 시신들이 널려 있었고 총에 맞아 숨진 것으로 보이는 시신 7구도 있었다”고 말했다. 러시아군은 생포한 우크라이나 남성들을 끌고 와 시신 앞에 무릎을 꿇린 뒤 “당신이 우크라이나 군대 소속인 것을 실토하라”고 윽박질렀다고 한다.

러시아군은 자카르첸코 씨를 심문하면서 그의 아이폰을 압수했다. 그들은 아이폰 안에 들어 있던 데이터를 컴퓨터로 옮겨 자카르첸코 씨의 경력을 조사하던 중 그가 2018년 러시아에서 용접공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러시아군은 “당신도 프롤레타리아(노동자 계급)였느냐”며 자카르첸코 씨를 죽이지 않고 지하에 가뒀다.

지하 감옥에 갇힌 130여 명의 우크라이나 시민들은 러시아 병사들이 먹고 남긴 음식물을 먹으며 버텼다. 이곳은 과거 소련 시대에 공습 대비를 위한 대피소로 쓰이던 곳이라고 WSJ는 전했다. 여성과 어린이를 포함해 이 곳에 갇힌 시민들은 비좁은 공간 탓에 누울 자리도 제대로 확보할 수 없었다.

생존자들은 러시아군이 일부 포로들을 총으로 쏜 뒤 건물 여기저기에 끌고 다녔고 그 때문에 바닥에 피가 많이 묻어 있었다고 말했다. 또 복도에는 술병들이 뒹굴었다. 인근의 다른 2층짜리 건물은 ‘사형집행 장소’로 쓰였다. 생존자들은 “차고가 딸린 노란색 2층 집으로 끌려간 사람들은 총살 당했다”고 말했다.

부차 시장 아나톨리 페도루크는 “러시아군이 도시를 여러 구역으로 나누고 각 구역에 살고 있던 정치인, 공무원 등 40여 명을 조사해 구금, 살해했다”고 말했다. 인근 마을 호스토멜에서는 시민들에게 구호 식량을 나눠주던 호스토멜 시장이 러시아군에 살해당했다.

러시아군은 인근의 다른 건물을 ‘어린이용 수용소’로 사용하기도 했다. 입구에는 참호를 팠다. 러시아군이 이 지역에서 철수한 뒤 현장을 조사한 지역 주민들은 건물 입구에서 시신 다섯 구를 발견했다. 나이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으나 모두 손이 뒤로 묶이고 뒤통수에 총을 맞은 채 숨져 있었다.

러시아군은 점령한 마을에서 슈퍼마켓, 병원도 무차별로 약탈했다. 수술 도구와 의료 기구도 빼돌린 것으로 알려졌다. 우크라이나 시민들의 시신들이 계속 늘어나자 보다 못한 이 지역 의사는 러시아군에게 “이대로 시신들을 방치하다간 부패해 전염병이 돌 것이다. 무덤을 파고 묻어줘야 한다”고 요청하기도 했다.

러시아군이 일시적으로 철수한 이후 마을로 돌아온 주민들은 부차의 참상에 경악했다고 WSJ는 전했다. 주민들은 연료 공급이 끊긴 탓에 나무 장작으로 불을 지펴 음식을 만들고 목욕물을 데우고 있다.

WSJ에 따르면 부차에 주둔했다가 철수한 러시아 군 중 일부는 본국에서 훈장을 수여 받았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부차 점령부대 중 하나인 제64기동소총여단에도 러시아군 최고 훈장을 수여했다. 페도루크 시장은 “푸틴은 이곳에서 러시아군이 저지른 만행을 분명히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은택 기자 na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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