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에 ‘날’ 세웠다가 ‘정권 인수’ 사령탑 맡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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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수위원장 내정 크리스티 주지사

미국 뉴저지 주지사 크리스 크리스티(54·사진)는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고 14번째 주자로 공화당 경선에 뛰어들었다. 같은 해 10월 뉴저지 내 공화당원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얻은 지지율은 달랑 5%였다. 응답자의 3분의 2가 “크리스티는 대선 레이스를 접고 주지사 업무에나 충실하라”고 주문했다.

크리스티가 뉴저지 주민의 뜻에 따른 건 4개월 뒤인 올 2월 아이오와와 뉴햄프셔 경선에서 최하위권 성적표를 받아든 직후였다. 이런 크리스티가 주민의 품 대신 경선 기간 내내 자신이 ‘최악의 후보’라고 비판했던 도널드 트럼프의 품에 안겼다. 같은 달 26일 “트럼프야말로 미국을 다시 세계의 리더로 만들 유일한 인물”이라고 극찬하며 공개 지지를 선언했다. 3월 1일 트럼프의 슈퍼화요일 경선 승리 연설 무대에선 넋 잃은 표정으로 병풍처럼 서 있는 모습이 카메라에 잡혀 두고두고 놀림거리가 됐다. 뉴저지 지역 언론들은 공동 사설로 “크리스티의 기회주의와 위선이 역겹다. 당신은 대선 후보는커녕 주지사 자격도 없다”며 사퇴를 촉구했다.

공화당 대선 후보로 사실상 확정된 트럼프가 9일 이 논란의 인물을 11월 대선에서 승리할 경우 출범할 정권인수위원회의 위원장으로 발탁했다. 트럼프는 선거캠프 성명을 통해 “크리스티 주지사는 식견이 뛰어나고 충직한 인물이다. 우리가 선거에서 이기면 백악관을 넘겨받을 준비를 할 인수위를 잘 꾸려갈 능력이 충분하다”고 발표했다. 미 언론은 “대선 본선까지 6개월, 내년 정권 출범까지는 8개월이나 남은 상황에서 정권인수위원장을 발표한 건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당선이 확정된 뒤에야 인수위원회를 꾸렸다.

크리스티는 “트럼프의 나에 대한 신임을 명예롭게 여긴다. 일류 팀을 잘 구성해 대통령 당선자와 미국을 위해 가장 잘 봉사할 수 있는 행정부를 구성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트럼프가 인수위의 구체적 인선에 착수했으며 이 작업을 장녀 이방카의 남편인 재러드 쿠시너(35)에게 맡겼다고 보도했다. 의회 전문 매체 더힐은 크리스티가 뉴저지 연방검사로 재직할 당시 쿠시너의 부친을 탈세와 불법 선거자금 제공 등 혐의로 기소한 악연이 있다고 전했다.

크리스티는 트럼프의 부통령 러닝메이트 후보로도 거론되고 있다. 크리스티의 가장 강력한 경쟁자는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45·플로리다)이 될 것이라고 미 언론은 전했다. 트럼프는 경선 기간 내내 루비오에 대해 ‘꼬마’라고 조롱했다. 하지만 최근에 가장 중요한 ‘스윙 스테이트(경합주)’인 플로리다의 표를 의식해 “루비오와 꼭 함께했으면 좋겠다”며 러브 콜을 보내고 있다. 크리스티와 루비오는 경선 과정에서 서로 물고 뜯으며 함께 지지세를 잃은 악연이 있다.

크리스티가 의외의 인물과 ‘브로맨스’(남성 간의 진한 우정)를 보여준 건 이번만이 아니다. 그는 오바마와 공화당 밋 롬니 간 대선을 앞둔 2012년 10월 뉴저지의 허리케인 샌디 피해 현장을 둘러보며 초당적인 행보를 보였다. 당시 보수 진영에선 “크리스티 때문에 졌다”는 말이 나왔지만 주민들은 “정치적 계산 없이 피해 복구에 전력을 다한다”고 호평했고 그는 공화당 내 대선 후보군의 선두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당시 뉴욕타임스는 “오바마와 크리스티의 관계는 ‘정치는 뜻밖의 친구를 만든다’는 속담을 떠오르게 한다”고 보도했다.

뉴욕=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미국#대선#트럼프#인수위원장#크리스티#주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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