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버리에 하이힐… 패션쇼장 같은 여명거리

  • 동아일보

佛 여성주간지 ‘평양 스타일’ 르포
특권층 자녀들 ‘패션 혁명’ 주도… 홍콩-싱가포르의 패셔니스타 같아
핸드백-귀걸이-휴대전화는 필수품
“주민 41%는 굶주림에 신음하는데 사회주의 ‘쥐라기 공원’의 두 얼굴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주간지 ‘마담 피가로’가 최근 북한 평양 여명거리에서 찍은 북한 여성들. 무릎 위까지 오는 짧은 치마와 우아한 코트, 핸드백 등 패션이 화려하다. 사진 출처 마담 피가로
프랑스의 대표적인 여성 주간지 ‘마담 피가로’가 최근 북한 평양 여명거리에서 찍은 북한 여성들. 무릎 위까지 오는 짧은 치마와 우아한 코트, 핸드백 등 패션이 화려하다. 사진 출처 마담 피가로
“평양에서도 버버리 패션이 뉴욕이나 파리처럼 클래식한 옷이 됐다.”

최근 평양을 방문해 평양 고위층 여성들의 패션을 지켜본 프랑스의 여성 주간지 ‘마담 피가로’(발행 부수 약 45만 부)의 세바스티앵 팔레티 기자는 “최근 들어 평양 특권층에서 복고와 트렌드가 섞인 여성 의상 패션 혁명이 일어나고 있다”며 “2년 전 방문 때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라고 보도했다.

팔레티 기자는 ‘평양 스타일’이라는 제목의 29일자 르포 기사에서 퇴근 시간 여명거리는 오픈 패션쇼와 같은 느낌이었다며 이같이 전했다. 하이힐의 뾰족구두와 또각또각 부츠 소리가 거리를 뒤덮었다. 북한 여성들은 무릎 위까지 올라가는 주름치마와 빨간색 스카프로 멋을 부렸다. 네이비블루 빛의 재킷에 프랑스의 패션 아이콘 샤를로트 갱스부르가 입을 만한 우아한 트렌치코트를 입고 있는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일요일 오후 모란봉 공원에는 자유분방한 젊은이들이 진홍색(마젠타)의 스웨터와 몸에 딱 붙는 검은 바지, 그리고 파리 모양의 검은색 보잉 선글라스를 끼고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추고 있었다.

300만 명이 사는 평양의 패션 혁명은 10, 20대 일부 특권 고위층 자제, 젊은 여성들이 주도하고 있다. 여명거리를 걷는 20대 초반 여성들의 필수 패션 아이템은 하이힐, 귀걸이, 핸드백, 휴대전화이다. 팔레티 기자는 “이들의 롤리타 패션은 홍콩이나 싱가포르의 패셔니스타와 별로 다를 게 없었다”며 “이들은 북한에서 가장 좋은 대학인 김일성대 입학을 앞두고 전쟁을 벌이는 고위층 자제”라고 전했다. 이들은 기자가 사진을 다 찍자마자 서로 카메라로 달려와 자신이 어떻게 찍혔는지 확인하고 서로를 평가하는 자유분방한 모습도 보였다. 평양 레스토랑에는 중국과 베트남에서 들여온 수입 식료품과 잡화가 가득했다.

마담 피가로는 유엔 보고서를 인용해 국민 41%가 기아에 허덕이고 있는 사회주의 ‘쥐라기 공원’과 같은, 전 세계에서 찾아보기 힘든 폐쇄된 독특한 사회 구조 속에서 벌어지고 있는 이중적인 모습이라고 꼬집었다. 또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행정부 출범 이후 높아지고 있는 북한 핵개발에 대한 긴장감과도 모순되는 장면이라고 소개했다.

1990년 대기근 이후 더 이상 정부가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해 주지 못하면서 서서히 시장경제가 유입됐고 이 조용한 혁명을 여성들이 앞장서고 있다는 내용도 보도했다. 남자들이 권력에 매달리고 있을 때 여자들이 사회 변화를 불러오고 있다는 것이다. 평양에서 근무하는 한 유럽 외교관은 “여성들은 아이를 낳는 순간 남자처럼 공장이나 사무실에 의무적으로 출퇴근해야 할 의무가 없어지기 때문에 사업을 할 여유가 생긴다”고 전했다.

혁명 영웅 엔지니어의 부인이라고 밝힌 송손희 씨는 평양 개선문 앞에서 여러 안경점과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요즘 북한 최초 프랑스 식당을 개업하기 위해 투자자를 찾으러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를 자주 찾는다. 원래 북한 시민들은 여권을 가질 수 없지만 남편이 고위직이라 가능한 특권이다. 그녀는 인터뷰에서 당당하게 “비즈니스 파트너를 만나기 위해 중국을 자주 방문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마담 피가로는 “보수적인 북한에서 남녀평등은 여전히 갈 길이 멀다”며 “북한에서 여성 영웅은 기본으로 신뢰 있는 부인이자 완벽한 엄마가 전제되어야 한다. 그녀들의 미래가 남편의 지위와 직결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파리=동정민 특파원 ditt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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