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추구? 사회적 책임? 의회 난입 사태 후 기로에 선 美 기업들 [정미경 기자의 청와대와 백악관 사이]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19일 14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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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위대와 함께 하느니 차라리 혼자 있고 싶어요.”

의회 난입 사태 후 미국 바디스프레이 회사 액스(AXE)가 자사 소셜미디어에 올린 트윗 성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지지 시위대가 스프레이를 들고 의회 곳곳에 낙서를 하고 몸에 뿌리며 난장판을 만드는 장면이 사진과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퍼져 나간 후였죠. 시위대가 휩쓸고 간 뒤 의회 건물 한 구석에 내동댕이쳐진 바디스프레이 캔은 요즘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가장 많이 트렌딩 되고 있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최근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미지. 시위대가 버리고 간 바디스프레이 캔은 의회 난입 사태의 아픈 흔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복스닷컴
최근 미국 소셜미디어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이미지. 시위대가 버리고 간 바디스프레이 캔은 의회 난입 사태의 아픈 흔적이라는 평을 듣고 있다. 복스닷컴


물론 바디스프레이 회사가 시위를 조장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관련’ ‘연상’ 기업인 것만은 분명하죠. 유명 브랜드가 우연하게 큰 사건 사고에 연루되는 것은 자주 있는 일입니다. 이럴 때 기업은 어떤 행동을 취해야 할까요.

액스는 폭력시위대를 비판했습니다. 사회적 논란이 되는 이슈에 자기 목소리를 분명히 낸 것이죠. 이 회사의 트위터 메시지는 이어집니다. ‘의회에서 발생한 폭력과 증오의 행동을 규탄한다. 민주적 절차와 평화로운 정권 이양을 존중한다’는 내용이었죠. 그러자 “옳은 결정”이라는 이해와 공감의 댓글이 이어졌습니다.

액스의 시위대 규탄이 도덕적으로 옳은 결정이라는데는 이견의 여지가 없습니다. 하지만 비즈니스적으로도 옳은 결정이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합니다. 기업의 목표는 이윤 극대화입니다. 일각에서는 폭력시위 비판이 긍정적인 이미지 형성으로 이어지면서 매출 상승이 기대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디스프레이는 원래 작은 시장입니다. 꼭 사야 되는 생필품도 아니지요. 매출 상승보다는 하락을 점치는 전문가들이 더 많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은 벌써 액스 보이콧에 돌입했습니다. “우리를 비난하는 회사 제품은 사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죠. 액스 입장에서는 시위를 규탄할 경우 매출에 악영향을 미칠 것을 예상했겠지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로 한 것이죠.

바디스프레이 회사 액스(AXE)의 폭력시위대 규탄 성명. “시위대와 함께 하느니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액스 트위터
바디스프레이 회사 액스(AXE)의 폭력시위대 규탄 성명. “시위대와 함께 하느니 차라리 혼자 있고 싶다”는 내용으로 시작한다. 액스 트위터


이럴 때 대부분의 기업은 침묵을 선택합니다. 미국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올리브가든’ 사례입니다. 얼마 전 CNN 유명 앵커인 앤더슨 쿠퍼의 방송 발언이 논란의 시초였습니다. 폭력 시위대가 체포되지도 않고 해산하는 것을 보고 분개한 쿠퍼는 “저 무리들은 (음식점) 올리브가든과 (숙소) 홀리데이인으로 돌아가 무용담을 떠들어댈 것”이라고 말했죠.

폭스뉴스 등 트럼프 지지층에서는 “부자 좌파의 엘리트주의”라며 쿠퍼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렸습니다. 쿠퍼는 미국의 손꼽히는 부호인 밴더빌트 가문 출신이기 때문이죠. 올리브가든이나 홀리데이인은 ‘대중 브랜드’ 이미지가 강합니다. 그러자 쿠퍼는 살짝 꼬리를 내리며 “개인적으로 올리브가든에 잘 간다. 거기 브레드스틱이 맛있다”면서 “당시 긴박한 상황을 전하려다 보니 말이 잘못 나왔다”고 해명했습니다.

의회 난입 사태 후 화제가 된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올리브가든’(오른쪽). “시위대가 올리브가든으로 몰려갈 것”이라는 CNN 앵커 앤더슨 쿠퍼(왼쪽)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치트시트닷컴

의회 난입 사태 후 화제가 된 패밀리레스토랑 체인 ‘올리브가든’(오른쪽). “시위대가 올리브가든으로 몰려갈 것”이라는 CNN 앵커 앤더슨 쿠퍼(왼쪽)의 발언이 논란이 됐다. 치트시트닷컴


쿠퍼가 소속된 CNN과 폭스뉴스가 올리브가든을 놓고 입씨름을 벌이는 동안 정작 올리브가든은 아무런 반응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홀리데이인도 마찬가지로 ‘노코멘트’ 전략을 택했습니다. 일각에서는 “‘폭력시위 규탄’ ‘평화 존중’ 정도의 메시지는 내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지만 두 회사 모두 조용했습니다. 이 같은 침묵 전략을 두고 “비즈니스 때문”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습니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한바탕 시위를 벌인 뒤 체인점이 많고 가격대가 저렴한 올리브가든이나 홀리데이인을 애용한다는 것은 꽤 알려진 사실이었으니까요.

2013년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 총격 사건 때 등장했던 스키틀즈도 비슷한 사례입니다. 당시 비무장 상태의 마틴은 편의점에서 스키틀즈 한 봉지와 아이스티를 사고 집으로 돌아가다가 경찰관 조지 짐머만의 총격에 사망했고, 짐머만은 이후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죠. 인종차별 반대 시위가 거세게 일어나면서 스키틀즈는 평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게 됐습니다. 시위대는 스키틀즈를 한 봉지씩 들고 스키틀즈 마스크를 쓰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무지개를 경험하라(Taste the Rainbow)’라는 스키틀즈 광고 문구 자체가 인종차별 반대 시위와 딱 들어맞은 컨셉이었죠. 홍보 효과를 누리면서 스키틀즈의 매출도 올랐습니다. 그러나 스키틀즈는 판결 때나 이후 벌어진 시위 때나 어떤 반응도 내놓지 않았습니다.

2013년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 총격 사건 후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의 스키틀즈를 활용한 시위 모습. 뉴욕매거진
2013년 흑인 소년 트레이본 마틴 총격 사건 후 벌어진 인종차별 반대 시위대의 스키틀즈를 활용한 시위 모습. 뉴욕매거진


그러나 사회적 논란을 둘러싼 기업들의 마케팅 기법도 점차 변하고 있습니다. 의회 난입 후 많은 기업들은 ‘침묵’보다 ‘의견’을 택하고 있습니다. “폭력 규탄” “민주주의 수호”에서부터 “대통령 탄핵” “권한 박탈”에 이르기까지 자기 목소리를 낸 기업은 코카콜라, 벤&제리스 등 줄잡아 30개 이상으로 추산됩니다. 미국 마케팅전문지 애드에이지는 “그 중에는 벤&제리스, 파타고니아처럼 평소 사회참여 정신이 투철한 기업이 있는가 하면 코카콜라, 셰브론 등 ‘미묘한 평판’을 가진 브랜드도 있다”고 말합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엑손모빌, 화이자 등 1만4000개 기업을 회원으로 거느린 보수 성향의 전미제조업협회(NAM)가 ‘트럼프 대통령의 즉각적인 사임’을 요구할 정도로 기업들의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전역에 트라우마를 안겨준 이번 사태를 통해 기업들의 사회의식도 확실히 변하고 있는 듯합니다.

정미경 기자 micke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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