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가 미국 달러로 빌린 돈을 자국 통화 루블화로 갚겠다고 위협하며 1998년 이후 처음으로 디폴트(채무상환불이행)에 빠질 위험이 커졌다.
안톤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13일(현지시간) 서방이 3000억달러에 달하는 자국 외환보유액을 동결한 제재안을 해제하기 전까지 모든 채무상환을 루블화로 결제하는 것은 “당연히 합당”한 일이라고 말했다.
실루아노프 재무장관은 이날 국영방송과 인터뷰에서 “식품, 의약품을 비롯해 각종 필수품처럼 중요한 수입품들을 지불해야만 한다”고 말했다. 그는 “러시아 연방에 비우호적이며 우리의 외환보유고 사용을 제한하는 국가들에게 돈을 줘야 한다”며 “이러한 국가들에 빚을 루블화로 똑같이 갚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6430억달러에 달하는 러시아 외환보유액의 절반이 서방 제재로 타격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JP모간에 따르면 러시아는 오는 16일 2개의 달러 표시 국채의 이자 1억1700만달러를 상환할 예정이다. 하지만 2개 달러표시 국채의 계약상 루블화 결제 옵션은 없다. 통상 30일의 유예기간이 있겠지만 그 사이 제재가 풀리지 않는 이상 러시아는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처음으로 디폴트를 선언할 가능성이 높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전세계 투자자들이 보유한 러시아 자산은 1700억달러 수준으로 이 가운데 200억달러는 외환(주로 달러) 표시 채권이다. 24곳 넘는 자산운용사들이 막대한 러시아 보유자산을 동결했다. 러시아 자산을 감가상각한 운용사들도 많다.
서방이 러시아를 국제결제시스템 스위프트에서 차단하면서 러시아에서 이같은 자금 엑소더스(대탈출)가 일어났다. 지난달 28일 이후 모스크바 증시에서 거래는 중단됐고 해외에 상장된 많은 러시아 기업들의 주가는 폭락했다. 올들어 루블화의 가치는 달러 대비 45% 이상 추락했다. 올해 루블화는 1998년 외환 위기 이후 최대 낙폭을 나타낼 것으로 보인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러시아는 루블화로 발행한 채권에 대해 디폴트했다.
러시아의 디폴트, 국가부도가 임박했다는 경고가 잇따른다. 국제통화기금(IMF) 의 크리스탈리나 게오르지에바 총재는 채무상환 의무라는 관점에서 러시아의 디폴트가 있을 수 없는 일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국제신용평가업체 피치, 스탠다드앤푸어스(S&P), 무디스는 일제히 러시아의 국가신용등급을 디폴트 직전으로 끌어 내렸다.
FT에 따르면 2월 초까지 러시아가 보유한 자산은 외국 증권 3110억달러, 외국계 은행에 예치한 현금과 예금 1520억달러, IMF 특별인출권 300억달러, 금 1320억달러였다. 러시아는 달러 자산 비중을 2013년 45%에서 2021년 16.4%로 크게 줄였다.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였던 크림반도를 무력병합하고 이후 서방의 제재를 받으며 달러 비중을 줄였다.
러시아 중앙은행은 외환보유액 현황을 6개월에 한 번씩 업데이트하는 데 가장 최근인 2021년 6월 기준으로 외환보유액은 유로 32.3% 중국 위안 13.1% 영국 파운드 6.5% 기타 통화 10%이며 나머지는 금 21.7%다.
러시아 자산을 가장 많이 보유한 국가는 중국으로 러시아 외환보유고의 14.2%를 갖고 있다. 그 다음은 일본 12.3%, 독일 11.8%순이다.
서방은 러시아가 위안화 보유액을 사용하는 것을 중국이 제약하도록 압박하고 있다고 실루아노프 러시아 재무장관은 주장했다. 하지만 중국은 이러한 서방의 압박에 굴하지 않을 것이라고 그는 확신한다고 밝혔다. 실루아노프 장관은 “중국과의 파트너십 덕분에 협력이 지속되고 서방 시장이 문호를 닫을 때 중국은 협력을 강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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