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난 샌더스 지지자들 “네버 힐러리”… 민주당도 불협화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7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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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민주당 전당대회 개막]필라델피아 전당대회 현장

“그것 봐, 힐러리가 그럴 줄 알았어.”

“내일부터 본때를 보여줘야 해.”

이승헌 특파원
이승헌 특파원
24일 오후 6시(현지 시간), 미국 민주당 전당대회장인 펜실베이니아 주 필라델피아 웰스파고센터 주변 공원. 인근 뉴저지 주에서 1시간 넘게 차를 몰고 온 앤드리아(21), 어맨다 배스크스(20) 씨 자매는 잔디에 앉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버니 샌더스를 지지했다는 이들은 영문을 묻는 기자에게 “오늘 CNN에서 위키리크스 e메일 보도를 보고 엄청 열 받았다”고 말했다. 앤드리아 씨는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을 막기 위해 힐러리를 지지하려고 전당대회장까지 왔다”며 “하지만 다시 마음을 바꿔야겠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민주당 전당대회가 열리는 웰스파고센터 주변에는 위키리크스 e메일 파문이 알려지면서 24일 오전부터 힐러리 클린턴 지지자보다는 샌더스 지지자가 더 많이 모여들었다. 1787년 최초의 제헌의회가 연방헌법을 제정한 미국 민주주의의 고향 필라델피아. 이곳의 전대 전야(前夜)에는 미국 최초 주요 정당 여성 대선후보의 등장이라는 기대와 흥분보다는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았다.

클린턴의 구호인 ‘그녀와 함께한다’는 보이지 않고 샌더스의 구호인 ‘필 더 번’(Feel the Bern·버니를 느껴 봐)이 바로 눈에 띄었다. 지난주 공화당 전대장인 클리블랜드에서 자주 보였던 반(反)트럼프 진영의 ‘네버 트럼프’를 응용한 ‘네버 힐러리’ 구호도 곳곳에서 들렸다.

클린턴의 정치적 고향인 뉴욕에서 왔다는 조 브래드쇼 씨(42)는 “힐러리 지지자들도 양심이 있다면 어떻게 오늘 축제를 즐기겠느냐”며 “e메일 스캔들로 나라를 시끄럽게 했던 힐러리가 또다시 e메일 건으로 우리를 실망시켰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대선후보 왕관을 쓰면 안 된다”고 흥분했다. 기자가 “힐러리의 후보 지명은 막을 수 없는 일 아니냐”고 하자 “게임은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고 대꾸했다.

분위기를 간파한 듯 클린턴은 어느 때보다 신속하게 사태를 수습했다. CNN은 “통합과 화합의 전대를 만드는 데 이번 파장이 영향을 미치면 안 된다고 판단한 클린턴이 신속히 위기관리 시스템을 가동했다”며 클린턴이 데비 슐츠 민주당 전국위원회(DNC) 위원장의 사퇴를 종용했음을 시사했다. 클린턴이 당선돼야 자신의 업적을 유지할 수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이날 슐츠 위원장과 통화를 갖는 등 진화에 직접 나섰다.

샌더스는 “당장은 트럼프와 같은 재앙적 후보가 당선되지 못하도록 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며 클린턴 지지 의사에는 변함이 없다고 했지만 불쾌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CNN 인터뷰에서 “나는 오래전부터 DNC의 편파적 운영을 문제 삼아왔다. 이번 사건에 실망했지만 놀라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트위터에 “민주당의 완전히 망가진 시스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며 불난 집에 기름을 부었다.

e메일 파동으로 클린턴이 고심 끝에 고른 팀 케인 부통령 후보 카드는 별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다. 샌더스는 이날 “(진보 여전사로 불리는) 엘리자베스 워런 상원의원을 골랐어야 했다”고 클린턴을 비판했다. 트럼프는 NBC 인터뷰에서 “힐러리가 케인을 선택한 것은 샌더스나 다른 모든 이들에 대한 모욕”이라며 “케인은 버지니아 주지사 시절 16만 달러(약 1억8000만 원)어치의 선물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관심은 클린턴보다는 25일 전대 첫날 찬조연설에 나서는 샌더스의 입에 쏠리게 됐다. 그의 말에 따라 샌더스 지지자 중 일부가 이탈하거나 심지어 트럼프를 지지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26일로 예정된 후보 지명 과정에서 샌더스 지지자들이 전대장에서 물리력을 동원해 순조로운 지명을 방해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뉴욕타임스(NYT)는 샌더스가 최저임금 인상, 대형 은행 규제 같은 ‘이념적 혁명’ 안건을 강조할 예정이라면서도 “샌더스가 지난주 공화당 전당대회에서의 크루즈와 같은 논란을 만들지는 않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승헌 특파원 ddr@donga.com
#민주당 전당대회#버니 샌더스#힐러리 클린턴#위키리크스#트럼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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