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티우텐코 씨의 8세, 1세 딸이 체코 프라하로 피란가기 전 경유한 폴란드 바르샤바의 한 임시 피란민 숙소에서 잠을 자고 있다. 올레나 티우텐코 씨 제공
피란 생활 50여 일째인 21일, 8세인 큰 딸은 이날도 같은 질문을 해왔다. 올레나 티우텐코 씨(36)가 지난달 초 어린 두 딸을 데리고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를 떠나 체코 프라하에 머물고 있는 지금까지 거의 매일 듣는 질문이다.
“엄마, 아빠는 언제 만날 수 있는 거야?”
티우텐코 씨 부부는 전쟁 전만 해도 키이우에서 작은 농장을 운영했다. 러시아의 침공 이후 징집 대상인 남편은 키이우에 남고, 세 모녀만 피란길에 올랐다. 두 딸에게 아버지가 전쟁터에 있다는 사실을 알릴 수 없었던 티우텐코 씨는 “아빠 일이 마무리되면 곧 만날 수 있을 거야”라며 달래듯 답해왔다.
그는 피란을 떠날 때만 해도 곧 키이우로 돌아와 남편과 상봉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집에서도 옷 몇 벌과 약간의 현금만 챙겨 나왔다. 하지만 전쟁은 언제 끝날지 기약이 없다. 그 사이 아이들은 전쟁의 공포에 고스란히 노출됐다. 피란을 떠나기 전 키이우에 있는 동안 러시아군의 미사일 공격이 이어졌고 수시로 울리는 경보 사이렌 소리에 어린 딸들은 소리를 지르며 치를 떨었다. 이후 아이들은 조금만 큰 소리가 들려도 몸을 벌벌 떨며 자지러졌다. 이제 1살인 둘째 딸은 자그마한 소리에도 울었다.
지난달 11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체코 프라하로 가는 비행기를 타고 있는 티우텐코 씨와 그의 품에 잠들어 있는 막내 딸.부부는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아이들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살얼음 같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티우텐코 씨는 프라하에 사는 지인 부부의 아파트에 얹혀사는 신세지만 아이들이 깨어있는 동안에는 TV를 틀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뉴스만 틀면 우크라이나 전쟁 소식이 흘러나오기 때문이다.
티우텐코 씨는 동아일보 기자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아이가 무섭다고 울면 다른 분들 눈치가 보여 아이의 입을 막으며 달랜다. 그 나이엔 감정을 표현하는 게 자연스러운 건데…”라고 했다.
티우텐코 씨는 하루에 2, 3차례 남편과 전화 통화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한다. 남편은 키이우 등지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에게 필요한 물자를 전달하는 일을 하고 있다. 낮에는 두 딸도 함께 통화를 하기 때문에 남편은 최대한 조용한 곳을 찾아 조심스럽게 전화를 건다. 주변에서 포성이 울리는 등 상황이 불안할 땐 통화를 미룬다.
지난달 4일 우크라이나에서 폴란드로 넘어가는 국경에서 티우텐코 씨가 남편(빨간색 외투를 입은 남성)과 작별 인사를 한 뒤 망토로 두 딸을 덮은 모습. 네 식구가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이다.밤이 되면 티우텐코 씨는 화장실에서 남편에게 전화를 건다. 부부는 전화로 전쟁 중인 조국을 위해 기도를 하는데 아이들이 혹시라도 전쟁이라는 단어를 듣게 될까봐 거의 속삭이듯 기도한다.
티우텐코 씨는 언제까지 이 생활을 이어갈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 그는 “가져온 현금은 거의 바닥났고 우크라이나에 남은 가족들의 생사가 걱정되어 잠을 이루기 어렵다”고 했다.
피난길에 오른 이후 계속 감기가 낫지 않아 밤잠을 설치는 두 딸은 잠결에 잠시 깼을 때도 엄마에게 같은 질문을 한다. “아빠 언제 와?”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