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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국제

[인사이드&인사이트]“게임으로 치매-고독사 예방” 초고령사회 日의 노인케어

입력 2021-06-30 03:00업데이트 2021-06-30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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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스포츠 통해 고령층 건강관리
18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e스포츠 건강게임 체험회’에서 이토 유키코 씨(오른쪽)가 음악에 맞춰 북을 두드리는 게임 ‘태고의 달인’을 즐기고 있다. 행사를 주최한 일본 고령자단체 ‘일본액티비티협회’는 게임을 통해 고령자의 노화와 치매를 예방할 목적으로 2주에 한 번씩 모임을 연다고 밝혔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도쿄=김범석 특파원
《“박자에 맞춰 다 같이 딱! 딱! 딱!” 18일 오후 1시 도쿄 하치오지의 한 강당. 음악 리듬에 맞춰 북을 두드리는 게임 ‘태고의 달인’ 영상이 대형 화면에 흐르고 있었다. ‘첫 타자’로 나선 사람은 백발의 이토 유키코 씨(76·여). “왜 내가 처음이냐”며 잔뜩 긴장한 표정을 하고 모니터 앞에 앉았다. 그는 “태어나서 처음 게임을 해본다”며 시작부터 손을 벌벌 떨었다. 느린 리듬의 노래에도 박자를 놓치기 일쑤였다. “틀려도 상관없다”는 지도사의 말에 서서히 긴장을 풀기 시작한 이토 씨는 노래가 끝날 때쯤 미소를 되찾았다.》

○ 게임 즐기는 할머니들


이날 행사는 일본 고령자단체 ‘일본액티비티협회’ 등이 개최한 ‘e스포츠 건강게임 체험회’ 다. 2012년 도쿄 인근 요코하마에서 처음 열렸고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잠시 중단됐다. 올해 3월부터 재개돼 도쿄, 후쿠오카 등 전국 31곳에서 매달 2회씩 동시에 열리고 있다. 코로나19 사태 이전에는 매회 20∼30명의 고령자가 참석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에는 감염 방지책 등을 고려해 1회 참가 인원을 10명 이내로 제한하고 있다.

가와사키 요이치(川崎陽一) 일본액티비티협회 대표이사는 “한 번에 손과 눈, 다리 등을 움직이는 ‘멀티태스킹’이 고령자에게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는 것이 핵심”이라며 “여럿이 게임을 즐기는 과정에서 ‘사회적 참가’ 효과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게임을 마친 이토 씨도 “(게임을 처음 해) 실수만 하다 끝난 것 같지만 머리와 몸 전체가 가벼워지고 기분이 즐거워졌다”며 웃었다. 최근 허리 통증이 심한 상황에서 코로나19로 집에만 있다 보니 우울증까지 겪었지만 게임을 즐기면서 우울함이 사라졌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참가자 하기우다 후미코 씨(66·여)는 젊은층도 쉽게 하기 힘든 고난도 레이싱 게임 ‘그란 투리스모’에 도전하며 땀을 흠뻑 흘렸다. 평소 무릎 통증에 시달려 주 2, 3회 체조 외에는 건강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그는 “오랜만에 손(핸들)과 발(페달)을 사용해 게임을 즐겼더니 몸이 달라진 것 같다”고 만족을 표했다.

○ 고령자 전용 PC방, 91세 게임 유튜버


16년 전 초고령사회(만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전체의 20% 이상인 사회)에 진입한 일본은 지난해 기준(10월 1일)으로 65세 이상 인구 비율이 28.8%(3619만 명)까지 증가했다. 일본 정부는 2025년에 이 비율이 30%를 넘을 것으로 보고 고령자 대책을 세우고 있다. 특히 치매 치료는 핵심 과제 중 하나다. 최근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내 치매 환자는 약 600만 명으로 추산됐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게임(e스포츠)이나 대전 형태(2인 이상)의 콘솔 게임을 활용해 고령자 문제를 해결하려는 움직임이 일본 내에서 나타나고 있다. 과몰입 등 게임의 부작용과는 별개로 판단력과 순발력이 필요한 게임의 특성을 살려 고령자의 노화를 막아보려는 접근이다. 요미우리신문은 “고령자의 건강 및 사회 활동 증진 측면에서 게임에 대한 시각이 바뀌고 있다”고 보도했다.

