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英, 175년 애증의 역사 딛고 밀월시대로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0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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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진핑, 10년만의 英 국빈방문
방미때 수준 149명 경제사절단 동행… 원전-고속철 등 대규모 경협 전망
英, 왕궁 숙소제공 등 파격예우… 시진핑, 英의회서 첫 연설도

영국이 19일부터 역사적인 국빈 방문에 나선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사진)에게 파격적인 예우를 하면서 서방국 중 중국의 최고 파트너가 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번 방문은 중국 국가주석으로는 2005년 후진타오(胡錦濤) 당시 주석 이후 10년 만의 첫 국빈 방문이다. 중국이 1840년 아편전쟁에서 영국에 패한 후 175년에 걸쳐 애증의 역사를 거듭해온 양국 관계가 시 주석 방문을 통해 황금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시 주석 일행은 이날 오후 런던 히스로 공항에 도착해 영국 왕실 영예수행 의전관인 후드 자작의 영접을 받으며 4박 5일의 일정에 돌입했다. 영국은 시 주석 부부를 위해 왕실 3대가 총출동하고 버킹엄 궁에 숙소를 제공하는 등 최고의 의전을 준비하고 있다. 시 주석은 중국 지도자로서는 처음으로 영국 의회에서 연설하는 기회도 갖는다. 시 주석은 23일 귀국길에 오를 때까지 현지 기업 시찰, 공자학원 방문, 맨체스터 시티 축구팀 방문 등 20여 개에 달하는 공개행사와 활동에 참가한다.

영국이 시 주석 방문으로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경제협력 분야는 원전 건설 투자다. 프랑스 에너지업체 EDF는 “시 주석 방문에 맞춰 중국이 영국 남부의 힝클리포인트 원자력발전 건설 프로젝트에 참여한다는 발표가 나올 것”이라며 “이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유럽 내 첫 원전 건설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업 규모가 245억 파운드(약 44조 원)에 달하는 이 프로젝트는 EDF가 수주한 뒤 중국 기업에 참여를 요청했으나 확답을 얻지 못한 상태였다.

시 주석의 영국 방문에는 지난달 미국 방문 때에 버금가는 대규모 경제사절단이 동행한다. 이번 경제사절단에는 방미 때보다 1명 적은 149명의 기업인이 참여한다. 마윈(馬雲) 알리바바 회장 같은 스타급 기업인은 없지만 금융, 건설, 에너지, 자동차 분야의 다양한 기업인들이 포진했다고 중국 경제지 제일재경일보는 19일 전했다. 양국은 원자력발전소, 고속철, 금융, 부동산, 과학기술 등의 분야에서 대규모 계약을 체결할 계획이다.

이 같은 양국의 밀월 분위기는 17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상상도 하기 힘든 것이다. 세계의 중심을 자처하던 중국은 서구 제국주의 국가와 처음으로 정면 대결한 아편전쟁에서 완패하면서 홍콩을 영국에 빼앗기는 등 100여 년간의 암흑기에 들어갔다. 1997년 홍콩을 중국에 귀속시키면서 양국 관계는 새롭게 출발하는 계기가 됐다. 주요 2개국(G2)으로 올라섰지만 미국의 견제 때문에 미국과 특수 관계인 영국과의 협력이 절실한 중국과, ‘위대한 영국’ 건설에 중국의 투자가 절실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양국의 새로운 밀월시대가 열린 것이다.

인권 문제가 ‘아킬레스건’인 중국은 영국이 시 주석 방문에 맞춰 인권 문제를 거론하지 말도록 수차례 요청하고 나섰다. 이런 가운데 류샤오밍(劉曉明) 주영 중국대사는 영국 공영방송 BBC와 중국 인권, 사이버 해킹, 정치 체제 등을 놓고 설전을 벌였다. BBC에 출연한 류 대사는 진행자가 중국 인권을 문제 삼자 “당신은 영국의 (인권) 모델이 완벽하다고 생각하느냐”고 반문한 뒤 “나는 모든 국가는 인권 개선이라는 문제에서 자국이 처한 국정 상황이 존재한다고 여긴다”고 주장했다.

베이징=구자룡 특파원 bonhong@donga.com
#밀월#애증#시진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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