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마단 기간이라 깨어있던 무슬림들… 화염 뚫고 건물 들어가 이웃들 구해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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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집마다 문 두드리며 “대피 하라”
저소득층 이민자들 피해 많아… 사라진 가족 부르는 울음소리 가득
CNN “산에 불 번지는 듯한 모습”… 영화 ‘타워링’ 연상 장면 생중계

깊은 밤 화마(火魔) 속에서 이웃들을 구한 건 라마단 기간에 깨어 있던 무슬림들이었다. 14일(현지 시간) 영국 방송 스카이뉴스 등에 따르면 이슬람의 성월(聖月) 라마단을 지키던 무슬림들은 초기에 불을 발견해 잠들어 있던 이웃들을 깨워 대피시켰다.

주민 대부분이 깊은 잠에 빠진 시간이었지만 해가 떠 있을 동안 금식을 해야 하는 무슬림들은 늦은 식사를 하기 위해 자지 않고 깨어 있었다. 지역 주민 라시다 씨는 “라마단을 지키기 위해 안 자고 있던 무슬림들이 불이 번지는 건물로 들어가 많은 사람을 깨웠다”고 말했다. 무슬림들이 집집마다 현관문을 두드리며 이웃들을 대피시켰다. 건물 밖으로 대피할 수 있었던 일부 주민은 “누군가 ‘불이 났다’며 현관문을 두드렸기 때문에 살아 나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아프리카와 중동 등에서 온 이민자들은 친척끼리 다른 층에 사는 경우가 많았다. 임차료가 싼 고층부에 살았던 사람일수록 대피하지 못한 경우가 많았다. 아랍계 남성 시아 나크샤반디 씨는 “오전 1시 45분경 귀갓길에 아파트가 불타고 있는 걸 봤다”며 “3층에 사는 형제들은 내 연락을 받고 뛰쳐나왔지만 23층에 거주하던 삼촌은 연락이 끊겼다”고 안타까워했다.

근처 커뮤니티센터에 마련된 쉼터에는 사라진 가족과 지인들을 목 놓아 부르는 울음소리가 가득했다고 영국 가디언 등은 전했다. 뉴스를 보고 급히 달려온 아메드 칠렛 씨는 센터 곳곳을 돌아다니며 처남 내외와 조카 3명을 찾고 있었다. 그가 처남과 마지막 통화를 했을 때는 오전 2시 반경. 처남은 젖은 수건으로 문 아래로 들어오는 연기를 막고 구조대를 기다리고 있었다. 칠렛 씨는 “곧 구조대가 올 것 같다고 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CNN 등 해외 언론들은 영화 ‘타워링’(1974년)과 2001년 9·11테러를 연상시키는 화재 장면을 실시간 중계했고, 급히 빠져나오느라 맨발에 잠옷 차림으로 발을 구르는 주민들을 인터뷰하면서 급박했던 상황을 알렸다. CNN은 목격자들의 증언을 토대로 “마치 산에 불이 번지는 듯한 모습이었다”고 보도했다.

김수연 기자 sykim@donga.com
#무슬림#런던#화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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