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수많은 기독교인들 중동서 처형당해” 적대감 자극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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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전 세계적인 반발에도 무슬림 7개국 국민에 대한 반(反)이민개혁 행정명령을 고수할 뜻을 분명히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반종교적, 반인종적 논란에도 이 같은 조치를 밀어붙이는 것은 미국인의 안전과 일자리를 최우선으로 여기는 ‘미국 우선주의’ 기조의 핵심적 조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9일 논란이 확산되자 이례적으로 개인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무슬림 금지도 아니고 종교에 관한 게 아니다. 기성 언론은 알면서도 말하지 않지만 이는 테러로부터 미국을 안전하게 하려는 것”이라고 못 박았다. 종교 탄압 논란을 감수하면서도 중동의 테러 위험국 출신 국민들에 대한 입국 심사를 강화해 미 본토에서 테러의 싹 자체를 줄여 나가겠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그러면서 “(7개국 외) 다른 40개 무슬림 국가는 이번 조치와 무관하다”며 “시리아 난민들이 겪고 있는 충격적인 인도주의적 위기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있으며 억압을 피해 (미국으로 오려는) 난민들의 심정도 계속 이해하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백악관 핵심 참모들도 총출동해 이번 조치의 당위성을 설파하고 나섰다. 켈리앤 콘웨이 백악관 선임고문은 이날 폭스뉴스 인터뷰에서 이번 조치로 인한 공항 억류 사태 등에 대해 “미국 안보를 위해 치러야 할 작은 대가”라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숀 스파이서 백악관 대변인은 ABC방송 인터뷰에서 “미국에 들어오는 사람들이 우리를 해치지 않고 평화적인 목적을 갖고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해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스티븐 밀러 백악관 정책고문은 CNN에 “향후 모든 외국인 방문객이 입국과 동시에 어떤 소셜미디어를 사용하는지, 어떤 휴대전화를 사용하는지 관련 정보를 미 정부에 제공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 중”이라고 말해 추가 조치 도입 가능성을 예고했다.

 전 세계 무슬림 사회의 반발을 뻔히 예상하면서도 이번 조치를 강행하는 데에는 미국 내 보수적인 기독교 세력을 결집해 국정 운영의 동력으로 삼으려는 정치적 목적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트럼프는 지난해 대선에서 보수적인 기독교 복음주의 유권자 중 81%의 지지를 받아 미 남부 지역과 일부 중서부 지역을 석권했다. 트럼프는 많은 미국인들이 교회에 가는 일요일인 29일 트위터에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중동 지역에서 처형당하고 있다. 이런 끔찍한 일이 계속되도록 할 수 없다”며 종교적 메시지를 던지기도 했다.

 야당인 민주당은 이번 행정명령을 무효화하기 위한 입법 투쟁에 나서기로 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을 갖고 “미국답지 않고 악랄한 이번 조치를 무효화하기 위한 입법에 나서겠다. 내 모든 것을 바치겠다”고 울먹이면서 선언했다. 공화당 중진인 존 매케인, 린지 그레이엄 상원의원도 공동 성명을 내고 “이번 조치는 테러리즘과의 싸움에서 자해가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트럼프의 이번 조치는 행정명령인 만큼 민주당이 공화당 일부의 지지를 얻는다면 행정명령보다 상위인 법률로 무력화할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이 의회의 상하 양원을 장악하고 있는 데다 설령 입법화되더라도 트럼프가 이 법률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하거나 다른 형태의 행정명령을 통해 얼마든지 반이민 조치를 만들 수 있는 만큼 실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입국 제한 7개 국가의 선정 기준에 대해서도 뉴욕타임스(NYT) 등 미 언론들은 “공정성과 실효성에 심각한 문제가 있다”고 비판했다.

 NYT는 이날 2001년 발생한 ‘9·11테러’를 주도한 19명의 테러범 중 18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 출신이었는데, 이 나라 여권을 소유한 사람들은 미국 입국에 아무런 제한이 없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트럼프 대통령이 소유한 기업인 트럼프 코퍼레이션이 사업을 진행하는 중동 국가들이 제한 리스트에서 빠진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고 CNN은 보도했다.

 이에 대해 스파이서 대변인은 “행정명령 대상 7개국은 오바마 정부 때 ‘테러 위협이 높다’는 이유로 비자면제 프로그램 등과 관련해 제재를 가하던 나라들”이라며 “행정명령 대상이 아닌 무슬림 국가가 46개국이나 된다”고 반박했다.

워싱턴=이승헌 ddr@donga.com / 뉴욕=부형권 특파원
#트럼프#무슬림#미국우선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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