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틴 생일선물로 퇴진집회를”… 러시아 80개 도시서 시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0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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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틴의 유일한 야권 대항마 나발니, ‘생일 선물 집회’ 설계로 구류 처분
푸틴 고향서도 2000명 “물러나라”… 경찰, 강제해산… 전국서 271명 구금

러시아 타스통신 홈페이지에는 ‘진정한 리더십 이야기’가 사흘째 최상단에 올려져 있다. 7일 65번째 맞은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생일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일대기를 소개한 것이다. 시시각각 수많은 뉴스가 올라왔지만 푸틴의 일대기는 굳건히 헤드라인을 장식했다.

그러나 푸틴 대통령의 생일을 축하하는 선물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날 러시아 전역 80개 도시에서 반정부 시위가 벌어졌다. 시위대는 푸틴의 정적인 알렉세이 나발니가 내년 3월로 예정된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며 정부를 압박했다. 모스크바 푸시킨 광장에 모인 700여 명의 시위대는 크렘린궁을 향해 행진하며 “푸틴, 물러가라” “푸틴 없는 미래를”이라는 구호를 외쳤다.

이날 경찰은 이례적으로 모스크바 시내의 크렘린궁 근처에서 집회를 허용했다. 푸틴 대통령의 생일이 폭력 진압과 유혈 사태로 얼룩지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하지만 푸틴 대통령의 고향인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2000여 명의 시민이 반정부 시위에 참가하면서 시위가 격화됐다. 결국 시위대는 경찰에 의해 강제 해산됐다. 이날 경찰은 상트페테르부르크 시위대 최소 66명을 포함해 전국에서 시위에 참가한 271명을 구금했다.

러시아의 대표적인 야권 운동가이자 푸틴 대통령에 맞설 유일한 대항마로 거론되는 나발니가 당초 반정부 집회 설계자였다. 나발니는 푸틴 대통령에게 보내는 ‘생일 선물’이 될 것이라며 7일 푸틴의 고향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대대적인 반정부 시위를 촉구했다. 그러나 모스크바 법원은 나발니에게 ‘집회·시위 조직 및 추진 절차’ 규정을 위반했다는 이유로 2일 20일간 구류를 선고해 그는 이번 집회에 참가할 수 없게 됐다. 선고 직후 그는 트위터에 “노인네 푸틴이 그곳에서 열리게 될 우리 집회에 너무 놀라 작은 생일 선물(자신의 구류형)에 스스로 행복해지기로 했다”는 글을 올려 푸틴 대통령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나발니는 지난해 12월 차기 대선에 출마하겠다고 공식 선언했지만 러시아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6월 성명을 통해 그의 유죄 기록을 문제 삼아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는 처분을 내렸다. 나발니는 올해 2월 횡령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집행유예 5년을 선고받았다. 나발니는 자신을 대선에 출마하지 못하도록 막기 위한 정치적 판결이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는 대선 출마 선언 이후 경찰 지시 불이행, 집시법 위반 등으로 세 차례 구류를 선고받았다.

한편 푸틴 대통령은 내년 대선 출마를 선언하지 않았지만 재선 도전이 거의 확실시되는 분위기다. 현재 푸틴 대통령은 여전히 80%대의 국정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어 그의 출마 선언은 시간문제라는 분석이다. 그가 내년 재선에 성공할 경우 임기 6년을 더해 무려 24년간 집권하게 된다.

나발니는 여론조사 결과가 민심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는 “그건 평생 순무만 먹어 본 사람들에게 순무가 맛있다는 여론조사를 실시해 높은 찬성률을 얻은 것과 같다”며 “이제 다른 것도 먹여 볼 때가 됐다”고 말했다.

한편 크렘린궁에 따르면 푸틴 대통령은 휴일과 겹친 자신의 생일에도 업무 일정을 소화했다. 그는 남부 휴양도시 소치에서 국가안보위원회 상임위원들과 회의를 열고 안보 현안을 논의했다. 또한 외국 정상들로부터 생일 축하 전화를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통화 여부에 대해서는 공개하지 않았다.

카이로=박민우 특파원 minwoo@donga.com
#러시아#푸틴#시위#생일#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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