17일 오후 도쿄 인근 사이타마현 우라와시의 한 사무실에도 머리가 희끗한 10여 명의 장년들이 대형 화면 앞에 모여 스모 게임을 즐기고 있었다. 노란색 티셔츠를 맞춰 입는 등 소속감을 드러내며 게임을 즐기는 이들은 비영리단체 ‘사이타마시민네트워크’가 3년 전 결성한 ‘실버 e스포츠 협회’ 소속 회원이다. 정기적으로 모여 게임을 즐기며 친목을 도모하는 이는 약 40명. 이 중 최고령 회원의 나이는 88세다.

이들의 활동을 눈여겨보는 사람 중에는 지자체 직원도 있다. 현장에 참석한 한 공무원은 “과거 바둑이나 장기를 두던 어르신들의 모습과는 다른 모습에 놀랐다”며 “지자체로서도 게임을 접목해 어떤 치매 예방 프로그램을 내놓을 수 있을지 연구하겠다”고 말했다. 돗토리현에서는 최근 지역 내 고등학생과 고령자들 간 게임 대전 프로젝트가 시작됐으며 도야마현에서도 민간 기업과 연계한 ‘실버 e스포츠 대회’ 개최를 추진하는 등 지자체의 움직임도 빨라지고 있다.

고베에서는 60세 이상의 고령자 전용 게임방(PC방)도 등장했다. 18일 온라인 화상을 통해 살펴본 현장에는 총 6대의 컴퓨터에 고령자들이 앉아 퍼즐부터 슈팅 게임(FPS)까지 다양하게 즐기고 있었다. 나시모토 고지(梨本浩士) 대표는 “게임 속 다양한 상황을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통해 두뇌 회전을 촉진시킬 수 있다”며 “노년의 고립을 막고 사회 활동 및 교류를 장려하는 장소로서도 의미가 있을 것 같아 (게임방을) 열게 됐다”고 말했다.

최근에는 세계 기네스북에 오른 91세의 게임 유튜버도 등장했다. 자신의 게임 영상을 업로드하며 젊은층과 소통하는 이른바 ‘게임하는 할머니’ 모리 하마코(森濱子) 씨가 그 주인공으로 영상 구독자 수만 51만 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얻고 있다.

○ 치매·고독사 극복 위한 이례 대응


게임과 치매 및 노화 예방의 상관관계를 확인하는 검증도 잇따르고 있다. 가토 다키아키(加藤貴昭) 게이오대 교수(환경정보학) 팀은 지난해 태고의 달인을 하는 70, 80대 고령자 21명에 대해 10주간 인지 기능에 대한 정밀 검사를 벌였다. 게임 전후로 선 잇기 검사(트레일 메이킹 테스트·TMT)와 뇌활력 검사(스트루프 검사) 등을 실시해 차이를 알아보는 실험이다. 그 결과 실험자들은 게임 후 두 검사에서 각각 평균 15초, 7초 단축한 것으로 나타났다. 게임 화면에 맞춰 손가락을 움직이는 것이 인지 기능 개선에 도움을 준다는 결과를 얻었다.

건강 효과 역시 입증됐다. 미야자키 료(宮崎亮) 시마네대 교수(인간과학부) 팀은 그란 투리스모를 하는 60, 70대 고령자 20명의 심박수를 쟀더니 평균 40박이 상승해 빨리 걷기와 같은 정도의 운동 효과 및 긴장감, 활기 등이 나타났다고 밝혔다.

가토 교수는 “몸이 불편해 신체적 운동을 하기 힘들거나 코로나19로 외출 기회가 적어진 고령자들에게 게임이 사회적 유대관계를 유지하는 매개체가 될 수 있다”며 “치매나 노화 예방의 효과 측면뿐 아니라 고독사와 같은 사회 문제 측면에서도 접근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26년에 초고령사회에 진입하는 한국에도 시사하는 바가 클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일각에서는 정보기술(IT)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 또한 많아 노년층 내 디지털 디바이드가 나타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제기한다. 내각부에 따르면 60대의 25%, 70세 이상의 57% 등 60세 이상 고령자 약 2000만 명이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이른바 ‘디지털 약자’로 꼽힌다.

도쿄=김범석 특파원 bsism@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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