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日 ‘아베노믹스’ 여론몰이… 한국은 뒷짐만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5월 31일 03시 00분


日, 노벨상 수상자 등 석학 초청… 우호여론 조성 노려 비공개 행사
“엔저 피해 한국도 목소리 내야”

돈을 찍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일본의 ‘아베노믹스’가 주가 폭락, 국채 금리 급등으로 주춤거리는 가운데 일본 정부가 글로벌 경제 석학들이 대거 참여하는 국제회의를 열어 아베노믹스 세몰이에 나섰다. 이에 비해 엔화 약세 정책의 대표적 피해국인 한국은 몇몇 고위 관료가 비판 발언을 한 것 외에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 국제 사회에서 한국 정부의 목소리는 갈수록 묻혀 가는 분위기다.

미국 등 주요국 정부와 국제기구의 지지를 등에 업고 엔화 약세 정책에 가속도를 내고 있는 일본 정부가 세계 경제학계의 흐름을 좌우하는 경제학자와 오피니언 리더들을 우군(友軍)으로 끌어들이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대표적 국책 싱크탱크인 내각부 산하 경제사회총합연구소(ESRI)는 30일 도쿄 미타(三田)공용회의소에서 ‘일본 경제의 재생을 향해: 글로벌 경제에서 정책의 역할’이라는 제목의 비공개 국제 콘퍼런스를 개최했다. ESRI는 “아베노믹스가 일본 경제의 부활과 세계 경제 발전에 어떤 역할을 할지에 대해 국내외 저명 경제학자가 토론하는 자리”라고 밝혔다.

31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회의에는 세계 여론을 주도하는 석학 300여 명이 참석한다. 2001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를 비롯해 제프리 색스 컬럼비아대 지구연구소장, 리처드 쿠퍼 하버드대 교수, 애덤 포센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 등 거물급 경제학자들이 참여한다. 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경제자문역을 맡아 아베노믹스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하마다 고이치(濱田宏一) 예일대 명예교수와 이토 모토시게(伊藤元重) 일본 총합연구개발기구(NIRA) 이사장 겸 도쿄대 교수 등 일본 내의 고위급 인사와 저명한 학자들도 참석한다.
▼ ‘엔저 역풍’ 日주가 5.15% 또 급락 ▼

회의 첫날인 30일에는 색스 소장과 스티글리츠 교수가 각각 ‘세계경제 환경’ ‘세계경제 성장과 분배’라는 주제로 기조연설을 했다. 31일에는 우메타니 겐지(梅溪健兒) ESRI 소장이 ‘아베노믹스 경제정책’에 대해 설명한 뒤 ‘아베노믹스의 파급 효과’라는 주제를 놓고 주요 발표자들이 토론을 벌인다. ESRI 측은 회의장 보안을 이유로 일반인의 참석을 불허했다. ESRI는 발표문들의 제목조차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추후 홈페이지를 통해 알리겠다”고만 밝혔다.

경제 전문가들은 이런 회의가 아베노믹스의 논리를 글로벌 리더들에게 설파해 자국에 유리한 국제 여론을 조성하려는 일본 정부의 치밀한 전략에 기초한 것으로 보고 있다. 폴 크루그먼 미 프린스턴대 교수가 최근 뉴욕타임스에 쓴 칼럼에서 “일본의 경제상황을 고려할 때 아베노믹스는 타당한 전략”이라고 평가하고, 데이비드 립턴 국제통화기금(IMF) 부총재가 “일본 통화정책이 엄청난 부작용을 일으켰다는 증거를 확인하지 못했다”고 언급하는 등 일본에 우호적인 여론은 국제적으로 확산되는 모양새다.

일본이 글로벌 세몰이에 나서는 사이 한국 정부는 ‘메아리 없는 외침’만 반복하고 있다. 현오석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열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의에서 “일본의 양적완화 정책은 무너지기 쉬운 모래성과 같다”며 목소리를 높였지만 앙헬 구리아 OECD 사무총장은 이미 3월에 “아베노믹스는 아주 고무적인 정책이고 완전한 실천이 가장 중요하다”며 일본의 손을 들어준 바 있다.

오정근 고려대 교수(경제학)는 “일본을 지지하는 국제 여론이 대세로 굳어지면 한국 정부가 아무리 비판해도 세계는 우리의 얘기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는다”며 “정부는 우물 안 개구리에 머물지 말고 한국 등에 우호적인 여론을 조성할 수 있도록 국내외에서 전방위적인 정지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30일 일본의 닛케이평균주가는 미국 증시 하락과 엔화 가치 상승의 여파로 전날보다 5.15%(737.43엔) 급락한 13,589.03엔으로 거래를 마감했다. 이날 하락폭은 13년 만의 최대치였던 23일(7.32%)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로 컸다.

이상훈 기자 january@donga.com
#아베노믹스#노벨상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