女, 폭력없는 세상을 외치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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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세계 여성의 날’ 행사 현장… 여성 2000여명, 性평등 문제 열띤 토론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호주 시드니 기술 공원 행사장에 모인 2000명의 청중이 세계 여성 폭력 실태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파란색 교복을 입고 행사에 참가한 여고생들은 “우리에겐 생활적인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드니=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호주 시드니 기술 공원 행사장에 모인 2000명의 청중이 세계 여성 폭력 실태에 대한 발표를 듣고 있다. 파란색 교복을 입고 행사에 참가한 여고생들은 “우리에겐 생활적인 페미니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시드니=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 여성의 날인 8일 오전 7시. 옛 기차역을 문화 시설로 개조한 호주 시드니 로코모티브 가(街)에 자리한 기술 공원은 일찍부터 다양한 연령대와 직업군의 여성 2000여 명으로 북적였다. ‘안전한 가정과 안전한 지역사회’를 주제로 유엔여성기구 호주전국위원회가 기금 모금을 겸해 연 조찬 행사였다.

기업과 정부 기관, 여성단체에서 95달러(약 8만5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온 성인들 사이사이에 교복 차림의 앳된 여학생들이 눈에 띄었다. 여학생들은 여성에 대한 폭력 반대 운동을 지지하는 뜻의 보라색 리본을 단 채 아침을 먹으며 “세계 여성 3명 중 1명 이상이 다양한 폭력에 시달리고 있다”며 “태평양 연안 국가들에선 3명 중에 2명꼴로 폭력을 당하고 있다”는 발표를 경청했다.

여성과 소녀를 상대로 한 폭력 방지를 포함해 성평등 문제는 호주 외교부의 주요 의제 가운데 하나다. 줄리 비숍 외교장관은 “폭력 없는 삶과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없는 삶은 기본적인 인권”이라며 “연방정부는 호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앞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학교 규정상 성과 학교 이름을 밝히지 않은 여중생 이사벨 양(15)은 “지리 시간에 개발도상국 여성들이 어떤 대우를 받고 사는지 알게 됐다. 다른 나라 여성들의 현실에 관심이 많아 친구들과 함께 왔다”고 말했다.

여고생 엘리자 양(17)은 친구들과 ‘사회 속에서의 균형(Balance in Society)’이라는 학내 동아리를 만들어 여성 문제를 공부한다. 친구들을 독려해 제3세계의 여성 상대 폭력 근절을 촉구하는 편지를 20∼30통씩 써서 해당국 대사관에 전달했다. 그는 “낙태를 지지하는 활동도 하고 싶지만 학교가 가톨릭계여서 안 된다”며 아쉬워했다.

앞서 6일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 열린 토크 페스티벌 ‘올 어바웃 우먼(All About Woman·여성에 관한 모든 것)’도 페미니즘이 일부 여성단체의 전유물이 아니라 평범한 여성들의 일상적인 고민을 담아내는 이슈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줬다.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30명의 연사가 △성에 관한 미신 △나 자신이 되는 법 △무의식적 편견 △남성성 등 모두 24개 주제별로 발표와 토론을 진행했다. 24개 주제 모두 입장권이 일찌감치 동날 정도였다. 기자는 이 중 ‘변해야 할 것들’이라는 세션에 예약 취소된 표를 36달러에 구하여 막판에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보수적인 캐나다 원주민 환경운동가부터 동성 파트너, 남성 유모와 함께 아이 셋을 키우며 사는 레즈비언까지 다양한 패널이 나와 “매직 맘(만능 엄마)이 되려고 해선 안 된다” “아니다, 돌봄은 여성의 몫이다”라며 설전을 벌였다.

청중에게 질문 차례가 돌아오자 10대 소녀들이 우르르 마이크 앞으로 몰려 나갔다. “(어른들이) 페미니즘을 이야기하면서 부자 남편, 의사 남편을 만나라고 하는 건 이중적이지 않으냐”는 질문에 큰 박수가 터져 나왔다. 13세 딸과 함께 페스티벌에 참여한 미셸 로빈슨 씨(43·여)는 “젠더 이슈를 배우는 건 아이들이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방향을 잡는 데 중요하다”며 “이건 정치적인 이슈가 아니라 생활의 문제”라고 힘주어 말했다.

호주에는 여성에게 여전히 차별적인 요소가 많다. 100인 이상 사업장 가운데 풀타임 정규직 여성 근로자 임금이 남성보다 19.1% 적고,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고위직 임원 중 여성 비율은 15.4%밖에 안 된다. 직장 내 양성평등법이 제정되고 양성평등청이 신설된 것도 2012년의 일이다.

시드니 기금 모금 행사장에서 만난 프루던스 고워드 뉴사우스웨일스 주 여성부 장관은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자원봉사에 나선 여고생 앨리 양(16)은 “미래에 내가 살아갈 사회를 위해서는 지금 행동하는 것이 좋다. 남자와 똑같이 일하고 적게 받는 세상에선 살고 싶지 않다”고 했다. 이들이 바꿔 놓을 호주의 미래가 궁금해졌다.

시드니=이진영 기자 ecolee@donga.com
#세계 여성의 날#성평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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